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세상의 잣대로 나다움을 정의할 수 있겠는가.
바로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시선의 끝에 나다움이 존재한다.
기필코 자신답게 살라고 귀 따갑게 들어왔기에 그 중요성은 알지만 방법을 몰라 어려워하는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다. 당신의 시선에서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며 행하는 것이 나다움에 제일 가까워지는 길이라는 것을.
낭만이란 내가 속한 삶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삶 밖으로 나와서 객기 부리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안정이란, 내가 이겨낼 수 있는 적정선의 불안이 지속됨으로써 기어코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는 상태다.
좋은 것들을 곁에 둘수록 삶은 자연스럽게 풍요로워진다. 그것들은 먼지가 잔뜩 묻어 텁텁해진 나의 하루를 씻어주며, 쌓이는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도 결코 내가 썩어가진 않도록 감정을 정화해 주곤 한다. 좋아하는 것들이 주변에 있으면 하루의 안온과 삶의 다채로움을 위해 이상에 가까운 행복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며, 내가 품은 그릇 이상의 성공이나 성과를 추구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고는 지금 당장의 먹구름을 유유히 지나칠 수 있는 좋은 태도이며 비결일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결코 고개 숙이고 다니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을 험담하든 뒤에서 깎아내리든 상관없이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다닐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만큼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가꾸는 방법은 없다. 사람은 언제나 일정 부분에서는 부족하니, 그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고치려는 노력만으로도 어진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한 발판이 충분히 갖추어진 셈이다. 자신감은 고매한 성품이나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유약하고 부족하다는 걸 인지하는 데서 나온다. 자존감은 결점 하나 없어야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결함을 인정하고 빈틈없이 채워감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나만이 책임질 수 있는 것이기에, 삶이 값진 것이다.
내가 나로서 꾸준히 살아갈 그 방법대로 당당히 행하면 된다. 세상에 침식되어 나를 잃지 않는 삶을 위해서는, 괜히 타인의 잣대에 흔들리지 않고 나에게 솔직해지는 것 하나로 충분하다. 통과 중인 시기에 맞는 취향을 그대로 행하면 되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의 싹을 이롭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해와 인정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자 천천히 죽어가는 것이다'라는 문장에는 어느 하나 영원한 순간이 없다는, 삶의 속성에 대한 신념이 담겨 있다.
당신의 그 괴로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그 잘남 또한 영원함 하나 없을 것이다.
무너지고 있는 모든 것은 새롭게 무언가를 세우기 위한 퇴비가 되며, 그 위에 세워진 것들은 새로 탄생할 것들을 위한 그늘이 된다.
삶이 나를 잉태한 이후로 줄곧 위태로움의 연속인 덕에, 나는 늘 성장하고 나아간다. 고로 정도는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삶은 '한없이 부정적일 수도 한없이 긍정적일 수도 있다'는 동등한 전제하에 흘러간다.
우리가 겪는 부정적인 요소가 긍정의 꽃을 피울 작고 소중한 씨앗이기를 바라며, 무너지고 기어다니는 일 또한 곧 새로이 구축되고 높은 곳으로 비행하리라는 복선이기를 바라며.
무언가를 할 때 여유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물과 얼음의 분자 구조만큼이나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여유가 없을 때는 불투명해 보이기만 했던 미래가, 여유가 생김으로써 투명해지기도 한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떨쳐내자 마음의 더러움이 씻겨 나가 외려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쉼은 한 걸음만 내디뎌도 미끄러질 것처럼 얼어 있던 내 삶을 녹여주고, 조금은 질척이더라도 밟고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이겨냈기에 또 다른 시련이 닥쳐온 것이다. 벼텨냈기에 다른 고민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무너졌다면 결코 오지 않았을 것들이다.
행복은 커다란 해일처럼 단번에 몰아쳐 모든 것을 뒤바꾸는 것보다, 해변의 잔잔한 파도처럼 다가와 모래가 쌓이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
아는 것이 힘이다. 매번 손해를 보거나 뒤통수를 맞거나 쉽게 중독되는 삶이라고 느낀다면, 사후 대처의 문제라기보다 애초에 정보 부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신이 그렇게 끌어간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개 엉망인 소비 형태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현명한 선택이란 증명한 이에게 주어지는 특권 같은 것이고, 증명하기 위한 비결은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다'라고 말했다면, 결국 현명한 선택이란 내 길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우직함에 가장 가깝다고 답한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현명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우직함과는 반대쪽에 가깝지 않은가?
아직도 모르겠다.
삶이라는 끝없는 경주에서 중요한 것은, 오르거나 내려가는 구간을 통해 나의 절대적인 가치를 꾸준히 올리는 것에 있다고 본다. 영원한 성공도 실패도 없다. 숱한 경험을 통해 좌절하거나 오만해지지 않고 무던히 성장할 뿐이다.
실패했을 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성공과 실패 총량의 법칙에 따라 앞으로는 불운보다 기회의 시대가 열리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꾸준히 행하는 것이다.
모든 경험은 가치의 형태로 전환되어 나의 삶을 지지할 테니.
여행은, 즐거움과 힐링 그리고 스트레스 배설을 목적으로 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성장을 위한다는 빌미로 여행 등의 도피처에 지속적으로 기회를 쥐여 준다면 내 인생은 딱히 이룬 것 없이 손실만 가득해질 것이다. 여행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낭만이 이 시대의 많은 골절을 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