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둔탁한 멍함을 몸이 재현하다
며칠째, 나는 머릿속이 좀 멍했다. 별다른 생각이 없이 밋밋한 상태였다. 뾰족하게 솟아오르는 맛이 도무지 없었다. 이렇게 텅 빈 것인지, 아니면 둔탁하게 막힌 것인지 모호한 그런 날들이었다. 딱히 내가 왜 마비되어 있는지 알아보려는 의지가 일어나지도 않았다. – Let It Be – 나를 그냥 두었다.
막 피곤하고 그런 것은 아닌데, 몸도 무겁고 오후에 잠만 쏟아지는지라 졸음과 싸웠다. 지난 토요일에 <란 123>을 보았다. 토요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영화관은 한산했다. 각각 상영관이 전체적으로 예매율이 낮았다. 모두 영혼이 와 있는 것일까. 이명세 감독의 영화 스타일은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는다. 넷플릭스에서 <더 킬러스> 옴니버스(엔솔러지) 영화를 전에 보았다. 영상 미학은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해석은 각자의 몫이듯이, 영화는 나에게 해석을 강요하지만, 나에게 딱히 그런 정보를 꺼낼만한 것은 없었다고 보인다. 그때 검색해서 <무성영화>에 대해 알아는 보았는데, 오마주한 장치들에 대해서도 내 안에 정보는 없었다. 그렇게 검색한 정보들은 기억 안에서 다시 박제되어 멀어졌다.
<란 12.3> 영화 스타일이 생소하기도 했지만, 피곤함과 스트레스가 마구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피곤함과 스트레스에 속을 내가 아니다. 무엇인가, 어떤 낯선 것은 스트레스를 먼저 주고 그것의 해석을 강요한다. <란 123>은 해석을 나에게 강요한다. 그때(내란) 당시의 스트레스가 무의식과 중첩되어서인지 나는 좀 둔탁하게 멍한 거 같았다. 머릿속 상태가 그냥 내 안에 갇혀 있는 거 같았다. 나와 바깥이 별개인 것처럼, 상관없이, 관심을 가지려고 하면 피곤하게 여겨지는 그런 무기력함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지금 라벨의 ‘볼레로’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란 123>의 도입부 배경 음악이 이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가볍게 춤을 추듯이 빙그르 돌지만, 비장미가 스텝에 스며드는 경쾌함 말이다.
“이것은 어떤 해석을 강요당하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한다면?
어쩌면 이것은 내란 그 자체도 충격이었고 다큐 영화도 충격이어서 그럴까?
어쩌면 나에겐 해석할 도구가 없어서일까?
이명세 감독의 작품이 관객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일까?
나는 내란을 지나올 때도, <란 123>을 보면서도, 왜 국민, 그러니까 현장에 없었던 국민들은 자꾸 변방처럼 소외감을 느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나도 너도 모두 힘들었는데, 주인공은 항상 현장과 광장이다. 어쩌면 역사의 현장에서 배제(그 자신들이 일상을 선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소외감을 느끼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말을 겉으로 꺼내 버리면 어떻게 되는 것이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떤 스스륵 해소되는 감정이 있었다. 내가 이 말을 글로 썼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 자신들이 소외감을 극복하고 주체적이 되려면 그 자신들이 그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면 되는 거였다.
그 어떤 뉴스도, 그 어떤 영상도, 그리고 영화도, 방 안에서 뉴스를 보며 짓눌렸던 그 무거운 공기와 둔탁한 내 감정의 12월 3일을 재구성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이니까.
이렇게 쓰고 나자, 나는 벽에 갇힌 듯한, 둔탁하게 얻어맞은 듯한 마비에서 점점 풀려나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내란이라는 거대한 충격 자체와 그 현장에 없었다는 묘한 소외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둔탁하게 무의지적 마비 상태로의 이행은 아마도 시간여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도무지 비현실적인 내란이었는데, 영화는 더 비현실의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그것은 충격요법이었던 것 같다. 비현실이 비로소 현실을 찢고 들어오는 과정이었을까? 아마도 이 머릿속 둔탁한 멍한 느낌이 그날의 내 상태였던 것 같다. 현실에서 비현실로, 비현실에서 판타지로, 판타지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나를 보는 것이다. 영화는 그 빠른 속도감으로, 우리가 또한 얼마나 느리면서도 빠르게 포탄처럼 그 시간을 재빠르게 통과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 속도감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제정신으로 그 시간을 지나왔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제정신으로 지나왔다. 그것은 초월성에 더 가까운 정신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초월했던 것일까?
그와 나는 영화관 근처에서 곱창볶음에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원래는 돈까스를 먹으려고 했는데, 한 곳은 너무 텅 비었고, 또 한 곳은 10분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밥 먹으려고 기다리는 것이 별로여서, 곱창집으로 들어간 것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