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마 라겔뢰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작가인 스웨덴의 셀마 라겔뢰프라는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닐스의 신기한 모험>이라는 작품 어디서 제목 많이 들어봤는데...) 그녀가 수상한 1909년 이후 10년이 지나서야 스웨덴이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됐다고 할 정도니, 대단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딸을 향한 사랑이 너무 커서 고장 나 버린 아버지의 이야기
스웨덴의 스크롤리카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얀 얀델손은 아내 카트리나와 함께 어느 농장의 소작농으로 살고 있었다. 부부에게서 태어난 딸 클라라는 부부의 사랑, 특히 아빠 얀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애지중지 키운 클라라와 함께 얀 가족은 행복하고 평범한 나날을 보낸다. 어느덧 클라라는 자라서 학교에 다니고, 슬기롭고 예쁜 여학생이 됐다.
평범한 행복은 여느 소설에서나 그렇듯이 오래가지 못한다. 얀의 농장주 에릭이 불의의 사고로 죽고, 에릭의 사위 라스가 농장을 이어받게 된다. (에릭의 사고에서 라스는 고의로 시간을 끌어 죽음의 단초를 제공한다) 탐욕스러운 라스는 에릭이 얀에게 준 집을 빼앗으려 하고, 18세의 클라라는 자신이 나서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집을 지키겠다며 스톡홀름으로 떠난다.
살아가는 이유였던 딸이 떠난 후, 얀은 하염없이 클라라를 기다리지만 약속한 일 년이 지나도 클라라는 돌아오지 않는다. 클라라가 대도시에서 좋지 않은 일(몸을 파는)을 하게 됐다는 소문만 사람들 사이에 떠돈다. 얀의 정신은 점점 피폐해지고, 그러다 결국 클라라가 포르투갈의 여황이 됐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여황의 아버지인 자신은 포르투갈의 황제라며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황제 노릇을 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놀림 반 안쓰러움 반으로 얀의 황제 노릇을 받아준다. 얀의 아내 카트리나가 이제 생계를 책임지게 됐고, 얀은 마을에 생기는 중요한 몇몇 일을 예지한다. (엄청난 능력이 생긴 건 아니다)
하지만 라스는 어떻게든 얀의 집을 빼앗으려 애쓰는데, 얀이 라스가 불행하게 될 거니 조심하라는 예언(?)을 하게 된 이후 스스로 그 말에 사로잡혀 불안감에 떨게 된다. 그러다 라스는 술에 잔뜩 취해 마차를 몰고 달리다 죽음을 맞이한다. 라스의 죽음 이후에도 변함없이 얀은 계속 클라라를 기다리고 카트리나는 일을 하며 얀과 함께 평온하게 살아간다. 그동안 클라라에게선 단 한 번의 연락도 없었다.
그렇게 클라라가 떠난 지 15년이 흐르고, 드디어 클라라가 고향에 돌아왔다. 이제 30대가 된 클라라는 예전처럼 총명한 소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삶에 찌든 중년의 여인이 됐다. 아버지가 광인이 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클라라는 어머니 카트리나의 원망을 듣지만 희망에 차 이제 자기와 함께 도시로 떠나자고 하지만, 돌아온 여황을 맞이한다고 인사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 혐오에 빠진다. - 이 부분에서 분노 게이지가 치솟는다.
클라라는 이제라도 행복하게 살자며 카트리나를 설득해서 도시로 떠나는 배에 함께 탄다. 아버지 얀을 혼자 남겨둔 채로... 얀은 혼비백산하여 배가 떠나는 부두로 달려오고 이미 출발해서 탈 수 없는 배 앞에 몸을 던진다. 그렇게 물에 가라앉은 얀. 카트리나는 인생 끝까지 얀과 함께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그를 배신했다는 생각에 시름시름 앓고, 클라라는 떠오르지 않는 아버지의 시신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오랜 시간 수색한다.
미친 사람이긴 했지만 그동안 얀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을 받은 많은 마을 사람들에게 지난 15년 간의 사연을 들으며 클라라는 얀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했는지 절절하게 느끼게 된다. 그러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카트리나도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세상을 떠난다. 카트리나가 숨을 거두자 기다렸다는 듯 얀의 시신도 물 밖으로 떠오른다.
부부의 장례식에는 마치 황제의 장례식인 것처럼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부부를 추모한다. 클라라는 마음의 평온을 찾고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그제야 알게 된다. 목사님이 클라라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작품은 마무리된다.
"오늘 이곳에 영면하신 두 분은 신분이 높거나 이름을 널리 알린 분들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풍요로운 마음을 가지고 사셨던 부부였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클라라, 네가 부모님께 받은 사랑은 내가 아는 이 세상 어떤 사람의 사랑보다 위대했단다. 그렇게 받은 사랑은 반드시 축복이 되어 돌아올 게야."
위대한 작가가 된 작가 본인도 클라라처럼 성공하겠다고 고향을 떠난 이후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한 번도 고향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클라라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다양한 장치와 설정으로 독자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 것이 흡사 톨스토이의 여러 작품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좋은 소설이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고 나의 깨달음은 이렇다.
모든 자식은 부모가 죽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자식에게 집착하면서 키워봤자 어차피 부모 곁을 떠난다.
곁에 있는 배우자와 행복하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다.
선행을 못 할지언정, 악행은 저지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