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기획 전시 섹션 1~6관에서 사진 찍었던 그림들
#카라바조_기획_전시 1 <전시관에 쓰인 글 그대로 올리며, 섹션 1~6까지 사진 찍었던 그림들을 기록 차원에서 올린다.>
________________
빛의 거장 카라바조
카라바조는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과 문화에 걸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화가로 사후 4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처음 붓을 들었던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에서 시작하여 부와 명예를 얻은 로마와 나폴리 그리고 비극적인 삶의 마지막까지, 카라바조 생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며, 그가 남긴 주요 작품들을 살펴봅니다.
뿐만 아니라 후기 매너리즘 화풍을 고수하는 일부 예술가들과 달리, 카라바조의 자연주의적 회화 개혁을 함께한 동료 화가들과 17세기의 예술 문화를 더욱 더 풍부하고 다채롭게 만든 동시대 예술가들을 함께 만나봅니다.
카라바조 그 파란만장한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포스트 카라바조(post CCaravaggio)", 즉 카라바조 이후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전시는 끝이 납니다.
카라바조의 삶과 예술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보고 들어야 할 중요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고 이 위대한 롬바르디아 출신 천재가 다음 세대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남긴 예술적 유산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_______
들어가며
화면을 가로지르는 찬란한 '빛'과 짙은 '어둠'의 강렬한 대비로 장면의 극적 긴장감을 한층 끌어올린 이 작품은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tenebrism) 기법"이 돋보이는 성 마테오의 소명(The Calling of Saint Matthew)입니다.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화면 속 '빛'과 '어둠'을 전시장으로 옮겨와, 명암 대비 효과를 통한 극적인 순간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카라바조가 빛과 어둠을 활용해 어떤 효과를 만들어 냈는지 직접 경험하며 그의 예술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_________
Section 1
카라바조의 예술적 뿌리를 찾아서
______________
카라바조의 예술
미켈란젤로 메리시(일명명 카라바조)는 1571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 유럽 전역의 흑사병이 펴지면서 그의 가족은 스포르차 가문의 작은 영지인 카라바조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잃는 비극을 겪었다.
13세가 된 카라바조는 티치아노의 제자이자 베네치아 색채주의를 롬바르디아에 소개한 시모네 페테르차노의 작업실에서 수련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밀라노의 주요 교회들로부터 의뢰받은 작품을 모사하며 쌓은 이때의 경험은 훗날 그의 작품에 무궁무진한 도상학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 후 카라바 조는 롬바르디아 내륙과 베네토 지역을 여행하며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의 작품을 접하고 견문을 넓혀갔다.
이번 섹션은 모레토의 베네치아 내륙 지방 회화인 <아기 세례자 성요환, 성 엘리사벳과 함께 있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소개한다.
이 작품의 부드러운 색채는 파다니아 북부 지역을 떠올리게 하며, 웅장하거나 이상화되지 않고 세속적인 현실에 고착되는 듯하다.
카라바조는 모레토의 작품을 보며 현실을 더욱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을 익혔고, 베르나르디노 캄피, 빈센초 감피 형제와 같은 예술가들처럼 빛을 활용한 회화 기법을 개척해 나갔다.
캄피 형제의 <회개하는 성 예로니모>는 빛으로 인물을 부각시키고 윤곽을 또렷하게 드러내어 생동감을 부여한 작품이다.
프란체스코 바사노의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는 난로에서 피어오르는 불, 여기저기 흩어진 식기와 도구들, 닭과 생선을 손질하고 요리를 준비하는 일상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관객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와 대화하는 이 장면에서 마르타는 삶의 기쁨에 전념하는 여인으로, 마리아는 관상하는 삶의 모험적인 예를 상징한다. 조르조네 화풍의 풍경에서 빛은 구름 낀 하늘을 환히 밝히며, 이 순간의 엄숙한 분위기를 한층 강조한다.
________
베르나르디노 캄피와 빈센초 캄피 형제의 작품
<회개하는 성 예로니모>
베르나르디노 캄피와 빈센초 캄피 형제의 작품
<회개하는 성 예로니모>
베르나르디노 캄피와 빈센초 캄피 형제의 작품
<회개하는 성 예로니모>
________
알렉산드로 본비치노
<아기 세례자 성 요한, 성 엘리사벳과 함께 있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___________
루도비코 카라치 <성 바오로의 회심>
루도비코 카라치의 걸작 <성 바오로의 회심>은 1587년 볼로냐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 위치한 잠베카리 가문 예배당을 위해 제작된 작품으로, 당시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고 전해진다.
젊은 카라바조 역시 그들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크다. 루도비코는 장엄하게 일어선 말에서 떨어진 바오로가 땅에 쓰러진 순간을 혁신적으로 구성했으며, 이 구도는 17세기 자연주의의 선구적인 예로 평가받는다.
이 장면은 이후 카라바조가 제작한 <성 바오로의 회심> 첫 번째 버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불과 몇 년 후, 카라바조는 루도비코의 이러한 혁신적 구성 방식을 자신만의 독창적 해석으로 재창조하며,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관객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장면을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작품은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울<후일의 바오로) 이 회심하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사울은 기독교인 탄압을 목적으로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쿠스로 떠났지만, 도중에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빛에 의해 말에서 떨어지고 만다. 이 때 그는 하느님 목소리를 듣는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박해 하느냐?" 이 신성한 음성에 사울은 즉시 눈이 멀게 되며, 이후 3일간 실명한 상태로 방황하다가 다마스쿠스의 기독교 지도자인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고 시력을 회복하며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다. 사울은 개종 후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이후 이방인의 사도로서 기독교 복음 전파에 헌신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이 제단화는 볼로냐 국립미술관 소장작과 유사한 크기와 구도를 지닌 작품으로, 루도비코가 제작한 첫 번째 버전으로 추정된다. 이 버전은 이후 기변과 기사들이 추가되며 장면이 더욱 완성된 형태로 발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루도비코 카라치 <성 바오로의 회심>
루도비코 카라치 <성 바오로의 회심>
_____________
프란체스코 바사노 일 지오반니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프란체스코 바사노 일 지오반니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 이 그림은 대작이다. 그림 안을 채우는 내용도 많다.
프란체스코 바사노 일 지오반니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프란체스코 바사노 일 지오반니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프란체스코 바사노 일 지오반니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포커싱
프란체스코 바사노 일 지오반니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포커싱
프란체스코 바사노 일 지오반니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포커싱
프란체스코 바사노 일 지오반니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포커싱
프란체스코 바사노 일 지오반니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포커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