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몽상을 벗어나다
절반은 포기한 것인가? 그럼 반이 남았겠구나. 어차피 절반은 네 것도 내 것도 아닌 것들. 구름처럼 흩어지고 신기루처럼 붙잡을 수 없는 것들에 둘러싸여 살았구나. 사람들이 어느 순간에 사막을 떠올리거나 손 안의 모래가 시간이 되어 빠져나가는 순간에 머물러 보는 그 기억은 인류 공통 기억인지도 모른다. 알렉산드로스의 죽음이 준 충격과 그 후 폭풍을 기억하라. 인류사에 기록된 가장 큰 충격. 헛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행복한가. 그 헛된 몽상이 나를 이 지점에 데려다 놓았다.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다. 기억은 되돌아가도 거울 속에 비친 나는 되돌아갈 수 없다. 너는 누구니,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이곳에서 뭐 하고 있는 거지.
화면 안에 내 망상이 있었다. 그랬구나, 거기에 있었구나. 내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떤 박탈감과 허망함을 느낀 이유가 저기에 있었구나. 권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사람들은 진정성(진심이 무엇인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을 따지면 이미 무의미로소이다)으로 하려는 것 자체가 난센스. 권력을 가질 곳으로 가야만 가능한 그 무엇들. 어딘가 다소 어색하지만 불완전하지만 동원된 형태들은 권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들. 아랍에미레이트 환대를 보며 든 생각이다. 권력이 움직이는 문화 포장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돈. 돈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순간이다. 권력이면 가능한 일들. 돈을 어떻게 문화로 포장하는가의 문제였을 뿐. (그걸 제대로 구현하는가의 문제였을 뿐) 한데 제대로 잘 모아 놓으면 완전해진다. 완전성은 그렇게 드러나는 것. 동원되는 크기와 장소의 공간성. 열려 있는 하늘과 바다 전체를 하나의 무대로 사용하는 것. 어떤 비어있는 여백을 주는 것. 한국적 산수화의 여백의 미는 아부다비에서는 저렇게 현실화되어 있구나.
권력과 돈이 있으면 모든 미는 표현될 수 있다. 집약된 미를 압축해내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디렉터의 몫이다. 국가 의전을 보는 재미 속에서 나는 나의 몽상을 버렸다. 어차피 그것은 따지고 보면 내 꿈도 아니었다. 나는 내 상상의 공간을 채우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럴 때 완전성을 체험할 수 있으니까. 거대한 것은 그때 필요한 것이니까. 그것은 이미 완성되었다. 나는 내 생각 속에서 또 다른 형태를 집약해 내면 되는 것. 축적을 압축해 내는 것. 큰 것이 점차로 압축되어 작아지는 것. 그다음에는 무엇이 될까. 202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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