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에서 한 사람은 추운 겨울을, 한 사람은 따스한 봄을 맞이하고 있었으니 모녀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희수는 매일 아침 엄마 군자 씨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혼란에 빠졌다. 죽고 싶다던 엄마가 잘 지내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가 나는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왜 저렇게 행복한 건지 화가 치밀었다. 널뛰기하는 감정 속에서 오락가락하다 출근하면 또 다른 지옥이 희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 생활은 서로 짓밟고 이용하지 않으면 이용당하는 정글 그 자체였다. 조금만 방심하면 나의 업적을 누군가가 가로채갔고 때로는 동료의 잘못을 덮어쓰기도 했다. 희수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던 희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불시에 당하지 않으려면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니 누워서도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출근하는 날이 잦아지면서 희수의 건강은 자꾸 나빠졌다. 그러나 병원에 가봐도, 운동을 해봐도, 침을 맞아보아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취미 생활을 해보아도 책을 읽어봐도 식이 요법을 해봐도 개선되는 것이 없었다. 이제는 좀 쉬어야 한다고 몸과 마음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희수는 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반면 인생의 봄날을 만끽하고 있는 군자 씨는 점점 더 밖으로 돌았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인 손주를 혼자 두고 하루 종일 외출하는 일이 잦아졌다. 희수가 군자 씨에게 바랬던 것은 손주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따뜻하게 맞아주고 간식을 챙겨주는 것, 그것뿐이었는데 군자 씨는 점점 더 손주에게 소홀해졌다.
어느 날 몸이 아파서 조퇴를 하고 집에 일찍 들어온 희수는 아들이 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할머니는 어디 가셨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낮에는 항상 안 계시다는 답이 돌아왔다. 과자까지 직접 만들어 먹이면서 정성껏 키웠던 아들이 매일 라면을 먹고 있었다는 사실에 희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희수는 아이를 돌봐준다는 명목 하에 엄마에게 매달 백만 원씩 용돈을 드리고 있었다. 사실 이 돈은 희수에게 버거운 돈이었지만 엄마가 기운을 차리고 아이를 잘 돌봐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매달 용돈을 드렸다. 그런데 군자 씨는 아침만 차려주고 나갔다가 저녁 늦게야 집에 들어왔던 것이다. 열 살이면 한참 커야 할 나이인데 오후에 아이 간식만 챙겨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희수는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희수가 한마디를 하면 엄마는 죽고 싶다는 말을 매일 반복하던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군자 씨의 죽고 싶다는 말은 희수에게 협박이었다. 군자 씨가 죽고 싶다고 할 때마다 희수는 군자 씨 기분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뭐든지 해야 했다. 아이가 라면을 먹는 것은 속상했지만 그렇다고 희수가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었다. 결국 희수는 모든 것을 외면하기로 했다. 속상한 마음에 울다 지쳐 잠이 드는 날이 많았지만 모든 것을 혼자 감내했다.
아이가 커서 중학생이 되자 군자 씨가 집에서 할 일은 점점 더 사라졌다. 활기를 되찾은 군자 씨는 이제 동창회까지 나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압구정동에 살고 있는 군자 씨 동창들은 만날 때마다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혹은 자식들이 뭘 사줬다는 등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군자 씨는 집에 와서 동창회 이야기를 딸에게 늘어놓았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희수는 죄책감에 빠졌다.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부모님 해외여행 한번 못 보내드렸다는 생각에 어떤 해에는 유럽 여행을 보내드렸다. 어떤 해에는 자동차를 새것으로 뽑아드렸다. 희수도 가보지 못한 유럽이었지만 손주를 키우느라 고생한 엄마에게 그 정도 보상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희수 부부는 차 한 대를 공유해서 같이 쓰고 있었지만 엄마에게는 자동차를 따로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것은 군자 씨가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군자 씨는 그저 친구들이 부러워서 누구는 유럽 여행을 갔다 왔다, 누구는 차를 바꿨다고 말을 전했을 뿐인데 희수는 모든 결핍을 알아서 채워주었다.
가끔 희수는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엄마를 잘 챙기는데 우리 엄마는 왜 집안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손주를 제대로 보살펴주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우울한데 우리 엄마는 왜 저렇게 행복할까?'
그러나 희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참고 인내하는 것 밖에는.
그래도 시간은 흘렀고 잿빛으로 기억되는 삼십 대를 지나 어느덧 희수는 마흔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