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여행을 가고 싶다. 그러다 권태가 가로막는다. 여행은 가서 뭘 하나 비행기 좁은 칸을
참아야 하는데, 산을 힘들게 오르면 뭘 하나 내려와야
하는데, 밥은 먹어서 뭐 하나 또 배고플 텐데, 세수는 해서 뭐 하나 또 세수해야 하는데, 청소는 해서 뭘 하나 또 해야 하는데, 권태는 무엇인가 반복적인 상황을 극도로 경멸하는 거 같다. 권태는 무기력으로 무장한다. 막강하다.
검은 구멍이 생긴다. 검은 구멍은 우주만큼이나 점점 커져서 주변에 가득하다. 검은 구멍은 어둡지 않다. 검은데 어둡지 않다. 검은 구멍은 빛을 흡수하고 있는 것일까? 검은 것은 빛을 품고 있는 듯하다. 검은 것은 빛도 아니고 색도 아니다. 검은 것은 물질일까? 느낌 안에 생성된 검은 구멍은 물질인 것일까?
기억의 충돌이 일어나면 상실감이 생겨난다. 참으로 알아서들 잘도 생겨 난다. 소멸하는 것은 그럼 무엇일까? 기억에 망각은 없다. 사람은 처음 시점과 어느 정도 기간을 기억하여 현재에도 적용한다. 도무지 기억을 바꾸지 않는다. 기억이 바뀌지 않을 때 사람은 떠난다. 관계의 리셋을 시도하는 것이다. 기억의 충돌은 떠난다 하여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 자신과 그 주변의 리셋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새로운 곳과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시도하는 이유는 관계의 리셋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 시점부터 새롭게 시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기억의 충돌은 어찌할 수가 없다. 기억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자신이 리셋되지 않는 한.
서해안 바다의 만조처럼 서서히 권태는 밀려와 무기력으로 축축하게 가득 채운다. 습한 무기력은 눅진하게 팔다리를 묶는다. 권태만이 생각을 한다. 온통 권태로운 상황을 연출하여 권태로워라는 주문을 건다.
차는 마셔서 뭐 하나?라고 권태가 주문을 걸어온다. 그러다 딱 걸렸다. 이제 마주 보고 있다. 그대도 차 한 잔 하시게... 이 차는 껑차라네. 줄기라는 뜻이지...라고 말해줬다.
껑차
껑차
*껑차는 차나무 잎 말고 줄기만으로 만든 차이다. 탕수는 그리 길게 나오지 않지만 숙성된 맛은 풍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