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이젠 교수님이자 문학상 심사위원인 중견 작가가 되신 선생님의 (초)단편 모음집. 문단에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소설들을 읽느라 작가님의 작품을 읽은 게 언제인지 잘 기억도 안 난다. 11편의 짧은 작품들을 모은 얇은 책이라 부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첫 작품 <냉장고>부터 서늘하다. 중학생인 주인공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수준급 야구 실력으로 재능을 뽐내지만, 유일한 보호자인 할아버지의 죽음과 비윤리적인 야구부 코치의 방문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아직 어른이 되려면 몇 년은 남은 청소년에게 너무 가혹한 현실을 집어던지는 것 아닌가 싶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간다.
나머지 10편의 작품들을 읽다 보니 '차라리 디스토피아를 그린 SF 소설들이 더 희망적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엄혹한 현실의 파국들이 먹구름처럼 밀려온다. 감정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필체가 이어지며,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좌절하고 엎어지고 길을 잃는다. 김애란 작가님이 사회 현상을 넓은 시선으로 조망하는 느낌이라면, 편혜영 작가님은 비극에 돋보기를 대고 다큐멘터리처럼 바라보게 한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그토록 천착하는 안온/다정/무해 따위 필요 없다는 자신감이 20페이지가량 되는 짧은 작품들 내내 가득 들어차 있다. 실패하는 인물들에게 위로와 연대의 손길도 건네지 않는다. '어른의 미래'라니, 이토록 역설적인 제목이 있을까?
가끔 뉴스를 보면 영화나 드라마보다 현실이 가장 공포스러울 때가 많은데, 소설에서 현실을 픽션/논픽션의 경계가 없는 것처럼 그려내니 이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젊은 독자들이여, 무해한 위로는 쇼츠에서 고양이 동영상이나 보면 충분하니 이 책을 읽고 현실의 서늘함을 느껴보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