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주가 건네는 21세기의 호연지기
BTS 노래는 영어와 한글이 뒤섞여 있고, 듣는 이에 따라서 극도로 분절적인 단편적 언어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한국인이나 외국인에게 모두에게 그렇게 들릴 것이다. 낯선 노래다. 우리에게도 낯설고 외국인들에게도 낯설다. 문장보다는 단어 위주이고 멜로디 중심이다. 마이크로처럼 압축된 메시지이다. 마치 외계인에게 보낸 단파 메시지처럼.
그동안 한국의 노래와 한글 그리고 한국의 문화는 말 그대로 외계와 외계인처럼 멀리 동떨어져 있었다. 고립되어 있었다.
BTS 노랫말들은 그 고립감과 고독이 잘 드러나 있다. 비록 한 자아적 정서를 드러내고 있지만, 그 한 자아적 정서가 곧 인간의 본질적 정서가 아닐까. 세계 곳곳에 있는 외계인들, 즉 고립된 자아들에게 쏘아 보낸 메시지. 그 고독한 시간을 견디며 단단해진 그 자신들에게 보낸 메시지. 정서적 유대와 연대를 일궈낸 그 메시지들, 이것이 BTS 노랫말의 본질적 정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모두 나름대로 고립되어 있다. 그 고립감 안에서 하나의 세계를 일구며 그 자신을 키워가게 된다. 그것이 바로 고독을 견디는 힘이다.
거리가 멀면(가늠이 안 되면) 서사보다는 메시지 형태가 더 적합하다. 시의 기원처럼 멜로디 형태, 이 흥얼거리는 멜로디를 언어로 옮기면 파편적인 단어적 형태가 된다.
그 짤막한 단어들 사이를 상상하여 연결시키는 것은 리드자인 세계인들 각자의 몫이다.
BTS 노래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문명사적 움직임에서 접근하면 어떨까? 그렇게 접근하면 그들의 형태는 전위적이고 전령사적이다. 그 노래와 춤은 세계에 보내는 한국의 메시지이자 한국의 전령사가 된다. 세계인들이 그 메시지에 비로소 반응을 보인 것.
한국이 외계처럼, 세계인들이 외계인처럼 존재하던 그 파편화를 세계인들이 각자가 있는 곳에서 연결시키며 극복한 것.
이번 bts공연을 그 의미에서 조명하여 보았다.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다.
"집안사람들로부터 찬탄의 대상이 된 사람은 거의 없는 법이다. 어느 누구도 자기 집에서는 물론 자기 고장에서도, 예언자인 적이 없다는 것을 역사의 경험이 말해 준다. 사람들이 나를 (읽고) 알게 되는 것이 내 둥지에서 더 멀어져 있을수록 나는 더욱 높이 평가된다. 살아생전에는 제 몸을 감춤으로써 죽어 없을 때 좋은 평판을 얻어 보려는 사람들은 이런 현상에 기댄다. 나는 차라리 평판이 덜하기를 더 원한다. 내가 지금 얻는 오직 그만큼의 평판을 위해서만 나는 세상에 뛰어든다. 세상을 떠날 때면 그 뒤 영광이야 무슨 상관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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