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 네가 집에 들어오자 지옥이 다시 시작되었다. 제정신이 아닌 희수 아빠는 계속 담배를 피워댔다. 갓난아이가 있는 집에서 담배를 피워대니 사위는 장인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집 안에서는 고성이 끊이지 않았고 희수 엄마 군자 씨는 울기만 했다. 아빠를 말리다가 남편을 달래다가 중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희수는 멍하니 있었다. 낮에는 이 꼴을 보지 않으니 출근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몸은 엉망진창이었지만 적어도 회사에 가면 잠시 지옥에서 피해있을 수 있었다.
희수의 남편은 매일 화를 냈다. 좁은 공간에 제정신이 아닌 장인과 장모, 처제까지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희수는 남편의 화를 모두 받아내었다. 내 부모가 저지른 일이고 남편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희수 동생은 학교 기숙사로 도망갔다. 한 명이라도 나가니 그나마 숨 쉴 공간이 생겼지만 희수 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계속 집에서 담배를 피워댔고 술을 마셨다.
끔찍한 몇 주가 지났고 도저히 장인과 한 집에서 못살겠다는 남편의 말에 희수는 아버지를 여관방으로 보냈다.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서 압구정동에 살던 아버지가 살기엔 너무나 초라한 곳이었지만 희수가 가진 돈으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아버지도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낫다며 희수가 마련해 준 여관비를 받아 들고 훌쩍 떠났다.
아버지가 떠난 후 희수 네 집에는 평화가 찾아봤다. 희수 엄마 군자 씨는 손주를 정성껏 돌보았고 살림도 맡아서 했다. 새벽같이 출근을 했다 밤늦게 돌아오는 희수 부부는 아이를 정성껏 돌봐주고 살림을 해주는 군자 씨를 깍듯하게 모셨다. 희수 엄마 군자 씨, 희수 남편, 희수, 그리고 희수의 아들, 네 식구의 동거는 처음에는 조화롭고 평화로웠다. 네 명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었고 서로 마주칠 일이 없었으니 부딪칠 일도 없었다.
희수가 그나마 행복했다고 기억하는 이십 대 시절은 이 시절이다. 폭풍이 한번 휩쓸고 갔지만 그나마 안정을 찾았고 아이가 무럭무럭 크던 이때 희수는 행복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희수의 마음 깊은 곳에는 걱정과 우울이 도사리고 있었다. 희수에게 아버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어디선가 또 다른 채무자가 나타나서 빚을 갚으라고 협박하는 악몽에 매일 밤 시달렸다.
스물다섯에 갑자기 아이 엄마가 된 것만도, 엄마 노릇을 하는 것만도 버거운데 덜컥 3명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희수는 도무지 앞날을 계획할 수가 없었다. 매달 아버지의 여관비와 생활비가 빠져나가고 나면 희수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가 되었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하루하루가 막막했다. 희수와 희수의 친정에 대해 화가 날 대로 난 남편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끝도 없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