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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Jun 27. 2024

공감 능력의 기원은 '공포'

아침놀 제2권 142장 p163~166 요약정리

아침놀 제2142p163~166 요약정리     



142     



공감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감정을 우리 자신 안에 재현하기 위해 우리는 실로 자주 타인의 이러저러한 일정한 감정의 원인을 추적한다. 예를 들어 ‘왜 그는 슬퍼하고 있을까’라고 묻는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통상적인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감정으로 인해 타인한테서 일어나고 나타나는 결과들에 따라 우리가 이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눈, 타인의 소리, 타인의 발걸음, 타인의 태도, 그리고 말, 회화, 음악을 통한 그것들의 모방들의 모방마저 우리의 신체에서 재현한다. 최소한의 근육 움직임과 신경 활동의 경미한 유사함에 이르기까지를 우리의 신체가 재현하면서, 이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 내부에 ‘유사한 감정’이 생긴다. 이는 앞뒤로 달리도록 훈련된 감각과 운동 사이의 오래된 연상 작용의 결과에 의한 것이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이러한 기교의 측면에서 우리는 매우 진보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 앞에서 거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나 이 기교를 실행에 옮긴다.      


특히 ‘여성들의 얼굴 표정의 움직임’을 관찰해 보라. 그녀들의 얼굴이 그녀들 주위에서 느껴지는 것의 부단한 모방과 반영 때문에 어떻게 동요하고 떨리고 빛나는지를! 그러나 우리가 감정을 빠르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음악’이다. 음악은 ‘감정의 모방에 대한 모방’이고 이러한 거리와 막연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감정에 참여하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슬퍼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단순히 슬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나 움직임 혹은 나아가 그 사람들의 습관을 상기시키는 음향이나 리듬을 듣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바보가 된 것처럼 슬퍼하게 된다.   

   


어떤 덴마크 국왕이 어떤 가수의 음악을 듣다가 전투적인 열광에 사로잡힌 채 뛰어올라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대신大臣 다섯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경우 어떤 전쟁도 없었고 적도 없었으며 오히려 그 정반대였다. 그러나 ‘감정에서 원인을 소급해 추리해 내는 힘’은 현실과 이성을 압도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야말로 거의 항상 ‘음악의 작용’이었다. 음악이 ‘참’으로 작용할 경우에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통찰하기 위해 그렇게 역설적인 사례 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음악에 의해 우리가 끌려 들어가는 감정의 상태는, 우리가 분명히 처해 있는 실제 상태와. 이 실제 상태와 ‘그것들의 원인들을 인식하는 이성’과 대부분 ‘모순’된다. 무엇에 의해 우리가 타인의 감정을 모방하는 데 그렇게 숙달되었는지에 대한 다음과 같은 답변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섬세하고 연역한 본성 때문에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겁 많은 피조물인 인간에게 ‘공포심’이야말로 공감을 가르치는 선생이며, 타인(동물까지 포함해)의 감정을 재빨리 이해하는 것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수천 년 동안이나 인간은 모든 낯선 것들과 살아 있는 것들 안에서 위험을 보았다. 인간은 그것들의 모습을 접하는 즉시 그것들의 얼굴 모습과 태도를 모방하였다. 이러한 얼굴 모습과 태도의 배후에서 인간은 일종의 ‘나쁜 의도’를 추론했다.      


인간은 모든 움직임과 얼굴 모습을 이렇게 ‘의도와 관련시켜 해석하는 것’을 영혼이 없는 무생물에게도 적용했다. 모든 것에는 영혼이 있다고 ‘망상’하면서 말이다. 하늘, 들판, 바위, 숲, 뇌우, 별, 바다, 풍경, 봄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이른바 ‘자연감정(Naturgefühl/나투어그퓌)’이라는 것이 여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 모든 것을 그것들의 배후에 있는 ‘제2의 의미’와 연관 짓는 저 오랜 공포의 습관이 없었다면 우리는 현재 자연에 대해 아무런 기쁨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마치 이해를 가르치는 선생인 ‘공포’가 없었다면, 우리가 인간과 동물에 대해 아무런 ‘기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기쁨과 유쾌한 경이, 마지막으로 우스움의 감정은 ‘공감’보다 나중에 태어난 아이들이고, 공포보다 훨씬 나이 어린 공포의 자매들이다. *공포 -> 공감(동정) ->기쁨, 유쾌한 경이 -> 우스움(유머/해학)     




재빠른 이해 능력은, 우리가 앞에서 본 것처럼 자신을 재빨리 위장하는 능력에 근거한다. 반면, 긍지가 높고 자주적인 인간과 민족들한테서는 재빠른 이해 능력은 오히려 감소한다. 그들에겐 공포심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이해와 위장’은 ‘소심한 민족들한테서 지배적’이다. 여기에 ‘모방하는 예술들’과 ‘보다 높은 지성’이 나타날 수 있는 터전이 있다. 현재 인기 있고 신성시되고 있는 이론은 즉 ‘동정’이다. 이 ‘동정적인 공감’을 통해 ‘두 개의 존재가 하나’가 되고,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직접 이해’하게 되는 ‘신비적인 과정’으로 보는 이론을, 내가 여기서 제안하는 공감 이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또한 쇼펜하우어 같은 명민한 두뇌가 그렇게 맹신적이고 무가치한 소리에 기쁨을 느끼고 이러한 기쁨을 명민한 두뇌와 절반쯤 명민한 두뇌에 이식한 것을 생각해 보자. 그럴 때 나는 한없는 의아함과 연민(동정적인 공감)을 갖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에 대해 우리가 갖는 ‘쾌감’은 얼마나 큰가! 자신의 은밀하고 지적인 소망들에 귀 기울여보면, 온전한 인간이라도 얼마나 미치광이에 가까운가!      


무엇 때문에 쇼펜하우어는 칸트에게 그렇게 깊은 의무를 느끼고 감사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매우 분명한 답이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면 칸트의 ‘정언명법定言命法’(칸트 철학에서, 행위의 결과에 구애됨이 없이 행위 그것 자체가 선(善)이기 때문에 무조건 그 수행이 요구되는 도덕적 명령)에서 ‘은밀한 성질(qualitas occulta/퀄리타스 오컬타/)’을 제거함으로써 그것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말했다.  

    *** “Qualitas Occulta”는 라틴어로 “숨겨진 특성”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숨겨진 또는 내재적인 특성이나 속성을 가리키며, 특히 의학 분야에서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잠재성 이분 척추 (Spina Bifida Occulta)’는 신경에는 이상이 없으나, 등뼈 (척추)가 완전히 만들어지지 못하여 그 일부가 가운데에서 붙지 못하고 갈라져 있는 선천성 기형입니다. 이처럼 "occulta"는 숨겨진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AI에게 물어본 답변)     
*** "Qualitas"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품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이 단어는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 제품 품질: “이 회사의 제품은 항상 높은 퀄리티를 유지합니다.”
- 인간의 특성: “그의 리더십은 훌륭한 퀄리티를 지녔습니다.”
- 생활의 질: “삶의 퀄리티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AI에게 물어본 답변)     
*** "Occulta"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숨겨진이나 비밀스러운 상태를 나타내며, 오늘날에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초자연적 현상이나 신비주의와 관련된 맥락에서도 사용됩니다. 라틴어는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에 있는 고대 로마와 그 주변 지역 라티움(Latium)에 정착하여 살던 라티움 사람들이 쓰던 언어입니다.     
"라티움"은 이탈리아 반도 중부 서안에 위치한 지역으로, 테베레강 유역과 아펜니노 산맥 사이에 있는 넓은 평야지대입니다. 초기 고대 로마가 이곳을 중심으로 성장했으며, 오늘날 라치오 주의 기원이 된 지역입니다. (AI에게 물어본 답변)          


이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소리쳤다.

“정언명법이 이해될 수 있다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이집트적인 암흑이여(Ägyptische Finsterniss/이급트스 핀스타네스)! 하늘이여, 그것이 불가해한 것이 되게 하소서! 진정 이해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 이렇게 비참한 지성과 그것의 개념들이 제한되고 조건적이며 유한하고 기만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러한 확신이 칸트가 선사한 위대한 선물이다.”      


*** “Ägyptische Finsternis”는 사하라 사막 북쪽 지역에서 발생하는 모래 폭풍을 가리키며, 시야를 몇 미터로 제한시킬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 표현은 성경의 텍스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0:22에서는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 중 하나로, 모세가 손을 하늘로 뻗자 깊은 어둠이 세 날 동안 이집트 전체에 퍼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AI 답변 생성)     
*** 칸트의 정언명법은 도덕철학에서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는 무조건적인 명령을 의미하며, 도덕적 행위의 최고 원리로 간주됩니다.      

1. 정언명령은 아무런 조건 없이 무조건적으로 도덕적으로 행하라는 명령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도덕적으로 행하라!"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2. 칸트는 정언명령을 여러 가지 표현방식으로 설명했는데, 그중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보편법칙의 정식 : “너의 준칙이 보편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을 통하여 네가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그러한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
- 자연법칙의 정식 : "너의 행위의 준칙이 너의 의지를 통하여 보편적 자연법칙이 되는 듯이 행위하라!"     

3. 정언명령은 인간의 이중적인 특성과 깊게 관련되어 있으며, 인간이 도덕적으로 행할 수 있고, 또 도덕적으로 행하지만 항상 그렇게 도덕적으로 행하지 않는 존재임을 반영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언명령은 도덕의 기초를 형성합니다. (AI 답변 생성)          


처음부터 도덕적인 주제들의 ‘불가해성’(개념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믿음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누군가가, 도덕적인 주제들을 인식하려는 의지를 정말로 갖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천상에서 주어진 깨달음, 마법, 영적인 현상들, 추하기 그지없는 형이상학적인 두꺼비들을 여전히 진지하게 믿고 있는 사람이!

***불가해성은 이해할 수 없는 특성을 나타냅니다. 이 용어는 복잡하거나 신비한 상황을 설명하는 데 자주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고대 문자의 불가해성이나 CEO의 결정의 불가해성과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운명의 불가해성"이라는 문구는 미래가 예측할 수 없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AI 답변 생성)          

                 





* 이 사진은 우리텃밭 안의 시간랜드 풍경을 찍은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저 안은 분명 비어 있었는데, 미니어처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누군가 저기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이럴 때 정말 내 안의 저 깊은 것에서 웃음이 솟아 나온다. 저 미니어처들을 가져다 놓은 그 사람(아이인지 어른인지는 알 수 없지만)의 마음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 시간랜드와 소통하였기 때문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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