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체사유

권태 1

권태와 무기력의 궁극은 살아있다는 것인지도

by 아란도


가을이 되어 좋다. 마음은 좋은데 몸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 모드를 지속하고 싶어 한다. 왜목해변에서 1박 2일 캠핑 후 집에 와서 퍼졌는데, 외출 한번 하고 오면 몸이 녹다운되어서 컨디션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딱히 어디가 안 좋은 것은 아닌데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그런데 어디 집 안에서 생활한다는 게 무기력을 용납하는 일이던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기를 돌리고 바닥을 밀고 먼지를 제거한다. 왜 먼지는 이리 날라와서 날 괴롭히나, 머리카락은 왜 빠져서 한 가닥씩 길게 존재를 드러내어 신경을 거슬리게 하나. 맨날맨날 무엇인가를 정돈해도 왜 말끔한 느낌은 안 나는 것일까. 꼭 한번 뒤집어서 청소를 해야만 청소한 티가 쫌 나주는 그런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청소만이 유일하게 인간이 아직 무엇인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왜목해변만 가면 우리가 캠핑 친 주변의 쓰레기를 치우고 오게 된다. 관리가 안 되는 해변만큼 심란한 풍경도 없다. 자유로우면서도 주변은 관리가 되어야 해변은 더 빛이 나는 것이 아닐까. 이번에는 공용화장실 세면대가 막혀있어서 아래 배수구를 빼서 막힌 것을 뚫었다. 왜냐하면 다음날도 그대로 막혀서 물이 세면대 위로 범람할 것은 뻔한 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니면 압력에 못 이겨 저절로 배수구 줄이 빠졌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그리 많이 오고 가는 해변의 부대시설은 너무 열악하다. 해변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시간의 관조를 저당 잡히지 않는 것만이 유일하게 아름답다. 바람이 많이 불고 백사장은 은근 체력소모가 크다. 올라오는 길도 막히고. 우리나라 자연휴양림은 왜 갈 수가 없도록 경쟁이 치열한 것일까? 우리도(우리 모두도) 이제 좀 풍족하고 여유롭게 자리가 많은 자연휴양림 캠핑장을 누리고 살면 안 되는 것일까.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 집도 가족이 공동으로 같이 사용하는 공간이라서 무기력함을 용납하지 않고서 우리는 몸을 움직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혼자 산다 해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것이 살아있는 존재의 표현이자 실행인지도 모르겠다. 건조된 빨래를 종이 클리너로 붙어 있는 먼지를 제거한 후 제자리에 놓아두면 그새 한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이리 집 안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정작 내 시간은 몇 시간이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낮에 나 혼자 있으니 이 시간이라도 얻어내는 것이겠지. 시간의 효용성은 무용하게 보내는 시간에서 보자면 권태에 바친 시간을 제물 삼아서 반비례한다. 권태는 시간을 공납받는다. 권태에 발목 잡힌 한 시절들이 간다. 시간을 저당 잡힌 무수하게 억울한 인생들이 우울하다. 비극의 카타르시스다. 인생은 그렇게 이어져 왔구나. 권태와 싸우는 전사들아! 오늘도 파이팅이다.


의식의 흐름 따라 내리 단번에 쓴 글. 그래서 수정은 필요치 않다.



* 넷플릭스 영화 <#살아있다>를 보았다. 권태와 무기력함의 궁극은 '살아있다'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되려 무력한 것일지도.


* 그 후로 왜목해변은 캠핑이 금지되었고, 해변 정비사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현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2020/09/16


*사진은 카톡의 이모티콘 중에서.../ 권태를 잘 표현한 이모티콘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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