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딱 한 사람을 꼽지 못했는데 요즘엔 "저는 성해나 작가요. <혼모노> 들어보셨죠?" 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굳이 나의 책 덕후력을 노출할 필요 없게 만드는 베스트셀러의 힘이다.
그러나 마구 뽐내고 싶은 사람에게는 좋아하는 우리나라 현대 소설가들을 줄줄 읊어댄다. 김애란, 김금희, 최은영, 정세랑, 장류진, 박서련, 정유정, 구병모, 한강, 천명관, 김영하, 김언수, 김연수, 김기태, 김훈, 장강명... 말하거나 쓰다 보면 묘하게 김애란 작가님 이름이 맨 처음으로 나온다. 그만큼 좋아한다는 내 무의식의 발현이겠지. <안녕이라 그랬어>, <이중 하나는 거짓말>, <바깥은 여름>, <비행운>,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었고 <침이 고인다>, <달려라 아비>만 읽으면 작가님 소설들은 얼추 다 읽은 것 같다. (<달려라 아비>도 아마 과거에 읽었는데 기억을 못 하고 있을 듯하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다시 프롤로그에 나오는 인상적인 문장을 돌아보니, 결국 이게 맞네. 17세에 아름이를 갖게 된 부모와 조로증으로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늙어버린 아름이의 이야기니까.
아름이의 시선에서(남자아이다) 엄마 미라와 아빠 대수의 17세 시절을 떠올리며 소설은 시작된다. 엄마와 아빠는 소위 말하는 '사고'를 쳐서 아름이를 낳게 된다. 둘은 젊은 시절을 버리고 아름이를 열심히 키우지만, 조로증이라는 희귀질환을 갖고 태어난 아름이는 오래 살 수 없는 아이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애늙은이 같지만 항상 긍정적이라 읽는 내내 잔잔한 미소를 주는 인물이다. 부모의 이야기와 아름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점점 아름은 빠르게 늙어가고, 병원비 때문에 아름이네 가족은 힘든 이웃을 돕는 방송에 출연하게 되고, 그 이후 어느 넷카마와 편지를 주고받다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기적적으로 아름이의 병이 나아서 부모님과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결말을 아주 조금 기대했지만, 결국 아름이는 자신이 쓴 짧은 소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그 소설은 약간 'How I met your mother' 느낌으로 17세의 남녀가 어떻게 처음 만나서 아이까지 가지게 되는 관계가 됐는지 유머러스하게 그린 내용인데, 아름이가 자신의 죽음 이후 슬퍼할 부모님을 위해 남겨놓은 것이다. 내용은 웃긴데 생각하니 슬프다. 언제나 그렇듯 마음 어딘가를 건드리는 문장이 도처에 등장한다.
짧은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사는 내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고 떠날 수 있는 용기 있는 아이와, 힘든 시절을 지나 이제 행복해볼까 하니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에 잠기게 되는 한때 철없고 어렸지만 빠르게 어른이 된 부모의 이야기다.
슬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배를 까놓고 드렁드렁 자고 있는 아이의 잠옷 매무새를 정리해 주고 이불을 덮어주고 머리를 한 번 쓸어주고 나왔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이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과장된 클리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똑같이 하게 되더라)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생각하지만 그놈의 욕심을 버리기는 영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