<연작 소설> 큰딸의 인생 6

by 아르페지오

스물네 살 희수는 회사원이 되었다. 희수가 선택한 회사는 대기업 연구소였고 공기업에서 사기업으로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 곳이었다. 어찌 보면 공기업이고 어찌 보면 사기업 같은, 어찌 보면 연구소 같고 어찌 보면 일반 회사 같은 첫 직장에서 희수는 혼란을 느꼈다.


3년 만에 처음으로 신입 사원을 배정받은 선배들은 희수에게 온갖 잡일을 떠넘겼다. 입사해서 제일 처음으로 배운 업무는 팀장님의 커피를 타는 것이었다. 손님이 올 때마다 커피를 타서 팀장님 방에 가져가는 업무였는데 희수는 연구원이 이런 일까지 해야 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희수가 입사하기 전까지는 선배들이 해 온 일이라고 하니 신입인 희수가 감히 부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희수는 매번 커피 맛이 이상하다고 타박을 받았다. 커피 때문에 팀장님에게 핀잔을 들을 때마다 희수의 자존심은 한 층 씩 내려갔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회사에 입사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그러나 버티는 것 이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경력 사원도 아닌데 겨우 몇 개월을 다니다가 이직을 하면 채용해 줄 회사도 없었고 월급도 많은 편이라 비슷한 조건의 회사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희수가 현실과 타협해 가면서 회사 생활에 적응해 가던 어느 날, 선배가 소개팅을 제안했다. 지인이 있는데 전부터 소개를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소개팅 같은 것은 일절 하지 않았던 희수였지만 그날따라 왠지 올해 크리스미스는 외롭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덜컥 소개팅을 승낙했다.


소개팅에 나온 사람은 선한 인상을 지녔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같은 업종에 근무하다 보니 대화가 잘 통해서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남자는 희수를 처음 만난 날부터 매일 연락을 했고 둘은 매일 만났다. 서로의 회사가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저녁에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점심이라도 같이 먹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고 둘은 결혼을 하기로 약속하고 상견례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상견례 날짜가 다가올수록 희수 엄마, 아빠가 불안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희수는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부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불안한 기운이 느껴지곤 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에 희수는 후회했다. 이때 부모님을 더 추궁했어야 했다고. 그래서 결혼을 미루려고 하던 이유를 알아냈어야 했다고. 그러면 적어도 희수의 남편은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고. 결혼한 지 채 일 년도 안 지나서 신혼집으로 장인과 장모, 처제가 짐을 싸들고 오는 일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고. 희수 부모의 잘못은 희수 혼자 감당했으면 되었을 거라고.


그러나 희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한 지 12개월 만에 예쁜 아이를 낳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예쁜 아이를 낳고 가장 행복했어야 할 시간에 검은 폭풍이 들이쳤다. 새카만 폭풍은 비바람까지 몰고 와서 희수를 낭떠러지로 몰아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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