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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참 좋다

by 아르페지오

불면증 때문에 남들이 잠든 시간에 깨어있을 때가 많다. 불면증이 좀 잠잠할 때도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 새벽 4시쯤에는 항상 깨어있는데 이 시간이 참 좋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거리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하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이 시간이 나를 고단한 일상에서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데 요즘은 새벽 4시가 예전처럼 조용하지 않다. 새벽 배송이라는 게 생겨서 배송차들과 배송을 하는 분들이 이 시간부터 바쁘게 움직인다. 남들이 다 잠든 시간에 바삐 움직이는 이 분들을 보면 새벽 배송 서비스를 선뜻 이용하게 되지 않는다. 조용한 새벽시간에 일하는 것이 좋아서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서는 이들도 있을 거란 생각에 정말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새벽 배송을 선택하지 않는다.


오늘 새벽에는 코엑스에서 행사 때문에 밤을 새우고 맞았던 새벽이 기억난다. "문득 코엑스가 그립다."라는 글에서 했듯이 나는 코엑스 컨밴션 센터에서 하는 대규모 콘퍼런스에서 프레젠테이션을 많이 했다. 이런 콘퍼런스를 위한 스테이지 설치나 시스템 셋업은 전날 저녁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발표를 하는 프리세일즈와 행사 준비를 총괄하는 마케팅 직원들은 행사장에서 밤을 새우거나 코엑스에 있는 호텔 룸을 하나 빌려서 잠깐씩 눈을 붙이고 나서 세션을 진행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을 지날 갈 때마다 향수 같은 것을 느낀다. 겨우 두세 시간 정도 머무르긴 했지만 자주 방문한 곳이라 제2의 고향같이 느껴지나 보다. (대형 콘퍼런스가 유행이던 시절에는 일 년에 대여섯 번씩 이런 행사를 했으니 최소 일 년에 다섯 번 정도는 이 호텔에 왔던 것 같다. )

행사 날 아침에 마셨던 Esspresamente Illy 카페의 커피가 그리울 때가 있어서 가끔 봉은사역까지 걸어와서 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가기도 했다. 이 카페는 내가 삼성동에 근무하던 오랜 시절 내내 같은 자리를 지켜주었는데 몇 달 전에 근처를 지나가다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십여 년 넘게 이곳을 지켜주던 카페가 없어지니 내 마음도 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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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바라 본 시내 풍경, 그리고 자정 무렵의 코엑스 행사장

오늘 새벽에는 이상하게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보던 일출과 일리 커피가 생각난다.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고 나니 이것저것 옛 생각이 나는 것 같다. 지나 간 추억은 다 아름답다고 하던데 지긋지긋한 매니저와의 일화들도 아름답게 기억될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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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에스프레사멘테 일리 카페와 지금은 편의점이 들어선 예전 일리 카페가 있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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