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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자와 인민이 하나가 될 때, 국민의 권력 탄생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머리말' 옮겨 쓰기 (2)

by 아란도

#자유론_존_스튜어트_밀 -머리말 옮겨 쓰기_(2)

#민주정에서_지배자와_인민이_하나가_될때_바로_국민의권력_탄생 * 이 말은 시대와 상황 따라 해석의 오해가 있을 수 있으나, 밀의 이 문장을 지금 우리나라에 대입해 보면, 가장 딱 들어맞는 순간이다. 지난 6개월 간 대한 국민은 이 과정을 성사시켜 온 것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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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23:7줄~25:4줄


권력을 제한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정치적 자유 또는 ‘권리’는 어떤 불가침 영역을 설정한 뒤, 권력자가 이를 침범하면 그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에 피지배자들의 국지적 저항이나 전면적 반란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한다.


둘째,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 통용된 규정) 국가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구성원 또는 구성원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기관의 동의를 어도록 헌법으로 규정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럽의 최고 권력자들은 대부분 첫 번째 항의 제한을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두 번째 항은 사정이 그렇지 못했다.


그러자 이 두 번째 항을 달성하는 것과 좀 더 완벽하게 제한을 가하는 것이 자유를 찬미하는 사람들의 목표가 되었다. 하지만 적을 하나씩 물리치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 권력자가 횡포를 못 부리도록 어느 정도의 효율적인 장치(시스템)만 만들어 놓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더 이상을 욕심부리지 않았다.


점차로 사회가 더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지배자의 이익이 대립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이 대립은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도덕이나 관습에 의해 그렇게 인식된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버리자, 오히려 나랏일을 담당하는 고위직 관리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일꾼 또는 대리인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바꿔버릴 수 있는 존재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즉, 사람들은 권력자를 교체하는 것이 국민의 이익에 반하여 함부로 정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점차 각국의 민주 정당들은, 지배자의 권력을 제한하기보다는 일정 임기의 지배자를 선거를 통해 뽑는 방식이 ‘국민의 이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피지배자들의 주기적인 선택을 통해 지배 권력을 창출하는 제도가 정착되고 확산되면서, 어떤 이들은 ‘그동안 너무 권력의 제한에만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물론 인민의 이익에 반해서 줄곧 권력을 휘둘렀던 지배자들에게는 그런 조치가 필요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과 지배자의 이익이 대립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는 생각을 버리게 됨”으로 인해서, 일꾼(대리인)은 교체가 가능하다는 각성에 의해, 권력을 제한하기보다는 일정 임기의 지배자를 선거를 통해 뽑는 방식이 정착하게 되었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이제는 ‘지배자와 인민이 하나’가 되어야 했다. 지배자의 이익이 국민의 이익이 되고, 지배자의 의지가 곧 국민 전체의 의지가 되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국민이 자신의 의지를 견제할 필요가 없어졌다. 국민이 스스로에게 횡포를 부릴지 모른다는 걱정을 할 필요도 없어졌다. 지배자는 국민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져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국민에 의해 즉시 권좌에서 쫓겨나게 된다.


따라서 국민이 권력의 사용처와 사용 방법을 엄격히 규정한다면, 그 권력을 지배자에게 안시하고 맡길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을 대신해서 행사하기 편리하도록 지배자 손에 집중되어 있을 뿐, 그것은 사실상 ‘국민의 권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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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p25:5줄~28:12줄 #부당한_침해가_일어나지_않게_하는_것은_인간다운_삶을_유지하는_데_가장_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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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자유주의(European liberalism)의 마지막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생각 또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대륙의 자유주의자들은 아직도 이러한 경향을 두드러지게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대륙의 정치 사상가들 가운데, 그들이 볼 때 아예 존재하지도 말아야 할 정부라면 모를까, 정부가 하는 일에 어떤 형태로든 제약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극소수다. (만약 정부에 제약을 가하도록 만드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었다면, 영국에서도 대륙의 정치 사상가들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즉 19세기에 이미 영국에서는 대륙의 정치 사상가들처럼 생각하지 않은 이들이 많아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의 경우처럼, 정치나 철학 이론도 변변찮을 때는 눈에 띄지 않다가 성공을 거두면서 그 결점이나 허점이 발견되곤 한다.


민주 정부를 세우는 것이 꿈속에서나 가능하거나 까마득한 옛날에나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질 때는, 인민이 자기 자신에게 행사되는 권력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자명할 것이다. 그런 생각은 프랑스 혁명 같은 일시적인 소용돌이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가장 큰 땅덩어리를 차지하는 한 나라에서 ‘민주 공화정(democratic republic)이 세워졌다. 그 나라는 국제 사회의 열강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수립되고 인민에게 책임을 져야 할 정부가 하는 모든 일이 사람들의 관찰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자치自治’나 ‘인민의 자기 자신에 대한 권력 행사’라는 등의 말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권력을 행사하는 ‘인민’은 그 권력이 행사되는 대상과 늘 같은 것은 아니다. ‘자치’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각자가 스스로를 지배(government of each by himself)하기 보다, 각자가 자기 이외 나머지 사람들의 지배를 받는 정치 제제(government f each by all the rest)가 되고 있다.


게다가 인민의 의지라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사람들 또는 인민들 가운데 가장 활동적인 일부 사람들, 다시 말해 다수파 또는 자신을 다수파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사람들의 의지를 뜻한다.


따라서 인민이 자신들 가운데 일부를 억누르고 싶은 욕망을 품을 수도 있으므로, 다른 권력 남용 못지 않게 이에 대한 주의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집권자가 인민, 즉 인민 가운데 가장 강력한 집단에 대해 정기적으로 책임을 지게 되더라도, 정부가 개인들에게 행사하는 권력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런 생각은 높은 지성을 자랑하는 사상가들, 실질적이고 잠재적으로 민주주의와 대립할 수밖에 없는 유럽 사회의 주요 계급에 똑같이 파고들어 그 위상을 굳혔다.


이제 정치에서 ‘다수의 횡포(tyranny of the majority)’sms 온 사회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큰 해악 가운데 하나로 분명히 인식되고 있다.


다른 권력의 횡포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횡포도 주로 공권력 행사를 통해 그 해악이 처음 목격되었으며, 지금도 다르지 않다.


사회 전체가 횡포를 부린다고 할 때, 다시 말해 사회가 개별 구성원들에게 집단적으로 횡포를 부린다고 할 때, 그것은 정치적 권력 기구의 손을 빌려 할 수 있는 행위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스스로의 뜻을 관절시킬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한다. 이처럼 사회가 그릇된 목표를 위해 또는 관여해서는 안 될 일을 위해 권력을 휘두를 때, 그 횡포는 다른 어떤 형태의 정치적 탄압보다 훨씬 더 가공할 만한 것이 된다.


정치적 탑압을 가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웬만해서는 극형을 내리지 않는 대신, 개인의 사사로운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마침내 그 영혼까지 통제하면서 도저히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 권력자들의 횡포를 방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의견이나 감정이 부리는 횡포, 통설과 생각이나 습관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회가 법률적 제재 이외의 방법으로 윽박지르면 그 통설을 행동 지침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경향에도 대비해야 한다.


사회는 이런 방법을 통해 다수의 삶의 방식과 일치하지 않는 그 어떤 개별성(individuality)도 발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할 수만 있다면 아예 그 싹 조차 트지 못하게 막으면서, 급기야는 모든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을 사회의 표준에 맞도록 획일화하려고 한다.


그러나 집단의 생각이나 의사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 개인의 독립성에 함부로 관여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 그런 한계를 명확히 하여 부당한 침해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데서 정치적 독재를 방지하는 것 못지 않게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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