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서 적이란 인생 그 자체다.
삶은 책을 읽기에 알맞지 않다.
인생이 관조나 성찰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1.
느린 독서는 애초에 읽어야 할 책과 읽어서는 안 될 책을 구분해 준다.
2.
철학자인 한 작가를 읽는다는 것은 계속하여 그와 토론하는 일이다. 이때 토론에는 개인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종류의 매력과 위험이 가득 차 있다. 이때 매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말해 보자. 우리는 이 매력을 맛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듣는 자세를 배워야 하고 사상가가 거쳐 가는 모든 우회로를 따라야 한다. 심지어는 생각할 때 그의 모든 망설임마저도 좇아야 한다. 우리의 정신 속에서 반론이 천천히 제 고개를 드는 것을 느끼겠지만, 반론이 버럭 터져 나오지 않기를 빌며 작가 스스로 반론을 펼치는 순간을 기다려라. 그러면 무엇보다도 생생한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선 작가와의 지적 교류를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 확신은 우리가 작가를 미리 이해했기 때문에 생긴다. 우리는 만족스럽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작가보다 아래에 있는 볼품없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가 자기 자신에게 반론하였듯 우리도 작가에게 반론할 수 있었다. 즉 우리는 작가만큼이나 원활하고 폭넓게 그가 갖는 생각의 길 위를 걸었다.
3.
독서에서 적이란 인생 그 자체다. 삶은 책을 읽기에 알맞지 않다. 인생이 관조나 성찰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야심, 사랑, 탐욕, 증오, 개중에서도 특히 정치적 증오, 질투, 경쟁, 각각의 분쟁, 이 모든 것이 삶을 뒤흔들고 폭력적으로 만들며, 미지의 무언가를 읽을 생각에서 멀어지게 한다. 시인 샤를 위베르 밀부아는 어린 시절 서점에서 일했다. 어느 날 그는 사장이 “이봐, 자네 책을 읽는군. 자네는 결코 좋은 서적상이 될 수 없을 걸세.”라고 말하자 놀랐다. 사장의 말은 옳았다. 책을 읽는 사람에게 과도한 열정이란 없다. 그것은 일종의 낙인으로, 이런 사람은 자기 직업에 대한 정열도 없다. 책을 파는 일이 제 직업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4.
자기애, 잡다한 정열, 소심함, 불만족한 정신. 이런 것들은 독서의 주적으로, 언제나 우리 안에서 비롯된다. 그 수가 많음을, 상당히 흉물스러운 것임을 우리는 보았다. 서글픈 노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독서의 주적에 맞서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책은 우리에게 남을 마지막 친구이며, 우리를 속이지도, 우리의 늙음을 나무라지도 않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