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쉴 때는 주로 뭘 하세요?"
"전 그냥 책 좀 읽고, 넷플릭스 보고, 애랑 놀고 그래요."
"책 많이 읽으시는구나? 저도 책 좀 많이 읽어야 하는데... 작년에 서너 권 읽었나?"
"(작년에 150권 읽었다고 말을 꺼내면 안 되겠군) 에이... 저도 그렇게 많이 읽진 않아요 보시다시피 회사 일이 바빠서요."
"그래도 저보다 많이 읽으실 것 같은데요? (물론입니다) 재밌게 읽으신 책 하나만 추천해 주세요."
2년 전까지는 이런 식으로 대화가 흘러가서 책 추천을 하게 될 때 가장 먼저 꺼내는 작품이 장류진 작가님의 <일의 기쁨과 슬픔>과 <달까지 가자>였다. 나와 대화하는 누군가는 보통 월급쟁이 직장인이고, '직장인의 애환'이라는 장르는 100% 먹히기 마련이었다. 'CEO의 맘에 안 드는 말을 했다고 월급을 포인트로 받음'이라는 주제라니! 이더리움으로 대박을 노리는 세 친구의 코인 투자기라니!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솔깃한 주제 아닌가.
저 두 권의 소설로 연타석 홈런을 친 작가님의 세 번째 타석은 <연수>였다. 홈런을 기대했지만 조금 아쉬운 2루타에 머물렀다. 직장인 느낌이 좀 빠져서일까? 작가님도 고민이 됐겠지... 너무 한 장르에만 천착하다가 나중엔 자기 복제의 늪에 빠져 점점 뜸하게 작품을 내는 작가가 될 수는 없으니... 그러나 요즘 이정후처럼 2루타만 미친 듯이 쳐도 장타율은. 600이 넘는 초특급 타자이므로 또 다음 작품을 기대하고 있었다.
새로 출간된다는 작가님의 책은 에세이였다. 작가님의 첫 에세이이자 핀란드 여행기.
나는 남에게 관심이 별로 없어 에세이를 잘 읽지 않으며, 특히 소설가의 에세이는 작품에 가진 환상을 깨버리거나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 알게 되기에 멀리했다.
그러다 정지아/권여선/김훈 선생님들의 에세이를 읽고는 ‘난 에세이보다 소설을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냥 글 잘 쓰는 사람들의 글을 읽는 걸 좋아하고, 에세이 글들에 녹아있는 작가의 행동과 말과 생각을 읽으면서 소설이 왜 이렇게 멋지게 쓰여졌는지 감탄하는구나.’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뒤로는 마음을 조금 열게 됐는데…
여행기는 도저히 읽히지가 않았다. 심지어 박완서 선생님이 쓴 여행기마저 못 읽겠더라. 스스로 원인을 분석해 봤다.
1. 내가 가본 곳: 난 그곳에 가서 눈떠서 잠들기 전까지 내내 '다음엔 뭘 먹을까?' 생각만 하는데, 저 작가는 저런 생각을 하고 저런 느낌을 받고 오다니. 역시 난 탄소덩어리 돼지야...
2. 내가 안 가본 곳: 작가님 혼자만 좋았지 난 거기 안 가봐서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어요...
이러니까 도통 여행기는 읽을 수 없는 것이다.
장류진 작가님은 소설의 인물/사건/배경과 에세이에서의 본인의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위에 언급한 세 선생님들처럼 에세이에서 소설의 단서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탐페레 공항>이 등장하지만 그냥 탐페레 공항에 방문해서 친구와 짝짜꿍만 하고 온다.)
에세이는 개인적인 글인데, 이 에세이는 정말 심하게 개인적이었다. 게다가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기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와 서로 '네가 최고야' '너와 나는 베프 우리 사이 영원하리'라는 말과 행동을 계속 주고받는데, 내가 왜 이걸 계속 읽고 있어야 할까... 싶었다. 친구한테 큰 약점이라도 잡혔으면 신호를 보내달라고 해야 하나?
핀란드 자체는 좋다. 나에게 핀란드는 13년 전에 핀에어 타고 유럽여행 갔을 때 스탑오버로 헬싱키에 1박 하며 추위와 미친 가격의 맥도널드와 전기포트 없는 호텔과 누린내 나는 순록고기, 공원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광합성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대망의 접시 50개 핸드캐리까지...(북유럽 키친웨어는 예쁘기로 유명하고 난 그때 신혼이었다. 접시 욕심은 아내에게 있었고 난 힘이 센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여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작가님이 교환학생 다녀온 핀란드 리마인드 여행에 각 장소마다 과도한 의미부여를 해놓는 바람에 독자 입장에선 피로감이 느껴졌다. 책장을 덮으면서 ‘그냥 소설 쓰시지…’라는 생각만 들었다.
당분간 에세이는 소설가가 쓰지 않은 걸로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