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의 이십 대는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면서 회색빛에서 잿빛으로 변했다. 그래도 희수는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한 아이의 엄마였고 3명의 친정 식구를 부양하는 가장이었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었다.
희수와 희수 남편 사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희수 아버지는 밤에는 여관방에서 지내고 날이 밝으면 희수네 집으로 와서 끼니를 해결했다. 장인과 마주치기 싫었던 사위는 매일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밤늦게 집에 들어왔다. 퇴근 후의 육아는 희수 혼자 감당해야 했다. 직장에서 파김치가 되어서 집에 온 희수는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종일 애를 보다 지쳐 잠든 군자 씨를 깨울 수도 없었고 밖으로 도는 남편을 부를 수도 없었다. 매일 12시간 넘게 일하고 퇴근해서는 혼자 아이를 돌봐야 했던 희수는 날이 서 있었다. 사소한 일로도 남편과 부딪쳤고 처가 때문에 날이 서 있던 남편도 참지 않았다. 남편과 크게 싸운 어느 날, 갈 곳이 없어 방황하다 공원 벤치에 앉아있던 희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매일 싸우다가는 이혼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 우리 가족은 거리로 나 앉게 될 텐데 아이를 위해서라도 가정은 지켜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날 이후 희수는 남편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밤새 아이가 울어도 한 번도 깨지 않는 남편을 미워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결국 모든 시작은 희수 부모의 잘못이었으니 자신이 감당하기로 했다. 딸 앞에서 걸핏하면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엄마도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 생각했다. 그때 희수는 엄마도 피해자라고, 아빠의 잘못으로 엄마가 거리에 나 앉게 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불쌍한 엄마를 보호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희수는 정작 자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한 몸으로 주 7일 근무를 하고 야근까지 하면서 밤에는 홀로 육아를 담당하던 희수의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서른도 되지 않았는데 원형탈모가 생겼고 만성장염에 시달렸다. 두통과 불면증은 매일 희수를 괴롭혔다. 희수는 점점 야위어갔지만 가족 아무도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가족 모두 나름의 이유로 병들어 있었기에 다른 누구를 살필 여유가 없었다. 이십 대 중반 가장 빛나야 할 시기에 희수는 시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