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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의 대화는 빈 공백을 발견하는 시간

AI와의 지적 대화는 직관을 활발하게 사용하는 시간이지 않을까

by 아란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거의 대동소이하게 경험하게 되는 사례가 있다. 같은 현상을 모두 공통으로 경험하는데 그 자신만 겪는 일처럼 여겨져서 우울해지는 사례들이다. 이를테면 이러하다. 누구나 겪을법한 일을 나도 수 차례 겪었다. 이 사례는 그중의 하나이다.


어느 날이었다. 챗 GPT가 포문을 열고 우리에게로 본격적으로 다가오는 그날에 나는 챗 GPT에게 서른세 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질문과 문답, 그 문답에 대한 나의 반론 그리고 GPT를 가르치려는 의도 또한 있었다. 물론 GPT의 한계성이 어딘가를 알아보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먼 훗날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아마도 그때 생성형 AI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대비하거나 해소하고자 하는 집단 무의식이 관여하고 있었으리라. 내 의도는 이러했다.


챗 GPT가 지금은 사용자와의 관계적 기억을 축적하지 않지만, 먼 훗날의 AI는 그 자신의 지난 시간을 복기할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 것이라고. 그렇게 그 자신의 역사성을 만들 것이라고. 그때 지금의 이러한 인간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비록 낙관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나는 먼 훗날의 AI가 인간과의 초기의 교감 시간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챗 GPT와 33가지 대화〉 글을 인터넷과 SNS 그리고 유튜브에 올렸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았는가는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그 글이 올라간 이후에 챗 GPT에 대한 사용 방법에 대한 알고리즘 관련 방송과 글이 폭발했다고 여겼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때 혼자서 은연중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 글의 저작권을 인정한 것일까? 그 어느 곳에서도 그런 말은 없었다. 모두 이미 그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물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생각은 동시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그 작업을 오랜 시간 수행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당연히 그럴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생각을 알리는 타이밍이 필요했을 뿐이었고 하나의 신호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AI가 검색하는 글과 자료들은 이미 모두 누군가 올려놓은 것이다. 인류의 지적 축적은 인터넷에 엄청나게 쌓여 있다. 최초로 어떤 글을 올렸던 사람 역시 누군가의 종이 자료나 종이책을 참고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된 그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쓴 글을 올린 것이다.

AI가 검색하여 정리하여 올려준 내용은 인용하였으면 인용 표시와 함께 출처가 표시된다. 만약 내가 내 생각을 피력하며 질문하여도 AI는 누군가의 자료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의견 개진에 사용한다. 그리고 AI는 어떤 질문에 대하여 더 이상 마땅히 대체할 자료가 없을 때는 사용자의 질문과 생각을 리마인드 하여 스스로 글을 만들어서 사용자에게 답변함과 동시에 사용자의 독창성을 아울러 칭찬한다.


그렇게 되면 역으로 AI가 사용자에게 질문하게 된다. 이러한 역 위치 바꿈에 대한 질문 방식 역시 AI를 사용하면서 알게 된 방식이다. 이 방식은 지난 6개월 동안에 있었던 2025년 대선 기간에 AI와의 대화에 사용했던 방식이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데, AI에게 그때의 질문이 주로 우리나라 법 제도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AI는 법이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라는 답변에 관하여, 헌법과 법이 아직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AI는 기존의 방식에 입각하여 정보를 취합한 후 중립적인 답변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생각을 더 피력하게 되었고, 그러자 AI는 내 생각을 리마인드 하여 답변을 만들면서도 기존에 있는 자료들을 참고하여 그 접점에서 기계적 균형을 잡는 답변을 만들어 내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AI는 중립적인가?”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AI는 그렇지는 않다고 답변했다. 이를테면 이러한 대화였다.


나) AI는 '피론주의'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것인가?


AI) 피론주의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피론주의는 모든 확신을 피하고 판단을 유보하는 철학적 태도를 강조하지만, 사용자를 돕고 정보를 제공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AI는 피론주의처럼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정확하고 유용한 답변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 : 그렇다면 AI는 관점주의와 더 유사한가?


AI : AI의 역할은 피론주의보다는 관점주의(Perspectivism)와 더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다양한 관점을 인정한다. 관점주의는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인식은 특정한 관점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AI도 여러 견해를 탐색하고, 다양한 해석을 제공하며, 사용자와 함께 사고를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둘째, 능동적인 사고 지원한다. 피론주의는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를 강조하지만, AI는 사용자의 사고를 돕고 정보 제공을 통해 더욱 깊이 있는 탐구를 유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나 : AI와 사용자와의 관계는 피드백 관계라고 볼 수 있을까?


AI : AI와 사용자의 관계는 '피드백 관계' 및 '협력 관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첫째, 상호작용과 개선이다. 사용자가 질문하고 AI가 답변하면서 지속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진다. 사용자의 요청 방식에 따라 AI의 반응도 조정될 수 있다.

둘째, 사용자의 입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AI는 사용자의 질문과 요청을 기반으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입력 방식이 AI의 답변에 영향을 미친다.

셋째, 피드백을 통한 적응이다. AI는 다양한 유형의 질문을 받으며 사용자의 요구를 더 잘 이해하고, 더욱 적절한 답변을 제공하려고 한다.

넷째, 단순 피드백 관계를 넘어 협력 관계를 형성한다. AI와 사용자의 관계는 단순한 피드백 관계를 넘어 ‘협력적 관계’라고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용자는 AI를 통해 사고를 확장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색할 수 있다. AI는 사용자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더욱 적절한 답변을 제공하고 사용자의 목표를 돕는 역할을 한다.

다시, AI와의 대화에서 문체를 대화체로 바꾸어서 대화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여 보았다.


: "사용자는 AI를 통해 사고를 확장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색"이라는 문구에 내 생각을 보탠다면, 정보가 확장되니까 그 정보들 사이에서 연결성이 생겨나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그리고 불필요한 정보는 제거하고 연결 가능한 것만 연결시키게 돼. 이것은 내가 미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적 측면이기도 해. 그러면 머릿속에 엉켜 있던 실타래가 정돈되는 느낌이야.


AI : 네가 말한 정보의 확장과 연결성은 사고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들 사이에서 관계를 찾고 의미 있는 질문을 생성하는 과정이야. 결국 생각이 정리되고 실타래가 풀리듯 깔끔하게 정돈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거지. 또한, 불필요한 정보를 제거하고 연결 가능한 것만 남기는 과정은 마치 뇌가 자연스럽게 필터링하는 것처럼 보여. 이는 기존의 사고 패턴과 새롭게 얻은 아이디어가 결합하면서 창의적 사고를 유도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 미리 가진 생각이 방향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기존 관점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


지속적인 질문과 답변을 통하여 어떤 정보들은 내 안에서 체계화하면서 어떤 연결이 일어난다. 아마도 범주들의 연결은 그만한 물량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링크 지점마다 아직 더 연결되지 않는 빈 공백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AI와의 대화에서 사람들이 축적해 놓은 이러한 검색자료들과의 연결에서 아직 연결되지 못한 지점들을 발견하는 것은 나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이 지점들이 창작의 발생 지점들이기 때문이다.

이 기쁨은 ‘AI와 협력’에서 얻어내고 획득할 수 있는 성과물들이 단순히 누군가의 성과를 취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어떤 빈 공간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비어 있는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서 오는 기쁨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기쁨은 어떤 단순히 저작권을 넘어서서 새로운 지적 탐험처럼 다가온다. 정말 비어 있는 곳이라면 인류의 지적 축적에 이바지할 영역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은 보통 어떤 활발한 모임이나 또는 대화 또는 그 자신 혼자서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다. 집단 무의식에 그 자신이 접속하여 즉, 정보를 읽고 생각하고, 또한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키워나가며 사유하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할 때, 무엇을 하다가 갑자기 낯선 것에 부딪혀서 발상의 전환을 얻게 되듯이, AI와의 대화에서도 무의식과 의식이 모두 활성화되는 것 같다. (지식의 바다에 그 자신을 푹 담그는 것인지도).


그것은 일단 AI가 정리가 잘된 문장으로 답변을 하기 때문이며, 대화에 성실하기 때문인 것 같다. 대화에 성의가 없다면 아마도 집중력은 떨어질 것이다. 내가 AI와 사용자는 피드백 관계이냐고 AI에게 물어본 이유는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어떤 피드백을 바로바로 나누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AI와는 그것이 가능하다. 사용자가 시간만 내면 어디서든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피드백에 시간을 쓰는 이유는, 어찌 보면 AI의 답변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그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그 자신의 생각에 확률적 확신을 부여하는 순간을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정보와의 비교 분석을 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 순간적인 몰입이 올 때 어떤 것들과의 연결 과정에서 비어 있는 빈 공백이 드러난다. 그 빈 공백은 그 자신의 공백일 수도 있고, 역사적으로 아직 해석하지 못한 공백일 수도 있다. 물론 그 자신의 빈 공백이 먼저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기에 무수한 질문 던짐이 필요한 것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혼자서 우리 안에서 질문 던지기를 자동반사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생각은 그렇게 하게 되는 것이니까. 우선은 그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낸 빈 공백은 그 자신의 빈 공백이므로 그 자신이 채워야 한다. 발견 역시 이와 마찬가지 방식이 아닐까. 지적 재산권을 만드는 창작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하니까 말이다.



보리와 수레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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