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회 삶의 퀘스트

설 차례 음식 준비 중에

by 아란도


72회를 반복하는 동안 내 안에서는 어떤 요동들이 있었을까? 문득 궁금했다. 삶을 회차로 정리하는 퀘스트 앞에 서 있는 느낌은 언제나 막판에 극화되는 감정 탓이다


한계에 다다랐을 때에만 지나온 시간, 그러니까 이것과 연계된 일들이 일순간에 한 줄에 쫙 꿰어지는 것이다. 총체성은 바로 이렇게 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두 갈래로 가르는 한계에서 극화되는 그 순간 안에 있다는 것. 퀘스트가 진행되면서 아마도 나는 그 한계에서 극화되는 값이 산출하는 그 감정을 컨트롤하려고 하였나 보다


사람 안에 두 개의 값이 나타날 때, 선택의 기로, 감정의 극단화, 이 두 개의 감정을 하나로 묶어 내야 하는 것, 어느 퀘스트에서는 폭발, 어느 퀘스트에서 우울, 어느 퀘스트에서는 무기력, 어느 퀘스트에서는 일탈, 어느 퀘스트에서는 분노, 어느 퀘스트에서는 감사, 어느 퀘스트에서는 미움, 어느 퀘스트에서는 열망, 어느 퀘스트에서는 싸움, 어느 퀘스트에서는 정성, 어느 퀘스트에서는 기도, 어느 퀘스트에서는 희망, 어느 퀘스트에서는 나눔, 어느 퀘스트에서는 이해, 어느 퀘스트에서는 부끄러움, 어느 퀘스트에서는 존재의 사라짐, 어느 퀘스트에서는 세상에 욕 나옴, 어느 퀘스트에서는 중첩, 어느 퀘스트에서는 관조, 어느 퀘스트에서는 즐김, 어느 퀘스트에서는 눈물, 어느 퀘스트에서는 고요······


일의 순서와 동선을 정해서 최대한 평상심으로 어떤 도전 의식으로, '이번에는 어떤 맛과 무엇을 만들까' 하는 설렘도 하나 구비하고


일이란 것이 아무리 순서와 동선을 정해서 기계적으로 해 나간다 해도 시간의 투여를 그렇게까지 많이 줄일 수는 없다


모든 일은 시간이 투여된 결과다


언제부터인가 1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알게 되었다


영상을 보는 1분은 순식간이지만, 그 1분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의외로 적은 정보가 아니다. 그리고 1분의 영상을 만들려면 대략 30분 내지 1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이 비실효성의 과정, 1분 영상에 한 시간을 투여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런데 현실은 이 실효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누군가 소비하는 1분이 누군가에게는 1시간일 수도 있고 또 그 이상의 시간이기도 한다


세상에는 이런 모순이 비일비재하게 존재한다. 시간을 더 많이 투여하는 쪽이 생산자일 수밖에 없다.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진행되는 세계에서, 1분의 소비를 붙잡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이 동원되고 있다


나의 퀘스트 시간에서 어떤 한계에 직면하는 순간은 10시간이 넘어가면 나타난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제사 음식이란 게 하루 안에 끝내야 한다. 신선도를 동시에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약적으로 단 기간에 노동을 투여하는 제사 음식은, 어쩌면 1분의 영상과 같다. 한 시간여의 제사 퍼포먼스를 행하기 위하여 14시간 내지 15시간이 소요된다.


그 의식 행사를 치르는 동안에 나의 퀘스트는 어떤 나만의 비현실적 사실(실재)에서 공간을 바꾸며 진행되었다. 그 공간은 그때마다의 나의 훈련장소였다. 아마도 그 공간은 그때의 나의 상황과 환경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장소였을 것이다


한계에 도달한 시간에서 발생하는 그 극화는 나를 양갈래로 찢는다.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이 서로 싸운다. 몸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해야 할 것을 하고 있다. 나는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일이 어느 순간 끝날 거라는 것을 경험칙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맞는 해방감이 지금의 이 압박을 한방에 날려버릴 것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오늘은 72회의 퀘스트를 세어 보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니체 낭독도 90회에서 끝나던데, 나는 몇 번의 퀘스트를 더 진행해야 해방되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건 분명 체력상의 한계에서도 기인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항상 양쪽으로 극화되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어느 한쪽으로는 자연의 순리와 맞닿아 있고 또 어느 한쪽으로는 순수하게 나의 인생과 맞닿아 있다. 나는 순수하게 외부에서의 다른 것 관여 없는 나의 인생만을 놓고 이야기해 보는 것이다


나는 쾌스트 안에서 스스로 살았고 나는 그 퀘스트를 다른 방식으로 할 수도 있다. 그러자면 퀘스트 밖으로 걸어 나가야 할 필요도 있다. 문제는 퀘스트 안에 있었던 게 순순하게 나의 의지만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내 안의 극화는 일의 절정에서 그리고 어느 순간 끝나는 그 일의 반복의 경험에서, 항상 계속 가 보는 방향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정시간이 경과하면 일은 다시 어떤 설렘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새롭다가 아니라 시간의 경과에 의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그 일 앞에 서고 다시 한계에 봉착하고 늘 처음처럼 한계 앞에서 당황하고 극화로 치닫는 마음을 감당하며 버티고 그리고 끝.


일이란 것, 하나의 퀘스트 안에 또 다른 퀘스트들이 연동되고 연동된다. 그리고 그것들의 중첩의 중첩이 또 하나의 일의적 방향을 만든다. 나에게 총체적 관점이란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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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음식 먼저 따로 보관 후, 남은 분량을 우리가 먹었다. 비빔밥이다. 고사리는 양이 적어서 비빔밥에서는 패스. 이번에 동네 마트가 공사 중이어서 인터넷 쇼핑으로 명절 차례상 장보기 해결. 집 밖에 안 나가도 되니 좋았다. 바깥 날씨가 추우니까. 그는 나물 비빔밥을 좋아한다. 나는 비빔밥을 잘 안 먹지만, 이제는 잘 먹는다. 비빔밥 막사발이 참 좋아!


우리가 먼저 맛보는 이유는 혹여 음식에 이상 없나! 기미를 먼저 한 거라는 걸....ㅋ (먹을 음식이 이것밖에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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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명절 인사,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므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항상 하게 된다. 나와 나는 약간은 반대 기질이 있는 것 같다.


2025년 새해에도 맛나고 멋난 시간, 자기 한계를 과감하게 넘어 보는 (그렇지만 그 한계가 무작정, 무모한 도전을 의미함은 아님을, 모두 아실 터이니..., 그 자신의 가야 하는 길이라고...) 한 해 되세요^^




깎은 밤톨 같은
덩근이 감껍질처럼 보인다
야채 어묵튀김
야채 어묵 튀김
야채 어묵 튀김. 마치 치킨 같다는...
나물 부침개 비빔밥
부침개도 잘라서 넣고
수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