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무례함

by 아르페지오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요정신년회(https://www.youtube.com/watch?v=qaoNKG6GV9M)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뮤지션 정재형이 운영하는 유튜브인데 여러 명의 뮤지션들이 모여서 신년회를 하는 것을 촬영한 편이었다. 참석자는 정재형, 이상순, 페퍼톤스, 정승환, 이적인데 모두 좋아하는 뮤지션들이라 유심히 보았다. 꽤 긴 영상이었는데 내용도 유익했다. 그중에서 2026년 새해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정재형의 질문에 대한 이상순의 답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상순은 나이가 들수록 무심하게 나오는 습관이나 말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2026년에는 항상 깨어있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하게 내뱉은 말 때문에 아내와 다투기도 하고 후회할 일을 만들기도 하기에 나이가 들수록 깨어있겠다는 뜻이었다. 이상순의 말에 공감하면서 정재형이 무심한 무례함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너무 공감되어서 빠져들어서 유튜브를 보았다. 이상순은 우리가 진짜 싫어하는 어른들의 행동은 그저 무심해서 나오는 것들이라고, 나이가 들어서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어지니 무심해지고 배려를 잊게 되어서 무례해지는 거라고 했다. 대화 중반쯤 이적이 선한 사람은 무던하면 안 된다고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심한 사람은 악의는 없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무심해졌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무심했을 수 있다. 어쨌든 무심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필터 없이 그대로 뱉어내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뮤지션들의 신년회를 이렇게 넋을 놓고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사람들은 음악만 잘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깨어있는 사람들이었고 사람의 감정을 깊이 헤아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도 엄마도 악의가 있어서 나에게 막말을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가족이라도 선은 넘지 말아야 했다.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했다. 게다가 우리는 평범한 가족도 아니었으니 더욱더 조심했어야 했다.


그러나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험하게 말을 뱉어냈다. 하지 않아야 할 말까지 필터 없이 내뱉었다. 나는 엄마가 던진 말에 생채기가 나서 너덜너덜해졌고 결국 독립을 선언했다. 어쩌면 좀 더 빨리 결단을 내려야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28년이나 참으면 안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덜 참았더라면, 맺힌 마음을 한 번이라도 터뜨렸더라면 아름답게 헤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내 손을 덥석 잡아서 깜짝 놀랐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주머니는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내가 잡고 있던 버스 손잡이를 덥석 잡아서 내 손을 움켜잡았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손등에 손톱으로 긁힌 상처가 나 있었다. 버스 손잡이는 두 사람이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굳이 다른 사람이 잡고 있는 손잡이를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며칠 전에는 좌석 버스 옆에 앉은 학생이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서 내내 쪼그리고 목적지까지 가야 했다. 몇 주 전에는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있는 나를 밀치고 그림 앞으로 가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중간에 나왔다. 이들 모두 악의를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무심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런 무심함에 다치고 상처를 입는다.


요즘 여기저기서 상처를 받아서 웅크리고 있었는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안을 받았다. 이들의 음악이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음악이 널리 퍼져서 그들처럼 깨어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무심한 무례함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조금만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




요즘 정재형의 음악에 푹 빠져있다. 최근에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는데 드라마 OST가 좋아서 듣다 보니 음악 감독이 정재형이었다. 베이시스 시절부터 정재형의 음악을 좋아했는데 OST 작업도 하는 줄은 몰랐다. 그런데 정재형이 만들고 이적이 부른 드라마 OST를 들었더니 그 두 명이 출연한 유튜브 영상으로 이끄는 추천 알고리즘은 조금은 무섭다. AI와 함께하는 삶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나도 가끔은 세상이 낯설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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