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by 김알옹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 중 정말 우울하기 짝이 없는 최고의 작품인 <더 로드>. 내 인생 가장 암흑기였던 20대 중반에 읽고 너무나도 우울한 문체와 내용에 괜히 나도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집에 책이 있지만 다시 그 회색빛 세상에 들어갈 용기가 없어 다시 펼치지 못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을 때쯤인가..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 하비에르 바르뎀의 정말 말도 안 되는 연기에 압도당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을 코맥 매카시가 썼다는 사실을...


CjNqxuYWUAE4Uo5.jpg 연예인 권오중 씨가 '놀면 뭐하니'에서 똑같은 얼굴로 분장하고 나와서 한국인에게는 아마 좀 더 친근한 얼굴일 거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인데...)


도서관 서가를 배회하다가 신작 소설 중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디자인의 책 제목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인 것이다! 으아니.. 이 영화가 원작소설이 있었어? 하고 책을 꺼냈는데... <더 로드>를 읽을 때의 그 회색빛 배경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의 붉은빛 사막 배경이 어쩐지 통하는 느낌이 있더라니... 괜히 반가운 느낌에 빌려서 읽었다.


영화에서 항상 사건 현장에 늦게 오고, 뭔가 보여줄 것 같은데 보여주지 못하고 그냥 안톤(하비에르 바르뎀)과 르웰린(조시 브롤린)의 추격전을 관망하는 듯한 역할에 그쳐서 '대체 저 역할은 왜 있는 걸까? 의문이었던 보안관(토미 리 존스)은 책을 읽어보니 소설의 화자였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더 로드>를 읽을 땐 느끼지 못했는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읽을 땐 인물들의 대화를 구분하는 따옴표 등의 기호가 하나도 없어서 고역이었다. 그리고 번역가 황유원 님이 역자의 말에서 번역이 정말 어려웠다고 했는데, 읽기 편한 문장들은 아니었다. 다음 예시를 보자. 이 정도면 작가가 대놓고 번역가 죽어봐라! 한 거 아닌가?


Then he picked up his airtank and the stun- gun and walked out the door and got into the deputy's car and started the engine and backed around and pulled out and headed up the road.

그러고 나서 그는 공기통과 전기충격총을 집어 들고 문을 나서서 부보안관의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후진해서 방향을 틀더니 도로로 나가 길을 따라 달려갔다.


He latched the case and fastened the straps and buckled them and rose and shouldered the rifle and then picked up the case and the machinepistol and took his bearings by his shadow and set out.

그는 케이스를 잠그고 끈을 조여 버클을 채운 다음 일어나서 소총을 어깨에 메고 나서 케이스와 기관단총을 집어 들고 자신의 그림자로 방향을 가늠한 뒤 출발했다.


대체 왜 이러냐고 Gemini에게 물어봤다. 다른 소설 읽듯이 편하게 디비 누워서 후룩후룩 책장 넘기려고 한 독자라서 죄송합니다 매카시 선생님... 그나마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번역가 황유원 님 감사합니다...

Q: 코맥 매카시는 왜 자기 작품에 그토록 많은 'and'를 사용한 거야?
A: 코맥 매카시가 작품에서 'and'를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다접속법(Polysyndeton)'이라는 의도적인 문학적 장치입니다. 그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ㆍ성경적이고 서사적인 리듬 부여 - 매카시는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Bible)의 문체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and'를 반복함으로써 문장에 고대 서사시나 성경과 같은 장엄하고 엄숙한 리듬을 부여하여, 이야기를 단순한 소설이 아닌 시대를 초월한 신화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ㆍ행동의 연속성과 속도감 - 쉼표(,) 대신 'and'를 사용하면 독자가 쉬지 않고 문장을 읽게 됩니다. 이는 사건이 숨 쉴 틈 없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긴박감을 조성하며, 행동의 흐름을 끊지 않고 묘사하여 현장감을 극대화합니다.
ㆍ객관적 서술 (가치 판단 배제) - '그래서(so)'나 '그러나(but)'와 같은 접속사는 앞뒤 문장에 인과관계나 대조를 부여하지만, '그리고(and)'는 단순히 사실을 나열합니다. 이는 작가가 사건에 개입하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고, 일어난 일들을 평등하고 무심하게 보여줌으로써 매카시 특유의 냉혹하고 황량한 세계관을 강조합니다.
ㆍ압도적인 현실감 - 세부 사항이나 행동을 'and'로 계속 쌓아 올림으로써(accumulating effect), 독자가 그 상황의 물리적 실체와 무게감을 그대로 느끼게 만듭니다.

매카시 본인의 말: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작가의 역할은 독자를 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독특한 문체는 의도적으로 독자에게 도전을 제시하고, 능동적인 참여를 요구합니다.


책을 읽고 나니 코엔 형제가 얼마나 연출을 잘했고, 배우들이 훌륭한 연기를 했으며, 내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영화 보는 게 낫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지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쪽 매체를 모두 즐기는 나 자신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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