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가 서른이 되던 해에 희수 엄마 군자 씨는 아버지가 정신이 이상한 것 같다고 했다. 희수 아버지는 여관방에서 기거하고 있었지만 낮에는 희수네 집에 와 계셨다. 군자 씨는 정신병이 있는 아버지가 다섯 살 손자와 같이 있으면 위험할 것 같다면서 입원을 시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겁이 덜컥 난 희수는 바로 병원을 알아보고 아버지를 입원시켰다. 희수 아버지는 매일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간단한 검사 후 아버지를 병동으로 데려갔다.
강제로 술을 끊고 나니 제정신이 돌아온 희수 아버지는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며 퇴원시켜 달라고 애원했지만 가족들은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다섯 살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의 빚과 친정 식구까지 부양해야 하는 희수는 아버지를 챙길 여유가 없었다. 애초부터 남편에게 정이 없었던 군자 씨는 남편이라는 존재를 서서히 잊어버렸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른 후, 희수 아버지는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전재산을 날리고 몇 년 동안 깡소주만 들이부으면서 살았던 그의 몸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암세포가 이미 여기저기 퍼져있었다는 것을 정신병동에서 알게 되어 급하게 수술을 했지만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희수 아버지의 장례식은 쓸쓸하고 조촐하게 치러졌다. 조문을 올 친척들도, 친구들도 없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이번에는 희수가 쓰러져서 응급실에 갔다. 몇 년 동안 생리통이 심한 줄 알고 진통제로 버텼는데 자궁 근종이 있어서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희수에게 그동안 통증이 심했을 텐데 대체 어떻게 참았냐고 물었다. 그러나 희수에게는 그 정도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술 날짜를 잡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며칠 동안 희수는 달콤한 휴식을 만끽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쉬는 것이 대체 얼마 만이었는지 모르는 데다 별로 어려운 수술도 아니라고 하니 푹 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수술 후에 발생했다. 의사는 수술 후 상처가 아물 때까지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너무나도 간단한 의사의 설명을 듣고 별 것 아닌 줄 알았는데 호르몬 주사를 맞으니 서른 살 희수에게 갱년기가 찾아왔다. 시도 때도 없이 식은땀이 나고 얼굴이 붉어졌고 끝도 없이 우울해졌다. 호르몬 주사 때문에 발생한 갱년기 우울에 희수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우울까지 더해져서 희수는 매일 죽고 싶었다.
다섯 살이었던 희수의 아들은 엄마가 아픈 줄도 모르고 매일 엄마에게 매달렸다. 밤에만 잠깐 보던 엄마가 병가를 내고 집에 있으니 너무 좋았던 것이다. 그러나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던 희수는 아들을 뿌리쳤다. 아들과 같이 있으면 아들에게도 우울이 전염될 것 같아서 두려웠다. 3개월 후 호르몬 주사를 중단하면서 의사는 우울증도 같이 사라질 거라 했지만 서른에 시작된 우울증은 평생 희수를 괴롭혔다.
희수의 삼십 대는 아버지의 죽음과 수술, 그리고 끝도 없는 우울의 시간이었다. 반면 희수 엄마 군자 씨의 육십 대는 지긋지긋한 남편에게서 벗어나고 황혼육아에서도 해방되어서 뒤늦게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