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또 하나의 진민이 진민에게 말하다
몰라, 그렇지만 나는 나를 어떻게든 알아가보려 하고 있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일인 거 같아
하나의 화두처럼 공중에 던져진 "나는 '내'가 어려워 넌 어때"라는 질문이 던져졌어
그런데 말이야, 이 질문에는 '나'라는 존재가 왜 이렇게도 어렵고 같이 살아가기가 버거운 것인지에 대해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해
책 안의 에피소드들에도 세상을 보는 너의 시선이 파노라마처럼 돌다가 어느 곳에 꽂히곤 하지
보통 세상사람들은 '예민'하다고 말하는 까칠함을 탑재한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세상 살기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해
그런데 너는 그토록 무수한 삶의 사건들에 내재한 순간을 포착한 거야
예민하지 않으면 감각되지 않은 것들이지
그리고 세상은 그것을 너와 나의 사이에 있는 에티켓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그 에티켓이 정착되려면 얼마나 많은 예민아씨들이 참견을 해야 했겠는지! 그리고 그 예민아씨들이 포착한 소소한 사건들 안에 포함되어 둥글둥글해진 이들은 넉넉한 웃음을 짓고 세상을 관조하게 되는 것이지
선진국일수록 이웃 감시가 더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물론 이것도 오래된 연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기도 하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일단 그 자신이 침해를 받지 않아야 하기에 이웃을 감시하는 것이라고 봐
물론 여기서는 감시라고 썼지만, 아마도 '참견'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거야
점점 참견하는 것도 참견받는 것도 싫어하는 사회이지만, 세상은 오히려 더 서로와 서로가 오히려 긴밀하게 연결되는 세상으로 향하고 있어
잠잠하다가도 무슨 인이 일어나면 금세, 순간에 밀착되어 버리는 게 삶인가 봐
예전과는 다른 방식인 것 같지만, 아마도 인터넷 탓이겠지만, 여하튼 사람의 심리에 크든 작든 우리는 매일매일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 같아
또 그 심리에 영향을 일부러 받겠다고 책을 읽기도 하고 뉴스를 접하기도 하니까······
삶은 때로는 절벽 같다가 때로는 봄날 꽃나무 아래 같다가 요동을 치는 거 같아
딱 이거다!라고 누가 정해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할 때도 있지
하지만 그 선택권을 놓지 않으려 너와 나는 오늘도 생의 고지에서 후퇴하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오늘은 날씨가 포근했어
포근한 나날들 속에서 네가 내내 안녕하기를 빌어
내가 어려운 것은 보는 시선에 힘이 있기 때문일 거야
그것은 값지고 귀한 힘이니까
자신에게 돌리면 더 좋을 것들
그 시선들이 거두워 들인 생산물을 읽으며
예민아씨! 의 그 순간들과 함께 웃었어
때로는 콕콕 찌르는 것 같은 간질거림도 있었지만 말이야
이를테면, 너의 책 속에서······
- "내 생이 너무 소모적이었다는 자책도 든다. 그래서 해마다 연말이면 가지치기를 한다. 건방지지만 손바닥만 한 수첩에 빼곡히 적힌 지인들의 이름을 관계의 깊이와 감사의 비중을 정확히 가늠하면서 핸드폰이 주는 연결 고리들을 정리한다. 너무 야박하지 않게 이젠 그냥 바라보기로 한다. 그러나 빚은 지지 말아야 할 것 같아서 꾹꾹 눌러쓴다. 내 안에 깃든 인덕이 나로부터 출발한 게 아니겠지만 오늘도 나는 그 훈훈한 인덕의 기운으로 사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인덕이 많아요' 중에서, p28) -
- "어떤 자동차 뒷 유리에 <결'초보'은>으로 크게 써 붙인 걸 보았다. (...) 이쯤 되면 언어유희가 아니라 '언어의 힘'이라고 믿고 싶다. (...) 말과 글, 상대에 대한 예우도 있지만, 내가 정한 원칙에 의해 사용하는 나만의 약속된 은밀한 루틴도 있다. 누군가에게만 전할 수 있는 초콜릿처럼 달콤한 감각적 언어의 마술 같은 한마디를 세상 밖으로 꺼내 놓으며 웃을 수 있는 '말 잔치"는 신나게 재잘거릴 수도 있고 사회적 범주 안에서 통용하는 말과 글에 기본적인 틀은 최소한 지키고 싶은 욕심이다." ('언어에 대한 예의' 중에서, p91~92) -
- "한결같이 집으로 잘 오라고 주문 아닌 주문을 한다. 그가, 그녀가 혹은 가족이 무사히 집에 돌아올 때까지 무언의 바람으로 무사 귀환을 은연중에 바라는 거다. (...) 가장이 집 밖을 나서는 등 뒤에다 쏟아부은 애정이란 거, 그건 대부분 주부의 몫일 수도 있을 거란 나의 편협함이겠지만. (...) 남겨질 누군가가 떠나가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그 어느 쪽이든 달라질 게 없는 게 이별이다. 다녀오지 않는 이상은." ('잘 다녀오라는 말' 중에서, p104~105) -
- "올 한 해도 또 다른 내 생이니까 더 잘살아 보자고 자신에게 타일렀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나누거나 하다못해 정성 담긴 안부라도 나누자는 쪽이다 보니 타인이 타주는 커피 한 잔에도 의미 부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분명한 건 좋지만 너무 내 기준으로 따지지 말자. 육하원칙이 있다고는 하지만 기, 승, 전 없는 상대의 실수를 결과로만 몰아붙이지 말자. 잘못한 사람을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았던 걸 냉철함이라고 포장하지 말고 그냥 잠정적인 화살을 던지기만 어땠을까 싶은 후회도 더러 한다. 어쩌면 내가 한 실수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요지부동 떠나지 않는 오점으로 각인돼 있기라도 한다면······. 으스스 등 쪽에서 한기가 솟는다. (...) 헤아리고 살피는 마음이 중요하다. 조금 덜 얻고, 더 많이 주더라도 그건 이미 내 거 아닌 데서부터 출발한 거로 생각하자. 복을 짓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을까? 나는 물권보다는 심령 쪽에 더 많은 애착을 지닌 사람이니까 말이다." ('헤아리고 살피는 마음' 중에서, p152~ 133) -
- "나이 들수록, 갈수록 내 의지와 상관없이 더 심오하게 (아, 어쩌란 말이냐) 그러고 사느라 모든 기가 다 빠지고 있다. 사실은 누군가에게 다 보이고 말, 나 역시도 아무리 아닌 척 시치밀 떼 봐야 딱 내 깜냥만큼의 허당임을 이미 다 보였으니 세상사 이렇게 다 보이는 게임이라면 무승부 아닐까 싶다. 사실은 너도나도 잘 보여서 사는 게 늘 성가시다. 너무 빤히 보지 말자. 너무 잘 보이려고 애쓰지도 말자. 그러니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것까지도 보자. 물론 세상 이치, 나도 보이는 거, 너도 보일 거라는 거다." ('살짝만 보자' 중에서, p143) -
- "어떤 드라마에서 흘린 대사다. '감정은 기억보다 강하다. 오히려 기억은 단단하지 않다. 찰흙과 같아서 빚어지는 대로 바뀔 수도 있고 감정에 의해서 무너지는 거란다.' (...) 때로는 냄새로 기억하는, 잘 익은 김치의 맛이 떠올려지기도 하고······. 날카로운 첫 키스의 뎅그렁뎅그렁 종소리 가득하게 울리는 듯한 첫사랑이라니. 그 어느 쪽이어도 좋을, 기억을 압도하는 감정에 몰입하는 달콤 쌉싸래한 하루쯤이어도 좋을," ('말랑 말랑한 감정은 단단한 기억보다 강하다' 중에서, p170~171) -
- "애틋한 마음에서 나온 나의 분노가 참 부질없었단 생각이다. 부당한 걸 바로잡는 데 스킬이나 교양 따위보다, 논리와 적확한 액션보다 더 필요했던 건 무위無爲가 아니었을까. 흡인력과 거부감이 동시에 발달한 건 결과적으로 마이너스란 얘기다. (...) 나의 취사선택이 매번 올바르다고 자부할 수는 없으니 대부분은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또 받아들일 수 없는 걸 다시 되돌아보지 않기로 한다. 성격이란 게 본인이 원하는 대로 주어지지 않는 거고 다만 다듬는 거라는 걸 알기에 요즘은 선민층이 아닌 선민다운 정중함을 지녀보기로 마음을 먹고 있다. 내가 위험천만하게 자꾸 걷고 올려다보고 또 내다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민충 말고 선민이 되고 싶다' 중에서, p193) -
- "나는 안다. 아무리 옳은 일과 나쁜 쪽에 예감할 수 없는 혼돈이 밀려와도 절대 아닌 사람, 그 나쁜 쪽은 벌할 거고 벌을 줄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는 걸. 출구가 뚜렷한 신념은 새롭게 눈 뜨게 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하나가 된다는 것' 중에서, p227) -
- "너무 잘 알아서 죽도록 미운 사람이 있고 너무 몰라서 살고 싶도록 좋은 사람이 있다. 전자는 이상하게 아는 것만 단점이었고 후자는 하필이면 모르는 것만 단점이었나 보다. 굳이 말장난하자면 알고 있는 단점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나 모르는 단점 중에 치명적인 게 있다면 이 또한 굉장한 난센스가 아닐까 싶다. (...) 흠뻑 맞은 비 때문에 살짝 한기가 들었던 몸을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나니 개운하다. 다시 불면이어서가 아니라 자의적으로 안 자고 싶은 또 그런 날이기도 하다. 묘하게도 잠은 늘 컨트롤이 쉽다. 미처 몰랐던 장점이다. 한밤중의 망중한 또한 나쁘지 않다." ('한밤중의 망중한' 중에서, p261) -
- " '묘비명'이란 음악을 들으며 내 사후의 비문을 적어본다. 1. 벗어두려고 했던 옷을 늘 껴입은 채 살았다. 이젠 진심으로 벗어나려나. 2. 무엇처럼 보다는 무엇답게 살려고 했나 보다. 이렇게 누워 있으려니. 캬아! 누가 썼는지 묘비에 쓰일 문장 또한 대단하다. 히잇!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혹은 나의 부재중임을 단 한 번이라도 기억해 줄 지인과 친구들에게 사실은 엄살 좀 떠는 거다. 난 오직 성실하고 기운찬 환자로서 징징거리지 않기로 지금도 마음, 다잡고 있는 중이다. '샤덴 프로이데'도 아닐 바에 그냥 이런 한 맺히고 아픈 글에는 이상한 여자라고 손가락질만 안 해도 다행이겠다. 진민, 너의 의지대로 남은 생, 멋지게 무엇보다 투지를 다한 치병으로 마무리 잘하자." ('연명치료 거부' 중에서, p332~333) -
어때! 내가 고른 글들이 말야
나는 생각했어. 읽는 것과 쓰는 일 중에서 더 지독한 일은 쓰는 게 맞는 거 같아. 그런데 쓰는 일은 생각보다 또 쉬워. 왜냐하면 그런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써지는 것이니까 말야
그런데 왜 쓰는 일이 더 지독하다고 말하는지 무척 궁금하지? 그것은 말이야, 거기엔 지난한 고뇌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지. 자기 안에서 그런 생각들이 맨들맨들한 조약돌처럼 닮아질 때 그것들이 파도에 쓸려오듯 그 자신이란 뭍의 가장자리로 나오기 때문이지
어때! 내 생각이? 나는 또 생각했어
읽으면서도 표시하고 줄 치고 그럴 때는 잘 안 느껴지던 어떤 하나의 모아짐이 이렇게 옮겨쓰기 하면서는 어떤 감정이 전해지는 거야. 얼마나 그 하나하나에 시선을 두고 마음을 담으면서 고뇌와 갈등 속에서 너 자신을 다독이며 깎아 내었는지에 대해서 말야
너의 안으로 돌린 그 시선의 힘이 한 편의 콩트처럼, 또는 한 편의 단편 소설처럼 그리고 너만이 내릴 수 있는 어떤 판단 속에서, 내면은 아픔과 고통 속에서 시들지 않고 슬픔을 찬란하게 웃음으로 이끌어 내었어
너의 승리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363쪽에 다 담기에는 너무나도 큰 시간들이었지만, 그 시간을 압축해 낸 진민의 승리라고 생각해. 단편 모음집을 읽듯이 진민의 산문집을 읽었어. 너는 진즉 소설로 갔어야 했나 봐!
한 편 한 편 다 뽑아내고 싶지만 그러면 너무 길어져서 안 되겠지. 진 민, 잘했어! 이제 아름다운 생, 길게 살 일만 남았어! 동의하지? 너도 나도 여기까지 왔으니, 서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느라 애쓴 거 같아. 네가 그토록 애쓰고 살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어
그때마다 너와 나는 같이 보조를 맞추려고 애썼지. 나는 항상 너의 옆에 있었어. 그러니 외로워하지 마. 사랑하는 나이고 너인 우리는 하나이니까. 삶을 살아가면서 그렇게까지 멀리,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여기서 새롭게 잘 살아보자. 생의 한복판에서 너와 나 기운을 더 내어서 더 멀리 보면서 살아보자. 나는 내가 이제 많이 이해되었어, 너는 어때?
#진민산문집_나는_내가_어려워_넌_어때_문학세계사
"내 생이 너무 소모적이었다는 자책도 든다." 이 문장은 내가 생을 살면서 간간히 느끼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길게 숨을 내쉬었다. 생이 소모적이라고 느낄 때 오는 낙담은 정말 허무함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그 허무가 주는 것들을 이해해보려 했다.
'언어에 대한 예의'에서는 말과 예의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저자의 견해처럼 이 문제는 우리의 삶에서 떠날 수 없다. 서로가 다르니 오히려 더 우리 곁에 꼭 붙어서 이 문제는 난제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모든 정념이 여기에 쏠리게 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한결같이 집으로 잘 오라고 주문 아닌 주문을 한다." 사람은 특히나 여자는 누군가의 집이 될 구조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가족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염려할 대상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이라도 자기 자신이 아니고 독립된 존재들이므로, 그 존재의 안녕을 염원하는 마음은 '몸'에 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 독립은 곧 '몸'의 독립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몸이 독립되어 있기에 '염려'가 늘 따라붙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집이라는 것은 나에게도 너에게도 필요하다. 그것은 곧 나에게 잘 돌아오라는 의미일 것이다. 나든 너든 우리는 모두 집으로 잘 돌아와야 한다.
'헤아리고 살피는 마음'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너무 많이 헤아리고 살피면, 또한 그것이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자신 안에서 오히려 그 자신에게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자기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기에 오히려 그 자신을 위축시키는 현상을 초래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말로 표현하지 않을 것이라면, 그 자신 안에서 결단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러자면 그 자신 안에서 먼저 연민을 끊어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먼저 강해지지 않고서는 밖으로 그 자신을 내보일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이 문제 역시 늘 염두에 두게 되는 문제였다.
"어떤 드라마에서 흘린 대사다. '감정은 기억보다 강하다. 오히려 기억은 단단하지 않다. 찰흙과 같아서 빚어지는 대로 바뀔 수도 있고 감정에 의해서 무너지는 거란다." 어떤 드라마인지, 좋은 문구를 남겼다고 생각했다. 잘 수용이 되는 것을 보니, 나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할 문구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끝없이 길어졌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는 조금은 다른 마음가짐으로 길게 썼다. 한 사람이 쓴 글의 문장들을 옮겨 쓴 것은 나만의 방식으로 '예의'를 차리고 성의를 보인 것이다. 그렇게라도 마음 안에 웃음꽃이 만발했으면······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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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리뷰 포맷을 어떻게 잡을까? 고민을 하다가..., 진 민 샘의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지요. 그래서 또 하나의 진민이 진민에게 말하는 형식을 취해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