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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남유하

by 김알옹

요즘 자꾸 책을 고르면 '잘 죽는 방법', '죽음 공부', '죽음이란 무엇인가' 등등 자꾸 죽음에 대한 책만 손에 잡힌다. 이제 인생 반 살았는데 벌써부터 왜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드는지 모르겠다. (90살까지는 살겠지...?)




고 조순복 님은 스위스의 조력사망기관 디그니타스에서 생을 마감한 여덟 번째 한국인이다. 그분의 딸 남유하 작가님이 곁에서 끝까지 함께하며 엄마를 보낸 기록을 책으로 펴냈다. 엄마가 병을 알게 되고 20여 년간 치료받으며 더 이상 고통을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모녀는 조용히 스위스 기관을 알아본다. 누가 알게 되면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작가님은 엄마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궁극적 목표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엄마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돕는다는 생각에 매 순간 괴로워한다. 가족들 모두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선택이지만 (엄마의 자매는 엄마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을 정도로 탐탁지 않아 했다), 엄마 본인이 그토록 원하는 죽음이기에 계속 눈물을 흘리며 결국 엄마를 보낸다. 워낙 절절하게 표현해서 책장이 작가님의 눈물로 젖어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조력사는 적극적 조력사와 소극적 조력사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적극적 조력사는 우리가 소위 '안락사'라고 말하는 별도의 투약으로 죽게 하는 것이며 소극적 조력사는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연명치료 중단제도와 같이 생명 유지를 중단토록 하는 것이다. (연세대 김준혁 교수님의 칼럼에 보다 잘 설명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적극적 조력사는 불법이며, 자살방조죄로 처벌의 대상이 된다. 말기암 등의 질환으로 엄청난 고통을 모두 겪고 나서야 본인이나 가족의 의사로 더 이상의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우리나라의 제도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육체적/정신적/경제적 고통을 겪게 하기 때문에 우리도 적극적 조력사('존엄사'라고도 표현한다)를 도입해야 한다고 작가님은 주장한다.


Figure-3-Euthanasia-process-Voluntary-euthanasia-Voluntary-euthanasia-is-conducted.png 출처: researchgate.net


우리나라는 전 세계 유례없는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하고 있고, 돌봄 비용이 사회에 큰 부담으로 다가올 시기가 올 것임에 틀림없다. -라고 써놓고 스스로 고통 없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찬성하고 있는 내 모습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진다고 잠시 생각했다. 막상 내 고통 앞에선 제발 죽게 해달라고 애원할 것이지만, 내 가족이 죽음을 선택하게 그냥 놔두는 건 마치 그의 죽음에 도움이라도 준 듯한 기분이 든다. 그 찝찝한 마음이 아마 이 제도를 반대하는 마음의 원천 아닐까. 이토록 우리는 죽음을 피하기만 하고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다가 결국 모두 죽게 될 텐데, 잘 좀 죽자는 제도의 도입에 자꾸만 거부감이 든다. 압도적 세계 1위의 자살국가에서 저 제도가 어떻게 악용될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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