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헤어진 후 내 삶에서 엄마를 지워내고 있는 중이다.
오십 년 넘게 엄마와 함께 살았으니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안간힘을 쓰면서 엄마를 지우고 있다. 평온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어떤 날은 원망이 어떤 날은 분노가 불쑥 찾아온다. 새로운 자극으로 나쁜 기억을 잊어보려고 혼자 여행도 다녀왔고 멀어서 엄두를 못 냈던 동네까지 가서 친구도 만나고 왔다. 바다를 보면 펑펑 울 수 있을 것 같아서 겨울 바다를 찾아갔는데 막상 차디찬 바람과 거센 파도를 보고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펑펑 울고 나면 상처받은 마음이 조금쯤은 나아질 것 같은데 왜 눈물이 나오지 않을까? 눈물샘이 말라비틀어진 것일까? 울고 싶은데 울지도 못하는 내가 싫다.
3개월 전에 이사를 간 엄마로부터는 여전히 아무 연락도 없다. 엄마에게 방을 마련해 준 동생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먼저 연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우리 가족은 붕괴되었다. 겉에서 볼 때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이미 곪을 대로 곪아서 고름이 고여 있었나 보다.
엄마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동안 내게 했던 모진 말과 행동에 대해 조금이라도 후회를 했을까? 아니 먼지만큼이라도 미안함을 느꼈을까?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해서 엄마와 동생을 만나서 따지고 사과를 받고 싶을 때도 있지만 연락을 하지 못했다. 괜히 더 상처를 받을 것 같아서 두려웠다. 지금도 이렇게 아픈데 상처가 덧이 날 것 같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엄마는 나한테 이렇게 막 하면 안 된다."였다. 빈털터리로 스물다섯 살 딸네 집으로 들어와서 28년 동안 얹혀살면서 뭐가 그렇게 당당했던 것인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뭐든지 요구하면서도 끊임없이 나를 다른 친구들의 자식들과 비교했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해서 나까지 우울에 전염시켰다. 평생 우울증과 씨름하면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는데 엄마가 떠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곁에서 매일 우울하다 지겹다 하던 엄마가 없으니 모든 것이 다 괜찮아졌다. 나의 우울의 근원은 엄마였다는 것을 엄마와 헤어지고 난 후에 깨달았다.
엄마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28년 동안 언니 혼자 다 떠안았으니 아무것도 안 했던 둘째가 자식 도리를 하고 있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이렇게 안간힘을 써도 여전히 괴로워서 108배를 하면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또 본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라고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