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까가 울고 있다 , 옮겨 씀
말리까가 울고 있다 <31편 옮겨 씀, p264~270>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룸비니’에서 태어나신 부처님을 시작으로 순례를 시작하고서 부처님이 열반하신 ‘꾸시나가라’에서 순례를 마친다. 순례자는 부처님이 태어난 곳에서는 아기의 태어남을 같이 기뻐하고, ‘보드가야’에서는 이 세상에 나타나기 어려운 ‘삼막삼붓다’의 탄생에 놀라워한다.
『초전법륜경』이 설해질 때는 다섯 비구가 된 듯 기쁜 마음으로 희유한 법문을 듣고, 술 취한 코끼리가 달려올 때 코끼리를 향해 손바닥을 펴 보이며 코끼리를 순하게 제압하는 ‘라자가하’에서는 구경꾼이 된 듯 감탄하고, 원숭이로부터 꿀 공양을 받으시는 ‘웨살리’에서는 영리한 원숭이를 기특해하고, ‘앙굴리말라’가 칼을 들고 달려드는 ‘사왓티’에서는 바위 뒤에 숨어서 보는 것처럼 위기의 순간을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부처님과의 마지막 이별을 안타까워하며 반열반의 길을 50km나 따라왔던 ‘릿차위’가 되어 ‘케사리아 스투파’에서 한참을 서 있게 된다. 낡은 수레같이 삐거덕거리는 몸을 이끌고 ‘꾸시나가라’에 당도한 부처님이 당신의 몸을 살라나무 사이에 눕혔던 그곳에 부처님을 따라서 누우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젖게 된다.
마치 이제까지 함께 순례를 해왔던 동반자를 잃은 듯, 새삼 부처님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아프게 확인한다. 순례자의 마음엔 슬픔이 넘쳐흘러도, 그분은 고요하시다.
“이제 누가 등불이 되겠는가”
(...)
“이제 생사의 바다에서 누가 노를 저어 건넬 것인가. 누가 무명의 길고 긴 밤에 등불이 되어 주겠는가?”
부처님의 열반을 보고 천신이 읊은 이 게송이 곧, 내 마음이 되더니 나의 뺨에도 눈물이 흘렀다. ‘수많은 생 동안 난행 고행의 보살행을 하시고 드디어 보리수 아래서 성도하신 후, 일생을 맨발로 사람을 찾아다니시던 부처님이 여기 이곳에서 반열반하셨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한순간만이라도 그런 분을 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난다는 부처님이 왜 꾸시나가라 같은 작은 마을에서 열반하시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라자가하, 웨살리, 사왓티, 까시, 꼬삼비 등 당신이 오래 머무신 큰 도시에서 열반에 드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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