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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젊은 바쿠스'

'젊은 바쿠스' 쿠프를 흔들다

by 아란도


1.

카라바조의 그림 <젊은 바쿠스>에 대해서 백과사전에 수록된 내용이 앞뒤가 좀 안 맞는 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카라바조가 그린 바쿠스는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를 그린 것이니까, 이 그림은 장인적인 바쿠스를 그렸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전반적으로 그림 속의 바쿠스는 어떤 노동과 관계가 있다고 보인다. 포도가 시들어 가는 것은 먼저 시들려야 포도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단맛과 산도는 과일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높아지기 때문에. 그리고 바쿠스 손톱에 때는 포도주를 직접 만들었다는 의미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만든 포도주를 바쿠스는 지금 시음하고 있는 것이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유리 잔의 형태이다. 카라바조가 16세기 사람이니까...그 당시의 유리잔을 그렸을 텐데, 검색해 보니 저런 형태의 유리잔(와인 글라스)은 쿠프 글라스인데, 쿠프는 카라바조 이후에 나온 거 같은데.., 카라바조는 와인 잔 위의 형태는 안 그린 것일까? 원래 저런 잔인가?

바쿠스의 얼굴은 중성 형태에 가깝고 마치 동양 화장을 한 듯한, 그리고 손은 붉은 데, 이건 술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을렸거나 술 담그느라고 손을 많이 사용했다는 것이지 않을까. 바쿠스의 실제 모델은 카라바조의 친구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물론 인생이란 백과사전 안의 내용처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9700057>


"시간이 다해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는 뜻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허무함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카르페 디엠은 허무하니까 더 가치가 있는 것처럼, 반면에 현재가 지나가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술은 발효가 되어야 제 맛이 드러난다. 그러니 시간의 허무함은 곧 변화이기도 하다. <젊은 바쿠스>는 바로 현재와 시간의 허무를 딛고 일어나는 변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언젠가는 다 사라진다는 그 허무함이 과연 현재를 즐길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을까? 현재를 사는 힘은 지나가는 현재의 허무가 변화하여 새로운 것이 되는 바로 그것에서 오는 것이지 않을까. 바로 그것이 아모르 파티라고......



2.

카라바조 자화상을 그의 유년아동기 시절로 복원해 보았다.

카라바조 자화상을 그의 유년아동기 시절로 복원해 보았다. 수염 때문에 어색하긴 하지만, 그림안의 바쿠스 얼굴형처럼 나오려면 그 시절 뿐이므로 최대한 둥굴게 복원하였다. 카라바조가 바쿠스처럼 눈을 지그시 내리 깔고 사선으로 응시하고있다고 생각하면서 복원 시도한 그림 보기로.


물론 폰에서 앱 기능으로. 수염은 완벽히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얼룩만 생겨서 더 지저분해졌다. 그대로 두었다. 피부와 얼굴 형태만 바꾼 셈이다.





바쿠스 볼과 턱선의 형태는 3~5세 아동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포동하고 볼이 볼록하고 턱의 윤곽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그런 동그란 형태. 그때는 그냥 얼굴형이 그렇게 되는 듯하다. 카라바조는 유년의 순진무구함을 바쿠스의 얼굴에 투영했는지도 모르겠다. 신을 표현할 얼굴에 그 보다 찬란한 얼굴빛이 어디 있겠는가.


바쿠스의 놀이적 축제와 카라바조의 인생의 희비극은 여기서 하나로 모인다. 카라바조에게 있어 그 당시의 세계는 어떤 변화를 바라는 세상의 어떤 열망이 스며들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이 사진은 유리잔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쿠프 형태의 잔이 맞는 것 같은데, 잔 형태가 상당히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준다. 포도주가 솟아나는 샘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다른 통로처럼. 신적인 느낌은 바로 잔이 샘처럼 보이도록 하는 그 물결이 이는 포도주의 흔들림, 잔을 흔드는 그 섬세한 손놀림에 있는 것인지도....!




또 한편으로는 불화의 관음보살의 얼굴형도 둥글다. 관음보살의 얼굴은 나이가 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중성적인 그러니까 성을 초월한 형태의 얼굴 표정은 그래서 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지그시 내려다보는 눈이다. 니체는 높은자는 올려다보지 않고 내려다 본다고 했다. 정상에서 전모를 볼 때는 내려다볼 뿐 올려다 보지 않는 것처럼...., 그런 의미들일까...어쨌든 카라바조의 바쿠스에서는 동양적인 뉘앙스가 풍긴다.


바쿠스의 얼굴 모델을 카라바조의 친구라고 추정한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바쿠스의 얼굴은 카라바조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여러 작품들에 자신의 얼굴을 넣은 카라바조이니 이상할 것은 없다고 생각된다. 휘어진 검은 눈썹 모양은 카라바조와 거의 유사하다. 그리고 눈매 모양도 그러하고, 입술 모양도 그러하다. 카라바조가 그린 바쿠스의 얼굴은 카라바조의 5~6세의 얼굴 모습과 어떤 현재의 의식을 담은 것이지 않을까. 바쿠스의 손의 빛깔은 화가 자신의 손인지도 모른다.


카라바조는 바쿠스를 포도주를 만드는 장인의 모습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어떤 것에 장인이 된 모습은 순진무구한 그 순수함이 아니고서는 그것을 제대로 발현할 수 없다. 햇볕에 그을린 손 또는 포도를 반죽하느라 붉어진 손, 포도의 붉은 방울들이 튀었거나 또는 먼지들이 몸에 붙어 있는, 노동 후 아직 씻지 않은 상태에서의 포도주 시음..., 순수함과 노동을 동시에 그렸으나 바쿠스의 손은 노동자의 손은 아니다. 오히려 포동하고 섬세하다. 쿠프를 손가락으로 흔드는 것처럼 이러한 것만이 바쿠스가 누구인지 다시 자각하게 한다. 인간과 신 인간과 장인, 신과 장인, 그 모두의 매개체는 예술 그 자체라고.




*사진 이미지는 모두 모셔 온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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