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이런 생각이 불현듯 찾아왔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누구나 부지불식간에 갖고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내 기억을 대신 저장하는 sns 서버. 내 기억이 거의 다 sns에 담겨 있고, 반면 내 안에는 또 다른 기억이 있다. 이 두 기억이 합쳐질 때 온전한 기억이 될 것이다.
나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흩어진 기억들의 총합이 나는 아닐 것이다. 누가 더 많이 기억할까? 옛날 사람들일까? 요즘 사람들일까? 아마도 그것은 상황 따라 다를 것이다. 그 자신이 써놓은 글도 사진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지금 생각으로는 모든 게 엊그제 같은 일들도 어떤 기억이 문득 떠오르면 그것은 벌써 아득해져 있다. 엊그제 같이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지만 막상 지난 일은 생각보다 더 자세히 기억하려 하면 할수록 더 희미해진다. 기억은 한 대목이 대표 영상으로 남아 있는 것. 생각해 보라. 그 무수한 날들의 매 순간을 어찌 다 기억하고 있겠는가? 무의식적으로는 다 기억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각인된 어떤 대표 영상 하나뿐인데도 불구하고 활동사진처럼 머릿속 의식은 그것을 모두 기억하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편린들 그것은 조각 기억이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구름 멍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나는 전혀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하지 않던 어떤 유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다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마치 꿈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고 느끼는데 막상 생각하면 잘 기억나지 않는 것과 같았다. 그 순간은 생생했는데, 그 순간을 벗어나니까 희미해져 버렸다. 이것은 꿈인 것일까? 구름 멍하며 꿈을 꾼 듯 어떤 기억이 찾아와 그 감정에 머물렀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몇 발자국 움직이니 금세 자취를 감춰서 숨어버린 그 기억.
이러한 생각의 파편들 속에서 그 존재는 그 순간에만 형성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ns에서 글 쓰고 있는 나는 하나의 꽈리일 것이다. 이 서버에 대롱대롱 매달린 꽈리 한 개, 그리고 그 꽈리 안에는 그 안에서만 통용되는 시간이 흐른다. 우리 존재들도 자연의 시간이란 거대한 줄에 붙어 돋아난 꽈리들일 것이다. 꽈리 안에 각자의 시간을 갖고서 말이다.
sns 서버에 하나의 파일로 보관되는 나의 기억들. 이것은 내가 내 생각과 사진을 다운로드한 것과 같다. 나라는 흔적을 남기고자 말이다. 그러나 훗날 만약에 그것을 본다 하여도 온전한 나의 기억을 되살릴 수는 없다. 불완전한 기억의 조각들이기 때문이다. 비어 있는 빈 공간을 채울 때 그 기억은 완전해진다.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의미는 바로 그것을 의미할 것이다. 반쪽은 내가 갖고 있고 반쪽은 sns에 보관된 그런 조각 기억들. 이것은 마치 쪼개진 펜던트를 다시 맞추는 것과 같다.
가상은 그저 하나의 공간일 뿐이다. 그것은 곧 현재의 연장이다. 환상에 대한 의미는 잘못 사용되고 있다. 판타지라 불리는 세계는 그저 하나의 공간일 뿐이다. 그것은 어떤 기억의 되돌아 옴에 의해 생성된 공간이 아니라 우리 몸의 움직임과 장소 이동을 통한 것뿐이다. 정신 접속도 신체를 저당 잡혀 정신을 활발하게 대신 움직이는 것뿐이므로 그 가상도 역시 하나의 공간일 뿐이다. 현재 의식이 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상을 판타지와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말을 하고 있다. 이미 그것이 보편화되었기에 때로는 나도 그렇게 사용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분리해 보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그것은 환상일 뿐이야! 또는 그것은 판타지일 뿐이야! 또는 그것은 망상일 뿐이야!라는 표현들은 모두 존재의 메커니즘 방식이자 실존적 결의 형태인 리얼리티적 사건 전개를 따르지 않고 가상 또는 인위적인 자기 바람의 꿈같은 전개로 흐를 때 이렇게 외치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환상은 정신 안에서 생겨난 하나의 그때의 공간인데, 그것은 되돌아온 공간이다. 그 공간 속에서의 경험을 환상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의 그 자신의 의식은 거의 가려지거나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환상은 조각 기억이며 어떤 느낌에 가까울 것이다. 그 기억의 회귀가 만들어 낸 그 공간을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상공간은 환상을 복제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복제공간은 되돌아온 공간이 아니라 현재의 연장에 있으므로 자기의식이 숨지 않는다. 가상공간은 현실에서의 공간 확장에 가깝다. 하지만 가상공간 역시 현실적 경험이 가능하므로 삶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환상은 기억에 의한 것이다. 기억에 의해 되돌아온 공간만이 환상이며 실재이다. 예술적 체험 역시 이렇게 되돌아온 환상 공간과 같은 효과를 준다. 인간은 오랜 시간 기억을 축적하였다. 이것은 무의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의식 역시 되돌아온 환상공간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모두 '어떤 공간감'을 준다는 것은 동일하다. 다만 자기를 의식하고 행위하는 것과 현재의 자기를 망각한다는 차이가 있다.
* 대략 일어나는 생각나는 대로 써봤다. 더 보충해서 하나의 글로 완성할 생각이다.
* 그림은 이런 생각 들어서 그려 본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 글이 이 그림에 대한 해석은 아니다. 별개로 보아도 무방하다. 연결하여 보든 분리해서 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림을 끄적이듯 그려봤고, 이 글이 써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