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롄커
<인민을 위해 복무하다>의 옌롄커 작가님의 장편소설.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뭐냐고 물으면 꼭 대답하는 작품 중 하나인 천명관 작가님의 <고래>는, 읽으면서 감히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하던가... 그 느낌을 우리나라 작가한테 느낄 수 있어서 아끼는 작품이다.
<해가 죽던 날>은 중국식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원제는 '일식(日熄)'이다. 정말 충실하게 원제를 따른 내용이다.
해가 뜨지 않는 하룻밤 동안 일어난 집단 몽유 사태를 그려냈다. 각 장은 '6월 6일 03:00~04:00' 이렇게 시간 단위로 표시되어 있다.
주인공은 평범한 소년이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장례용품점을 운영하며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작중 악당으로 그려진 주인공의 외삼촌은 화장장을 운영한다. 정부에서 매장을 금하고 화장을 강제로 하게 해서 사람들은 가족이 죽으면 몰래 시신을 매장했는데, 외삼촌이 자기 영업을 위해 주인공의 아버지에게 누군가 죽으면 자기에게 몰래 알려달라고 했다. 그 대가로 아버지는 시체 기름 한 통을 얻는다.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자신의 가족의 시신을 화장터 사람들에게 빼앗길 때, 아버지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생계를 위한다는 변명으로 그 밀고를 계속해왔다.
(1950년대 마오쩌둥은 전통적인 매장방식을 금하고 인민들에게 화장을 강요했는데, 아마 그때 즈음이 배경이려나? 최근 기사를 찾아보니 아직도 중국에서는 화장을 강요하는 정부와 몰래 매장하는 인민들 간의 갈등이 심한 것 같던데, 요즘이 배경일 수도 있고... 중요하지 않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던 아버지는 이 사태가 시작되자 몽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몽유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서로 재물을 빼앗고, 강간하고, 죽고 죽이는 폭력적인 본능만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천성이 착한 아버지는 죽은 사람들을 밀고해서 화장하게 만든 자신의 비겁함에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아침 6시가 지나도 해가 뜨지 않고, 6시 이후의 매 장은 계속 6월 6일 6시로 머무른다. 사람들은 깨어나지 않고 아버지는 결국 자신을 희생해서 사람들을 깨어나게 한다. 사람들을 깨어나게 하는 이 장면이 정말 장관이다... 그 어떤 영화나 영상도 이 장면을 이렇게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노벨상에 근접한 작가라서 그런가, 정말 대단한 묘사를 해놨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다>처럼 <해가 죽던 날> 또한 중국에서 금서로 지정됐다. 이 정도면 금서 전문 작가 아닌가... '중국몽'이니 '일대일로'니 하며 사람들을 혹하게 하지만, 당의 규정을 바꿔가며 독재의 모습으로 점점 변모해 가는 시진핑 정권에서 의식 없이 살아가는 중국인들을 그렸다고 본다면 충분히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다. 나 같은 필부에게도 그렇게 읽히는데 중국 정부 당국에서는 오죽했겠는가.
다만 그런 정치적 배경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한 사람이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어디까지 자신을 희생하는지 그려낸 관점에서만 이 소설을 읽어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가족은 사람들을 깨우려고 진한 차를 끓여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혹은 직접 가져다주며 마시게 한다. 마침 최근 대만 여행에 가서 유명한 차 가게들에 들러 녹차, 우롱차, 자스민차 등 다양한 차를 사왔다.
커피의 쨍한 각성효과나 입안에서 풍기는 과일향과 산미를 즐기기도 하지만(쓴 커피를 싫어한다), 땀이 나지 않는 계절에는 이렇게 다양한 차를 우려내 향을 즐기며 마시는 것도 좋다. 뭘 마셔야 깨어나는 사람이 아닌, 항상 깨어있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