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를 받은 지 꽤 되었다. 채소를 보관하려고 다이소에서 투명 플라스틱 박스를 사서 야채박스 안에 넣었다. 그 안에 바로 우리텃밭 옆 이웃텃밭 분께 받은 양배추를 정리해서 넣어 놓았다. 그리고 맨 처음 수확한 고추와 방울토마토를 넣었다. 그 뒤로 고추는 더 이상 그 박스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 박스 위에 놓이게 되었다. 방울토마토는 익을 때마다 몇 개씩 따게 된다. 그리고 한 두 개 우리는 맛을 보듯이 먹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어둔다. 모인 게 이제는 한 번의 방울토마토 파스타 해먹을 분량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아, 투명 박스를 열어보았다. 고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양배추와 고추와 토마토가 보인다. 가지만 약간 보라색이 갈색으로 변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까마득하게 잊어먹을 수 있다니! 요즘은 그렇다. 꼭 가봐야 할 결혼식도 까먹었다. 한 달이 지나서야 생각이 나다니, 말이 되는가! 내 스스로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배추를 보는 순간 또 당황스럽다. 양배추도 그러고 보면 그 안에서 꽤 오래 버틴 셈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형태 그대로 잘 보존된 양배추를, 이웃텃밭 분께서 알려 준 대로, 꼭지를 도려내고 그대로 삶았다. 그러자 찢기지도 않고 잎 그대로 올올하게 잎이 보존되었다. 고추 피클 담을 때는 고추에 포크나 바늘로 구멍을 내서 담으라고 하셨다. 이것도 시도해봐야지 싶다.
저번에 쌀 씻은 양이 많아서 나누어서 냉동실에 놓아둔 쌀을 급하게 녹여 밥을 했더니, 밥이 다소 떡밥이 되었다. 어쨌든 양배추 1/3을 썰어서 달달 볶았다. 차례대로 가지도 넣고 간을 하였다. 아삭이 고추도, 깻잎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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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가 오지 않았고 하루종일 날씨가 좋았다. 대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날씨였다. 텃밭에 갔다. 다육들 위에 씌어둔 비막이도 조금 위로 올려서 바람을 통하게 하고, 상추 비닐하우스도 걷고 상추 수확을 하였다. 여리디 여린 상추는 조금만 힘을 가해도 부러진다. 온실 속의 화초란 바로 이런 경우일 것이다. 비닐하우스가 너무 작았고 바람은 덜 통하였다. 조금 더 높고 공간은 넉넉해야 했을 듯하다.
길가로 뻗은 고추나무 가지를 잘라주었고, 가지나무 밑동에 다시 나오는 가지 새순을 잘라주었다. 토마토 넝쿨이 길게 뻗어서 본 가지를 잘라주었다. 이제 본 가지가 아닌 아들 가지(그렇게들 표현하여서)가 주된 가지들이 될 것이다. 그러다 더 자라면, 또 본 가지를 잘라주어야 할 것이다.
토란을 많이 키울 의도는 아니었고, 강렬한 해가림 용도로 심은 의도가 더 큰데, 오히려 토란은 그 자체로 그냥 쑥쑥 컸다. 의도하지 않은 토란 수확을 하였다. 그런데 박농민은 이렇게 말하였다.
"큰 것을 자르고 작은 것을 놔두어야지!"
아, 그렇구나! 큰 것을 자르고 작은 것을 놔두어야 텃밭 정원이 더 안정적이겠구나..., 나는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아, 그러네! 다음번엔 그래야겠네"
헌옥 쌤과 E팀이 어느새 와 있었다. 나는 이미 땀이 범벅 상태였다. 장갑에 흙이 묻어 있어서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돈하지 못했다. 여름은 원래 그렇다.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토요일에 텃밭에서 만나기로 하고 어둠이 내려앉았기에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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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 날 밤이었다. 치맥을 하기로 하였다. 텃밭 다녀오는 날은 뭘 했다고? 완전 피곤하다~ㅋㅋ 이럴 땐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제격이다!
간장치킨과 양념치킨 중에서 간장치킨 '승'이었다. 양념치킨을 양배추 쌈밥에 넣기로 하였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그토록 많은 서두가 필요하였다.
남은 양배추를 삶았다. 물기를 빼고, 볶음밥을 작은 주먹밥으로 만들어 삶은 양배추 위에 놓는다. 그리고 살짝궁 간장을 뿌리고 해체하여 볶은 양념치킨을 위에 올린다. 고추냉이를 아주 손톱만큼 보다 작은 분량을 골고루 치킨에 부벼준다. 그리고 양배추를 잘 사각으로 싼다.
삶은 양배추를 그냥 먹어 보았더니, 단맛이 돌며 맛나다. 보관이 오래되는 양배추다. 너무 늦지 않게 발견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그럼 그동안 나는 뭐 먹고살았나? 이런 생각 든다. 올해 시아버님 제사를 본가로 내려가지 않고 여기서 지냈다. 그 음식을 거의 나 혼자 다 해결했다. 그러다 보니 텃밭 생산 능력을 내가 미처 다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여름에 텃밭은 우거진다. 생각보다 우리텃밭 시간정원에는 풀이 없었지만, 그래도 오늘 대충 다 뽑았다. 이렇게 바람 쏘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랜드는 왠지 밀림 느낌 났다. 낮달맞이꽃은 뽑아도 뽑아도 나온다. 생명력과 번식력이 정말 끝내주는 낮달맞이꽃이다. 아마도 일이 년만 놓아두면 낮달맟이꽃 천지가 될 것이다. 어쨌든 꽃축제 하기에는 좋은 꽃이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계속 피기 때문이다.
또 새벽이 밝아 온다.
나는 치맥으로 이미 배가 부르니, 양배추쌈밥은 맛을 보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근 맛이 있겠지! 이따 전화해서 박농민한테 맛이 어땠냐고 물어봐야지. 그렇다. 박농민 아침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