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체사유

디오니소스적인 광기의 두 가지 의미

#하루 안에서의 두 가지 마음

by 아란도
축제

아직 어떤 마음인지 다가오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써둔다. 어제는 흥겨운 기분이었고 오늘은 몹시 피곤하다.


어제, 저녁 늦게 받은 '부고 문자'는 나를 그 자리에서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아무 마음이 안 드는 그 무감각은 번번이 이질적인 것으로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저 하늘에 퍼지는 구름처럼 그저 어디론가 흐른다는 것으로 생각해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 포구 축제에서 이런 축제들은 모두 '제천행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의 에너지로 공기를 정화시키는 작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현대에서의 '제사'는 바로 축제가 아닐는지. 세월 동안 깊게 은폐된 그 무의식은 축제의 장에서 어떤 것을 일깨운 것도 같다. 노래하는 가수들의 역할은 바로 그것인지도 모르지. 변화되어 형태를 달리하여 계속 우리 곁에 있었는지도 모르지.


외사촌 오빠의 부고 소식은 그렇게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축제의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멀리 떠난 이가 바로 저 구름처럼 번져가는 공기가 되어 육신을 벗고 흩어졌다. 그 많은 것을 가두고 있는 육신을 벗어나는 순간에도 외사촌 오빠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로 떠났나고 한다. 뇌 수술 후유증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 채로 떠났다고 하였다. 동생과 통화하면서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아.. 인간은 왜 그토록 많은 제약 속에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엄마와 통화 중에 아직 젊은 조카가 죽었다는 말에 오열하는 그 울음소리가 노인이 된 엄마의 시간 위에 겹쳐짐을 느꼈다.


정작 노환이 있는 외숙모는 그 자신의 아들 죽음을 알지 못한다. 모두 알리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삶과 죽음에서 관계의 비정함이 맴돌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의 상태를 안다고 하여도 달리 손쓸 방도가 없다는 바로 그것의 허망함이 손끝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시간의 '무'가 바로 여기 장례식장에 있었다.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아 이제는 노년으로 접어든 외사촌 언니 오빠들은 가끔 만날 때마다 누가 누군지 분간이 잘 안 되어 혼란스럽지만, 엄마를 닮은 그러니까 엄마와 어딘지 비슷한 그 느낌에 의해 외사촌들을 구별해 내곤 한다. 그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는 그 이미지에 이끌리며 절로 미소가 나오며 서로 어색함이 상쇄되는 순간들. 묘하게 외사촌들을 만나면 전생의 고향처럼 내편의 기억처럼 그런 친근함이 든다. 그냥 막연한 그런 친근감 말이다.


고생 많았을 언니의 손을 잡고 나도 모르게 힘이 세게 갔다. 너무 꽉 잡았나 보다 싶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혼돈스러운 감정이 그렇게 손으로 힘이 갔다. 나의 눈물은 어디로 갔을까. 눈물이 안 나오는 이 먹먹함도 낯설다. 아들도 남편도 떠나보낸 한 여인을 마주하며 나는 손에 힘이 가서 너무 손을 세게 잡았다. 딸과 함께 남은 아내, 그 아내와 딸을 두고 외사촌 오빠는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지만, 이런 느낌은 데자뷔처럼 층층 기억들에 안착된다.


나는 지금 울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잠이 온다. 몹시 피곤하다. 어제 마신 술이 덜 해독된 탓인지도 모른다. 아쉬운 이별, 한 번쯤 만나서 밥이라도 한 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리고 수술 후 혼수상태라는 소리만 듣고, 또 다른 외사촌 오빠와 나는 깨어나길 기다리는 소식만 들려오길 바랐었다.


아직 가기에는 너무 이르고 아까운 나이에 떠났다. 어차피 사람은 한 번 죽으니까... 모두 80이든 90이든... 요즘은 보동 다 그렇게 사니까.. 그럴 때 떠나도 떠났으면 좋겠다라 생각하고 집에 온 후 잠에 빠져 들었다.


느지막이 일어났다. 포구 축제는 오늘까지다. 이 무력한 기분을 밀어내고 다시 우리는 산책을 나갔다. 축제의 다양한 행사들과 가수들이 그 자신을 불사르는 무대 위 공연을 서서 보았다. '남진''박명수 디제잉 쇼' 그리고 댄스그룹 ''의 무대를 보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또한 발걸음을 멈추어 그 자리에 붙들어 놓은 힘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 시대에서 사람을 붙드는 것들에 대하여.


각각으로는 무력한 인간이 무력한 인간의 발걸음을 붙잡는 그 에너지에 대해서도. 무대 위에 선 이들의 그 순간에 쏟는 최선을 보며 가까이서 보는 것과 멀리서 보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들이 온 열정을 다 뽑아내는 그 순간에서 그들은 제천행사의 의식을 온 힘을 다해 치르고 있는 것이구나 싶었다. 예전에 록 음악이나 디제이 믹싱은 순수하지 못한 음악이라 터부시 하던 시절도 있었다. 보통은 클럽에서 댄스음악 위주로 공연되지만 요즘은 어느 곳에서든 사람이 모이면 진행되는 음악 형태이기도 하다. 밤하늘에 퍼지는 그 강렬한 디제잉 축제는 어쩌면 '몰입' 그 자체여서 디오니소스적이기도 하였다.


인간의 흥이 새어 나오는 광란의 꿈틀꿈틀 춤파티가 원시공동체에서 치르던 의식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어쩌면 여러 음악을 믹싱 한 그 음악이 현대에서는 가장 파워풀한 음악 형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현대의 축제는 특정 세대의 집단적 몰입이 아니라면 대체로 너무 이성적이어서 오히려 사람들 몸은 로봇 상태를 쉽사리 벗어던지지 못한다. 어쩌면 현대에서 특정세대의 집단적 몰입이 더 원시공통체적인 에너지 발산 장소가 아닐까 싶기도 하였다.


오랫동안 이런 광기적인 에너지를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삶과 죽음이 오버랩되는 시간에서 죽음도 하나의 광기가 아닐는지. 인간이 죽는다는 것 역시 또 하나의 변화이다. 그 무수한 입자들의 존재를 가둔 몸에서 벗어나는 그 순간은 광기가 아니면 무슨 힘으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아직 살아 있어서 그것을 알 수 없다. 산자들이 치르는 축제의 의식은 땅과 하늘과 사람을 잇는 정화작용처럼 다가온다. 천지를 뒤흔들어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펑펑 공중으로 솟아올라 터지는 불꽃놀이처럼 모두 그 아름다운 염원의 환상을 눈에 새긴다. 불꽃놀이가 끝난 후 아쉬운 탄성들에 일말의 여운이 잠긴다. 인간의 의지가 담긴 대지의 순환과 환기로써 새로운 에너지가 차오르길 열망하는 순간들에서, 산자들의 기원이 저 멀리까지 퍼진다. 아직 살아있는 우리들이 지구 안에서 치르는 의식들이다. 죽은 자들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말이다.


#오빠 잘 가_축제의 에너지로 오빠가 어디로든 잘 흐르기를 기원했어_순한 오빠_부디 평안하시길

#이번축제의 현장에서는 그간 잊고 있었던 기억들과 조우한듯해

#디오니소스적인 광기는 삶과 죽음이란 이중적 위치에서 동시에 필요한 에너지인 듯_그러므로 생명력 그 자체인 듯_코로나를극복하는인간들의 의지처럼

#비극의 그 슬픔이 불꽃처럼 생을 열지만_덤덤하게 계속 우리는 살게 되지_우리는_아직_살아있는 것이므로 그 희비를 감당해야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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