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기 저작권을 갖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저작권을 갖고 있다>
글을 쓰는 시간 동안 나는 왜 글을 쓸까? 에 대해서 문득문득 생각한다. 글은 나 좋아서 쓰는 것이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면 그 글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모아 놓기만 하고, 날개를 달아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미안함에 짓눌릴 때도 있다. 자신이 쓴 글에 대하여, 또는 그 자신이 자기 밖으로 꺼내놓은 것들의 활용에 대해서는 그 자신의 소관이면서 동시에 그 자신 밖의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저작권을 활용하거나 행사하지만, 대다수의 단편적인 글들은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공개된 글은 누군가에게로 전달되면 또 다른 생성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오픈된 단편적인 낱낱의 글은 유령처럼 사람들 사이를 떠돌기 일쑤다.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온 곳을 모른 채로 어딘가에 다시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낱 글로 공개하는 것은 어떠한 인식에 대하여 사회적 의식 확장으로서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지만, 개인의 지적 재산권의 입장에서는 소모되는 부분도 크다. 그 자신에게 지적 재산권이 있다고는 하여도, 낱낱의 글들은 저작권이라는 범주에 도달하지 못할 때가 많다. 입으로, 말로, 생각으로 흡수되어 또 다른 말과 글로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막을 권리와 차단할 권리는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책으로 출간되지 않으면 저작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본질적으로 자신의 글이나 작품에 대한 그 자신의 권리는 누리지만, 낱낱의 글이 실질적으로 2차, 3차의 어떤 생산성으로 연결되는 일은 드물다.
글을 쓰는 작업이 그 자신의 충족과 만족으로만 한정하게 되는 일이 빈번해지는 까닭은 먼저 낱낱의 글을 묶어 출판하는 과정이 복잡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경험이 충족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자신의 정신적 사고와 내면적 사유 그리고 상상력이 단편적인 글들로 머물러 있게 되는 이유는 단행본이 되는 편집 과정을 거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편집 과정이 어떤 목적을 충족하고 있는가? 의 문제도 있지만, 그 편집을 ‘누가’ 했는가? 에 따라 약간은 책의 방향이나 목적성 역시 달라진다. 그 자신이 편집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신이 출판하지 않은 이상 그 원고는 편집된 상태라고 보기도 어렵다. 아직 책이 아닌 글들은 우리 사회에서는 그저 유령일 뿐이다.
한 개인의 창작이 아직 피지 못한 꽃으로 남게 되면, 창작은 시시포스의 굴레가 되어 그 자신을 짓누른다. 그 자신의 창작이 공중에서 마치 불꽃처럼 타올라 흩어지는 경험은 상실감으로 다가온다.
<지적 재산권이 탄생하는 지점>
지적 재산권의 시작은 누군가의 원저작일 것이며 원출처가 될 것이다. 인류의 지식의 근원이 되는 그 자궁 안에서 모든 지적 재산권들이 탄생한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그들과 협력하여 또 다른 창작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저작의 축적에 의해 자연에 대한 이해는 우리에게로 와서 지식이 된다. 자연은 모두의 보고이지만 지식은 원출처가 반드시 있다. 그 지식을 맨 처음 가져온 이들 역시 모두 원출처들의 지식과 지식의 사이에서 빈 공간을 발견한 후 그 빈 공간을 채우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연결 과정이 매끄럽게 잘 진행되면 지식은 증폭한다. 그런데 누가 보는가에 따라 그 사이의 빈 공간의 연결 지점은 계속하여 새롭게 발견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직 모든 것이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 사회 역시 그렇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AI 시대에 지적 재산권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AI는 허용된 범위에서는 질문의 정도에 따라 그에 합당한 정보를 그 어디서든 가져올 수 있다. AI는 가져온 정보 출처를 표기하고 있지만, 사용자는 그 출처를 때에 따라서 사용하기도 하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정보를 차용만 하고 그 출처에 대해서는 원출처를 찾아서 표기하거나, 또는 창작의 형식으로 변형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것의 출처를 다 표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상식적인 것과 공통의 영역에 포함되는 지식까지 인용 표시나 출처를 표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원출처를 따라가면 그것은 대체로 ‘책’ 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대부분의 출간되는 책에서의 인용 출처는 ‘책’이나 논문을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원출처는 과연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하나는 원출처가 분명한 경우다. 그 원출처를 증폭하여 다시 세상에 재판하여 내놓는 경우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일반적으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그 중간 경로가 중요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그 지점에서 어떤 작가가 그 자신의 무엇인가를 투여하여 새롭게 가공된 창작품을 내놓았다면, 그 연결 과정으로서의 작품 역시 저작권이 발생한다고 본다. 인간의 창작품은 모두 이러한 발생 경로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 재산권의 경로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창작품은 길을 잃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형태는 모두 빈 공백을 메우는 창작적인 작업 형태이기 때문이다.
<인용 및 출처에 대한 색안경 버리기>
책에서 인용의 출처를 표시할 때, 거의 다수가 종이책을 사용한다. 물론 인용한 책의 책을(원본이 아닌 2차 자료)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저자가 그렇게 읽고 활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우리는 맨 처음 어떤 정보를 인터넷에서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하여 원출처를 알게 되는 경우도 요즘은 흔하다. 그렇다면 만약 그 말이나 문장을 인용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정보가 자신이 접근하기 어려운 자료(논문)이거나 또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책이라면, 또는 그 원저작을 그 자신이 읽어보지 않았다면? 그때는 인용 출처 표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때는 보통 출처보다는 인용 문구를 사용하여 그 자신의 문장에 녹아들게 하는 것 같다.
지적 재산권의 중요성과 함께 인용에 대한 출처 표기 역시 중요하다. 그런데 요즘 시대는 지적 재산권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지만, 인용에 대한 출처 표기는 한계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글을 쓸 때 되도록 인용된 출처를 표기하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역부족일 때도 많다. 단편적인 글을 쓸 때, 책은 책 사진과 책의 쪽수를 표기하면 되지만, 인터넷 링크는 그 주소가 너무 길고, 또 단편적인 글에 인용된 링크 주소는 글을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어떤 책에서는 인터넷 인용이나, 위키백과 등의 인용, 그리고 유튜브 인용을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자료는 어떤 모티브 제공이고 그 자신의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정보의 정확성 역시 중요하지만,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면 그 정보의 질을 크게 문제 삼지는 않는다. 정보의 검색은 ‘단순 검색’과 ‘맥락 검색’이 있다고 본다. 검색에서 그 어떤 것이 걸리더라도 그것은 모두 그 자신 안에서만 연결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 인용의 출처 표시는 정말 중요해졌다. 하지만 고대인과 중세인은 인용 출처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 자신의 문장으로 고쳐 쓰거나 수수께끼 식으로 남겨놓고, 스스로 알아내는 것 역시 공부라는 형태로 말하기도 하였다.
저작권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는 동시에 정보 검색의 한계는 점점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저작권에 저촉되는 환경이 강화되면 저작권자에게는 유리하지만, 일반 사회는 더 위축될 확률이 높다. 또한 인터넷이나 SNS도 같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 반면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하는 환경 역시 앞으로는 일반 사회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사람은 어느 선에서는 그 자신의 창작품을 세상에 무상으로 유통시키지만, 어느 선에서는 숨기게 된다. 창작은 모두 그 자신의 활동과 생업과 연계되기 때문이다.
<콘텐츠가 보호되는 길은>
움직인다는 것은 어찌 되었든 인간에게는 창작의 본질적 요소이다. 움직일 기반을 잃은 상태에서의 창작은 저자에게는 가혹한 환경이 된다. 저작권자에게도 이롭고 사회에도 유익한 그런 해법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많은 아이디어들이 등장하겠지만, 국가에서 창작을 독려하는 대회들이 더 증가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질을 꾸준하게 담보할 수 있는 방법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기회가 늘어나는 사회 그리고 그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하며, 그다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뻗어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자면 기초 사회를 탄탄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소모임들의 활성화와 지원 정책, 운영적인 측면에서의 리더 교육도 필수일 것이다. 이러한 소비시장이 안정적으로 받쳐줄 때, 저작권은 더 빛을 발할 것이며, 양질의 콘텐츠가 생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양질의 콘텐츠들이 보호되는 길은 저작권을 보호해 주는 것임과 동시에 지속적인 생산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우선은 콘텐츠가 보호되려면 실질적인 보상이 선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