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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의 도덕감정 형성은 공감과 반감이 더 크게 작용

자유론_존_스튜어트_밀 -머리말 옮겨 쓰기_(3)

by 아란도

#자유론_존_스튜어트_밀 -머리말 옮겨 쓰기_(3)

#대부분은_욕망이나_자기염려_즉_정당한_또는_정당하지_않은_자기_이익이_결정_인자가_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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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p28:15줄~30:21줄


개인의 독립성과 사회의 통제 사이에서 적절한 접점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무엇이든지 누군가에게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여부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제약을 가할 힘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일부 행동 규칙은 우선 법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법이 관여하기 어려운 그 밖의 많은 일들은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어떤 것이 이런 규칙이 되어야 마땅한지는 우리 인간의 사람에서 가장 중요하게 탐구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아무 명백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이 문제의 정답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시대에 따라서 답이 항상 다르다. 서로 다른 두 사회가 같은 답을 낸 적이 거의 없다.


한 시대나 사회가 내린 결정이 때로 다른 시대나 다른 사회의 사람에게는 놀라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결정을 내린 특정 시대, 특정 국가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오래전부터 늘 자신들과 똑같은 생각을 해왔다고 믿으며 이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확립한 규칙이 자명하며 누가 봐도 옳다고 여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이런 착각은 ‘관습이 빚어내는 가공할 만한 부작용’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관습이라는 것은 속담 그대로 ‘제2의 자연’이다. 하지만 관습은 자연을 지속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관습은 사람들이 만들고 지켜온 행동 규칙의 타당성을 전혀 의심하지 못하게 만드는데, 관습은 이성적인 토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일반적인 인식 때문에 이런 속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것은 이성보다는 감정의 문제이며 따라서 이성은 필요하지 않다고 믿어왔다. 그리고 철학자 행세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그와 같은 믿음을 더욱 부추겼다.


자신, 그리고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타인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그 감정이 각자의 행동을 규율하는 실제 원리가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느 누구도 자기가 원하는 것이 곧 자신의 판단 기준이 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행동을 둘러싼 생각이 이성의 뒷받침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특정 개인의 선호(preference)dp 지나지 않는다. 이성의 뒷받침이 있다 해도 그 이성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선호에 대한 호소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여전히 한 사람 대신 여러 사람의 마음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반면에 보통 사람의 경우, 다른 사람들의 그런 선호가 도덕과 기호嗜好 또는 예의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세우는 데 거의 유일한 근거로 강력하게 작용한다. 또한 그 사람이 믿는 종교의 교리도 이에 대해서는 분명한 지침을 주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그러한 선호가 종교의 교리를 해석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칭찬받을 만하며 어떤 것이 비난받을 일인지에 관한 생각은 다양한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다. 이들 요인은 다른 사람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주면 좋겠다는 자신의 바람에 영향을 끼치는데, 여타 문제에 대해 바라는 바를 결정하는 것이 많은 만큼이나 그 가짓수가 다양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성이나 편견이나 미신, 어떤 때는 사회적 호감 또는 정반대로 사회적 반감, 어떤 때는 부러움이나 질투, 교만, 오만 같은 것들이 그런 역할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욕망이나 자기 염려, 즉 정당한 또는 정당하지 않은 자기 이익이 결정 인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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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p30:22줄~33:6줄 #한_사회의_도덕감정을_형성하는_데에는_그_사회_전체의_명백한_이해관계가_당연히_중요한_역할을_하는데_그러한_이해관계_속에서_생겨나는_공감과_반감_이_더_큰_영향을_준다


어떤 한 계급이 떠오르는 곳에서는 어디든 그 계급의 이익과 계급적 우월 의식이 그 사회의 도덕률을 크게 좌우한다. 예컨대 스파르타 사람과 그들의 노예, 농장주와 흑인 노예, 왕자와 신하, 귀족과 소작농, 남자와 여자 사이의 도덕률은 대부분 이런 신흥 계급의 이익과 감정에 따라 결정된다.


반면에 기세 좋던 계급이 몰락하거나 그 계급이 상승세를 타는 것을 사람들이 싫어하게 되면, 지금까지 지배적인 위치에 있던 도덕 감정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잦아진다.


사람들에게는 세속의 권력자 또는 신이 좋아하거나 싫어할 거라고 생각되는 바를 맹목적으로 추종 또는 기피하는 노예근성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이 곧 ‘지시와 금지’의 형태로 인간의 규칙을 결정적으로 규정하는 또 다른 원리가 된다. 이 노예근성은 이기심을 근본으로 하지만 위선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마술사나 이단자를 화형 시키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증오심을 낳는다.


한 사회의 도덕 감정이 형성하는 데는 하찮은 여러 요소들이 영향을 끼친다. 특히 그 사회 전체의 명백한 이해관계가 당연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면밀하게 따져보면 그러한 이해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공감과 반감’이 더 큰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 또는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세력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규칙의 실질적 원천이 된다. 사람들이 법을 지키는 이유는 법을 지키지 않을 때 따르는 처벌이 두려워서이다. 또한 사람들은 여론의 힘에 밀려 그 규칙을 준수한다.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생각과 감정을 선도해온 사람들은 세밀한 부분에 불만이 있더라도 이 큰 틀을 내버려두었다. 그들은 사회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지 따지기보다는, 사회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해야 하는지 캐묻는 데 주력했다.


그들은 이단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과 같은 보편적 대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특정 영역에서 자신들이 보여주는 이단적 성향을 껄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바꾸는 데 더 골몰했다.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적 신념만은 한마음으로 꾸준히 지켜왔다. 이 문제는 여러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른바 도덕 감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데 더없이 중요한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학적 증오 odium theologicum’rk 가장 확실한 도덕 감정의 하나가 된다. 자칭 ‘보편 교회 Universal Church’의 족쇄를 앞장서 풀어버린 사람들도 처음에는 종교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점에서는 그들도 교회 못지않았다.


그러나 어느 한쪽도 완승을 거두지 못한 채 각 교회 또는 종파가 본래 지분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상황에서 심각한 갈등과 대립이 막이 내리자, 다수파가 될 가능성이 없음을 알아차린 소수파들은 상대방에게 종교적 관용을 호소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바로 이 싸움을 통해서 거의 결정적으로, 사회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원리의 중요한 토대가 확보된 것이다. 이제 사회가 생각을 달리하는 개인에게 함부로 간섭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연꽃 씨앗(연자) 발아 모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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