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찻집에 대한 오래된 환상
부석사에서 내려와 주차장 부근에 도착했다. 부석사를 오르는 출발선이자 종착인 그 지점 즈음에 노점 형태로 사과를 판매하는 부스들이 보였다. 부스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정오가 지나던 무렵이어서 이제 부스들에 사과 박스를 진열하고 있었다.
항상 사찰이나 혹은 조금은 외진 유명 관광지 부근에는 그 지역 특산물을 파는 소규모의 부스 길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내 언제나 일본 도쿄 청수사로 향하는 골목길에 형성된 가게들을 우리는 떠올린다.
몇 해 전에 악양 최참판댁 가는 언덕길에도 작은 가게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떤 미진함은 있었다. 아마도 이러한 차이는 청수사는 교토라는 전통 도시 안에 형성되어 있고, 악양 최참판댁 언덕길에 형성된 가게들과 우리나라 유명 사찰의 시작점에 형성된 부스들은 이미 입지적인 조건이 다르다는 차이는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느낀 차이는 이러한 언덕길에 형성된 가게들이나 부스들의 차이는 질서와 심플함 그리고 완성도의 디테일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 형태들도 그렇고 판매하는 제품이나 상품의 구성도 그렇다.
일차 상품 그대로와 가공된 상품은 판매 방식도 달라진다. 또한 그 제품이나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의 구성도 달라진다.
내가 사찰 부근에서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는 형태를 오랫동안 보아왔던 결과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1차 상품 그대로인 경우가 많고 2차, 3차 가공된 상품은 거의 없다. 또한 방문객이나 여행객 그리고 관광객들이 상품을 구입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형태가 많다. 제품이나 가격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질은 압축적으로 높아야 하고 부피는 작아지고, 가격은 낮아져야 한다. 그렇다면 1차 상품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2차, 3차 재가공된 상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사찰 부근에 형성된 부스들은 나무 형태도 조잡하고 노점상 형태다. 위치도 그저 도로 가장자리에 있을 뿐이다. 잠시 설치했다가 언제든 비워도 되는 형태다. 사찰은 세금 들여 말끔하게 복원되어도, 사찰 진입로 풍경은 여전하다. 다만 사찰 주변에 건물들이 더 커지거나 예전처럼 요란하지는 않다는 차이는 있다.
사찰에 사람들이 방문하고 관람하는 것처럼, 사찰 주변 역시 방문자나 관람자들에게는 필요한 요소다. 사찰이 잘 복원되어 아름다워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찰 주변을 정비할 때, 사찰 진입로에 있는 특산품 부스들도 사찰과 그 지역의 관광요소가 될 수 있으므로, 선심 쓰듯 나무 부스 몇 개 줄줄이 놓아두는 형태보다는 적정한 자리를 마련해서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상생의 묘미가 있는 사찰 진입로 특산품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1차 특산품이 가공되려면 그만한 시설들이 농가나 지역단위에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나무 부스 사진은 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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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건물 안에 있는 가게들은 이 글에서 다루지는 않겠다. 기념품을 파는 공간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무인찻집'이라는 간판을 보았다. 왠지 이끌림을 주는 말이다. 예전에 남쪽 어느 곳을 지나다가 무인찻집이 보여서 차에서 내렸다. 그러나 문은 잠겨 있었다. 무인찻집이라고 써진 곳이 무인찻집인 곳은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엔. 차라리 요즘 도시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나 카페가 있다.
이번에도 정말 무인찻집일까? 하는 호기심에 올라가 보았다. 비교적 널따란 대지에 형성된 도자기 공방이었다. 마당 겸 정원엔 토우들과 식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이러한 풍경은 다소 예전에 자주 접하던 풍경 그대로였다.
이 비교적 넓은 공간을 섬세하게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혼자 생각했다. 자연스러움도 좋지만, 이미 자연 안에 어떤 것을 진열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자연스러움은 아니게 된다. 그럴 바에야 조금은 정돈된 공간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혼자서 혹은 둘이서 또는... , 어쨌든 공간을 관리하고 경작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정원을 구경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가마를 지나 공방 안에서는 가마에서 구운 다채로운 도자기와 소품들을 판매하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말 종류별로 물량 확보가 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량 확보가 되었다면, 이제 다소 차라리 더 다채로운 상품을 소량으로 만들어 보는 것도. 또한 한 쪽은 상품 보관 창고로 사용하고 한 쪽은 가게로 구성하여, 예컨대 이런거다. 한 종류당 몇 개만 내놓는 것으로. 그렇다면 혼자서 관리하고 판매하고 찻집 운영에도 더 여유롭지 않을까? 하는. 소비자 패턴도 읽게되면 상품 만드는 것에 도움이 될지도.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하며,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감상도 하였다. 그중에서 맘에 드는 워머와 찻잔도 함께 골랐다. 조금만 더 다채로운 디자인의 소품과 상품들이라면, 사찰 을 오가는 이들이 가볍게 오며 가며 구입할 상품 및 가격 선은 무난하다고 생각했다.
무인찻집은 어디에 있나? 하고 둘러보았다. 안 쪽에 차 마실 찻집이 있었다. 안의 형태는 아주 예전 인사동 혹은 대학로 분위기와 비슷했다. 어떤 여자 두 분이 차를 주문하고 무인찻집 안에 앉았다. 나는 그냥 나왔다. 나와서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식물을 둘러보았다. 전반적으로 엄청 사람 손이 많이 가는 공간 형태였다. 이 많은 작업량을 누가 다 소화하고 있는가? 하면서......
하늘에 흰구름, 무척이나 맑은 날씨였다. 사찰은 , 아마도 그 어느 사찰이든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보인다. 반면에 도자기 공방이나 찻집 형태는 아주 예전 그대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실내는 촬영 금지가 되어 있어서 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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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파서 근처의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산채비빔밥, 정말 오랜만에 먹어본다. 식당 안은 만석이었다. 잠시 기다리다 우리 차례가 되어 자리에 앉았다. 음식이 나오자 사진을 찍었다. 햐~ 어떤 기시감이 내 안에서 요동을 찐다. 짬뽕된 사찰들의 산채비빔밥이 마구마구 뒤섞여 서로 기억 우위를 차지하려고 하지만, 내가 평정해 버렸다. 다시 먹는 산채비빔밥, 배도 고픈데 맛나게 잘 먹었다. 기억들이 정렬했는지, 고요해졌다.
음식점 입구에 워터코인과 트리안, 다육들이 과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아무튼 사찰 부근이나 혹은 관광지 부근의 토속적인 공간에서는 식물들은 참 잘 키우는 것 같다. 이런 곳에서는 오래전 잃어버린 것 같은 오밀조밀한 아이디어들로 식물을 키우고 장식하는 것 같다. 다만 뭔가 조금은 질서 없이 정리가 안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느낌은 이와 유사한 공간들에서는 대동소이하다.
현재 내가 느끼는 이러한 느낌은 우리 안에 있는 잔재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 번쯤은 씻어내어도 좋을 그런. 한 시절에는 이러한 양식이 유행을 하었고 많은 소소한 곳들에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세상은 바뀌어도 이러한 형태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거 같다. 마치 시간이 멈추어 있는 것처럼! 왜 그런 것일까? 때로는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지만,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은 그다지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은 편안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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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밖에없는것을알면서도_그저_이렇게_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