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배추와 무 그리고 쪽파는 잘 자라고 있다. 무더운 여름과 해충을 이겨내었다. 여름동안 벌레에 상처 난 잎들은 시들어 사그라지고 연초록빛 배춧잎들이 장미 꽃잎처럼 결구된 속을 에워싸고 있다. 결구된 속은 비밀포장되어 이쯤에서는 들여다볼 수 없다. 절대 비밀이다. 그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들여다볼 열쇠구멍 같은 것은 없다. 기다리는 것만이 우리의 일이다. 노오란 속은 그저 상상할 일이다.
이제 서늘한 바람이 텃밭 사이로 분다. 서늘한 공기가 배추에게는 맛난 보약이다. 지금의 배추에게는 햇볕과 서늘한 공기와 새벽이슬만이 오직 필요할 뿐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겨우내 비축되어 봄에 솟아오르던 그 생명에너지를 다 쏟아낸 느낌이다. 이제 겨울을 준비하는 블랭크의 시간인 것. 그리고 김장 김치와 함께 겨울을 보낼 것이다. 땅의 휴지기처럼 사람의 몸 역시 휴지기에 들어간다. 사람은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신체는 몸의 움직임이 멈추지 않아도 겨울이 되면 저절로 블랭크 상태로 들어간다. 그 텅 빔에서 생명에너지는 다시 차오른다는 것.
텃밭을 가꾸면서 시작과 마무리 지점을 찍어주는 그 기간에서, 신체의 변화는 명징하게 반응하였다. 텃밭 농사도 자연이어서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따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텃밭은 절기마다 작물의 생육과 사멸이 어느 정도 분명하여 계절이란 시간에 민감하다. 사람의 몸은 여기에 강렬하게 반응한다. 봄의 시작과 가을의 끝점에서 신체는 더 민감한 센서가 된다.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다는 것에서 보자면, 가을의 끝점에서는 그 모든 것이 농축되어 나타날 것이다. 사람에게는 자라는 것이 일인데 무엇이 자라 있을까. 늙어가는 일인 외피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건 분명 슬픈 일이겠으나, 절대로 보여주지 않으려 결구한 배춧속처럼 사람의 내면도 아직은 결구되어 있다. 그렇다면 보려고 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배추를 수확할 때까지. 그리고 흥부가 박을 타는 심정으로. 슬퍼하거나 노여움 없이, 이미 떨어진 낙엽이 휘날리는 텅 빈 나무 아래를 걷듯이. 안에서 자라나는 것들. 나는 '검은 것', 먹 또는 묵에 대해 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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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터 11월 현재의 텃밭 배추와 무 그리고 쪽파와 가지 & 새싹들(빈 땅이 휑해 보여 그냥 씨앗을 뿌려 놓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