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문장]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by 아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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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무의 선택은 늘 ‘오늘’이었다.

1.

생각해 보면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현재를 희생하는 건 오직 인간뿐이다. 더 큰 문제는 선택 앞에서 지레 겁을 먹고 고민만 하다가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다. 미래를 걱정하느라 오늘을 희생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한 번쯤 청계산의 소나무를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소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았다. 방향을 바꾸어야 하면 미련 없이 바꾸었고, 그 결과 소나무는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덕분에 사람들 눈에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었지만 그럼 어떤가. 소나무가 왜 ㄷ자 모양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나면 그 지독하고도 무서운 결단력에 혀를 내두르게 될 뿐이다. 내일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오늘 이 순간의 선택에 최선을 다해 온 소나무. 천수천형千樹千形. 천 가지 나무에 천 가지 모양이 있다는 뜻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가진 유일무이한 모양새는 매 순간을 생의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과다. 수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무의 선택은 늘 ‘오늘’이었다.


2.

마지막 날 노고단 정상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생각했다. ‘목발을 짚고 나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면 죽을 때까지 이런 기쁨을 절대 몰랐겠구나. 정말이지 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게 인생이구나….’ 지리산 종주를 마친 뒤에도 한동안 나는 목발 신세를 면치 못했다. 수개월이 지난 후에야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됐지만 전처럼 높은 바위를 오르거나 경사진 곳에서 내달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수술을 받기 전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척도는 내게 달렸고, 정말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 보는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최소한 나를 옥죄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옮겨 간 곳에서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크고 작은 어려움에 맞닥뜨릴 때마다 이렇게 되뇌곤 한다. 못한다고 말하기 전에 딱 한 걸음만 나아가 보자고. 때론 그 작은 한 걸음이 답일 때가 있다고.


3.

뿌리의 힘을 제대로 키운 나무가 모진 시련을 딛고 거목으로 자라나듯, 스스로 단련하다 보면 언젠가 또 다른 희망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믿게 된 것이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내가 나무 의사라는 명함을 갖게 되기까지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 힘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인생에서 정말 좋은 일들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값지고 귀한 것을 얻으려면 그만큼의 담금질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이제는 포기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우리가 원하는 행복이나 성공 같은 좋은 일들이 우연히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면 노력이나 인내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힘이 들어도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스스로를 응원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라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깊은 산중에 싹을 틔운 야생의 나무들은 언젠가 하늘을 향해 마음껏 줄기를 뻗을 날을 기다리며 캄캄한 땅속에서 뿌리의 힘을 다지고 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을 기꺼이 감수해야 더 높이, 더 크게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4.

만일 내가 일할 때나 사람을 만날 때 완벽을 추구했다면 삶이 지금보다 훨씬 빡빡했을 것 같다. 5퍼센트라는 부족한 틈이 있었기에 우리 부부는 지금 가진 것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알았고, 능력 이상으로 내달리면서 현재를 소진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5퍼센트의 작은 결핍으로 인해 오히려 삶이 충만해진 셈이다. 그래서 나는 젊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앞만 보고 내달리지 말고, 무엇이든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고 말하곤 한다. 완벽해지라고, 앞으로 빨리 내달려 가라고 부추기는 세상에서 잘 살아가려면 오히려 잘 비우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완벽을 목표로 삼고 부족한 것을 모두 채우려고 무리하는 순간부터 찾아드는 건 불안과 초조뿐이다. 오래된 숲의 틈이 말해 주지 않는가. 비움으로써 더 좋은 것을 채울 수 있는 법이다.


5.

어쩌면 산에 오르는 것은 인생을 사는 것과도 닮은 듯하다. 그저 정상에 오르려고 하면 세상에 있는 모든 산이 다 똑같아 보이지만 천천히 음미하듯 걸음을 떼면 빨리 걸을 땐 미처 보지 못한 아름다운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뭇가지를 비추는 햇살이 시간에 따라 조금씩 기울며 다른 모양의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는 것도 걸음을 늦추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6.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 FLOW》에서 이렇게 말한다. “공부의 목적은 더 이상 학점을 받거나 졸업장을 타는 것, 그리고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 그리고 자기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질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 되는 것이다.” 학교를 다니며 그저 시키는 공부만 하다가 졸업한 뒤에 아예 공부를 끊은 사람이라면 특히 그렇다.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경험해 보지 못한다면 살면서 얻을 수 있는 큰 즐거움 하나를 놓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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