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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문장] 세상에 없던 생각

by 아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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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면 우리 일상에 재미있는 요소는 널려 있다.

1.

“여행은 편견, 완고함, 편협함에 치명타를 날린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광범위하고 건전하며 너그러운 견해는 일생 동안 지구의 작은 구석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그는 여행을 창작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2.

옆에 서 있던 프랑스인 커플이 갑자기 소리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을 따라 뛰었다. 앙상한 소나무숲을 지나가니 벌판이 나왔다. 그곳에는 이미 오로라 헌터들이 삼각대를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보며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그런데 맨눈으로 아무리 하늘을 쳐다봐도 뭐가 오로라인지 알 수 없었다. 구글 이미지에서 본 멋진 붉은색 오로라가 하늘을 휘감는 광경을 상상했지만 눈앞에는 희뿌연 안개뿐이었다. 실망하고 있는 나에게 조금 전의 프랑스인 커플이 다가와 이 오로라는 강하지 않아서 사진으로만 보인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들이 하는 대로 삼각대를 내려놓고 노출을 길게 잡고 셔터를 눌렀다. 잠시 후 저장된 액정 속 사진 안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예쁜 녹색 띠가 하늘을 수놓고 있는 광경이 담겨 있었다. 나는 사진과 하늘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창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것이. 우리가 무언가를 만들 때 그 과정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카메라의 셔터스피드를 느리게 잡는 것처럼, 긴 시간을 압축해서 보면 비로소 멋진 창작물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3.

그렇게 잡아내려면 지나가는 말 한마디도 놓쳐선 안 되겠다. 사람뿐만 아니라 고양이, 닭, 염소 같은 동물, 망가진 우산, 팽이, 날씨 같은 것도 캐릭터로 의인화한다. 아무것도 없으니 작은 것에서 하나씩 찾는 거다. 잘 보면 우리 일상에 재미있는 요소는 널려 있다.


4.

꼼꼼하게 관찰하기 위한 습관이 있나? 어떤 현상을 볼 때 ‘저건 왜 저러지?’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나이가 들면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들에 대해 의심한다. 나는 잔 다르크처럼 반항하거나 앞에 나서서 바꾸자고 외치는 스타일은 아니다.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겠지’라며 받아들이는 편이다. 다만 ‘그 이유가 뭘까’라고 의심한다.


5.

관찰은 주의하여 잘 살펴보는 행위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엉킨 실타래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타래를 만지작거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보면 길이 보인다. 가느다란 실이 돌고 돌아 길을 안내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다 보면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이 보인다. 노련한 프로듀서라면 그것을 적절한 타이밍에 꺼내 쓰면 된다.


6.

집이 아닌 호텔 방에 오래 앉아 있는다. 환경이 변하면 평소에 하지 못한 생각이 떠오른다.


7.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고릴라를 볼 수 있을까? ‘새로고침’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인터넷 창에서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면 이전 캐시메모리에 저장된 정보를 다 지우고 새롭게 저장한다. 가끔은 사이트 디자인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새로고침 하지 않아 모르고 있다가 놀라는 경우도 있다. 뇌 역시 마찬가지로 눈을 감고 지금 눈앞에 있는 것들에 대한 정보를 다 지우고 다시 눈을 떠서 전체를 바라보면 조금 전까지 못 보던 것들이 보일 때가 있다. 그때 얼른 노트하고 거기서부터 당신의 스토리를 시작하라. 몰입 상태에 있을 때에도 새로고침은 필요하다. 어떤 작업에 몰두해 있는데 자꾸만 진행속도가 느려질 때 역시 눈을 감고 새로고침 해볼 필요가 있다. 버퍼링이 걸려 느려진 컴퓨터도 재부팅을 해주면 다시 빨라지는 것처럼 무거워진 머리를 가볍게 해주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면 작업속도도 더 빨라진다.


8.

수다는 인간이 가진 강력한 창작의 도구다. 옛날 사람들은 수다를 통해 이야기를 짓고 나누고 퍼뜨렸다. 전래동화, 속담, 전설, 신화 등은 모두 말과 말이 부딪쳐 창작한 작품들이다. 세상에는 많은 말들이 있고 말에는 여러 기능이 있지만 그중 가장 강력한 기능은 교감하게 하는 기능이다. 교감한 말은 힘을 얻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퍼져나간다. 수다는 교감하는 말의 출발점이다. 그러니 수다를 떨자. 창작 에너지는 수다에서 나온다.


9.

극복하기 쉬운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단지 마음을 바꾸는 것만으로 치유가 된다면 세상엔 성공담이 넘쳐나야 한다. 그렇게 쉽게 힐링이 되고 마음이 바뀐다면 이 땅에 그 많은 자기계발서가 필요할 리 없다. ‘극복’이라는 단어는 수많은 고뇌의 밤과 반복되는 일상을 거친 후에만 허락되는 단어다.


10.

“인간은 빛의 모습을 상상함으로써가 아니라 어둠을 자각함으로써 계몽된다.” 칼 구스타프 융의 이 말은 지금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하고 있는 창작자들에게 유효해 보인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게 될 때는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경험했을 때다. “예술가는 남들이 실패할까봐 시도하지 않는 곳에서 과감히 실패하는 사람이다.” 극작가 사뮤엘 베케트의 말이다. 그는 사람들이 실패작이라고 말하는 작품을 계속 써나간 끝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쓸 수 있었다.


11.

다른 건축물을 살펴보는 것도 인풋이 될 것 같다. 그건 아니다. 다른 건축가의 작업을 본다거나 건축 관련 웹사이트를 보는 건 한심한 일이다. 그렇게 본 것이 자기 자신도 모르게 나중에 나오게 되어 있다. 베끼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모방을 하게 된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선 그 분야에서 떠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어도 건축이 아닌 책을 읽는다. 인류사, 과학서적 등을 본다. 또 산업디자인 작품들을 보기도 한다.


12.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감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인문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어린아이가 되어 몸 안의 세포들을 깨워야 한다. 피카소가 다시 아이로 돌아가는 데 40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만큼 어렵다. 인문적 훈련을 통해 같은 장소와 시간을 살아도 훨씬 더 풍요롭고 창의적으로 살 수 있다. 인문적인 훈련이란 어떤 건가? 도서관에서 간접경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모두 인풋으로 만들어야 한다. 가령 퇴근 후 동료와 소주잔을 기울일 때, 버스 타고 가며 낯선 거리 이름을 봤을 때 매순간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 자체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13.

박웅현은 스스로를 알렉시스 조르바에 비유했다. 조르바처럼 사는 삶이야말로 그가 동경하는 삶이라고 했다. 조르바는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1946년에 쓴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으로 누구보다 뜨거운 삶을 산 자유로운 영혼의 대명사다. 소설에서 조르바가 하는 다음 대사에서 조르바의 삶의 철학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보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14.

1) 보고 듣고 느끼는 일상을 인풋으로 삼는다. 출퇴근길, 친구 만나서 점심, 저녁 때 소주…… 곳곳에서 아이디어를 캔다.

2) 삶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든다. 스마트폰 어플은 2페이지 이내로 단순하게, 주말엔 무조건 집에서 쉰다.

3) 조르바처럼 산다. 과거, 미래는 잊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


15.

카잔차키스처럼 산다는 것은 매순간 다시 오지 않을 시간임을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 산다는 것이다. 평범한 것들 속에서 비범한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을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가 『지상의 양식』에 썼듯 마치 하루가 거기에 죽어가기라도 하듯이 저녁을 바라보고,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기라도 하듯이 아침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창작의 밑거름이 될 재료는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한 번 더 돌아볼 때 나온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일상이더라도 보잘것없는 발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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