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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방문

장일호

by 김알옹

2008년 여름. 난 아직 졸업도 취직도 하지 않고 자격증 딴다는 공부나 한답시고 몸은 책상 앞에 앉아서 정신은 이곳저곳을 부유하고 있었다. 한창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반대 집회가 광화문에서 열리고 있었고, 종종 집회에 나가면서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불만만 키워 나가던 시절이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편향적인 보수언론이 꼴 뵈기 싫어서 여러 주간지를 사서 읽었는데 주간경향, 한겨레 21, 그리고 시사IN을 참 많이 읽었다. 그때 주진우 기자는 정말 탐사보도로 끝내줬음.


그 뒤로 시험은 망하고, 내가 뽑았던 대통령은 몸을 던졌고, 대기업에 취직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시작했고, 더 이상 주간지를 사서 읽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네이버 뉴스 페이지에서 내 구독 언론사에 시사IN이 들어있긴 하다. 종종 다른 언론사의 기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퀄리티가 기사가 나오니까.


더 이상 주간지를 사서 읽지 않고, 한나라당인지 새누리당인지 국민의짐인지 여하튼 그놈들이 종종 뽑히는 지역에 살게 되었고, 수중에 돈은 항상 없지만 그래도 중산층이겠거니 자위하며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된 40대 중년이 된 지금, 시사IN 장일호 기자가 쓴 에세이 ‘슬픔의 방문’은 나에게 너무나도 불편한 글이다. 저자 본인의 불행한 경험들이 날것으로 나열되어 있고 하이톤의 높은 데시벨로 내 귀에 소리를 지르는 느낌의 글들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자살했다. 어머니는 아직까지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고, 저자 본인은 특성화고로 이름이 바뀐 그 당시의 여상을 졸업했다. 남동생은 누나의 뒷바라지를 한다고 제대로 공부도 못하고 일용직을 전전하다 성인이 된 후엔 도박중독으로 가산을 탕진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썩 행복하진 않은 인생사인데,


저자는 초등학생 때 성폭력을 당했다. 그 트라우마로 30대 넘어서까지 성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저자는 30대에 유방암에 걸렸다. 남들은 한 가지도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 저자에겐 파도처럼 밀려왔다.


저자는 페미니스트이며 비혼주의자다. 다행히 보살과 같은 남자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긴 했다.


타인의 슬픔과 불행을 들여다보는 일이 지금의 나에게 굉장히 불편한 일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꽤나 왼편으로 치우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제 나도 뒷짐 지고 “엣헴! 요새 젊은것들이란... 노오력을 안 하고 힘들다 타령만 하지! 정신력이 약하니까 우울증이나 걸리고 말이야! 에잉! 쯔쯔쯔” 하는 포비아 투성이의 어른이 되었나?


이 사회는 예전보다 더 불평등해지고 있는데, 이제 기득권의 범주에 든 나는 그 사실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나보다. 문제의식은 분명 느껴지는데 왜 공감이 안 될까? 글이 너무 날것이었나? 자문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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