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기 오패럴
지난번에 <제임스>를 읽고 나서 Gemini에게 비슷한 대체역사물 추천을 받았을 때 목록에 있던 책이다. 마침 유튜브 어디선가 본 2026년 개봉 영화 기대작에도 올라와 있길래 냉큼 책을 빌려왔다.
저자: 매기 오패럴 (Maggie O'Farrell)
원작: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 (의 창작 배경)
주인공: 애그니스 (셰익스피어의 아내) & 아들 햄넷
줄거리: 셰익스피어의 요절한 아들 햄넷과, 남편의 그늘에 가려져 '문맹의 악처'로 오해받던 아내 애그니스의 삶과 상실을 다룹니다.
문학적 성취: 2020년 여성 문학상(Women's Prize for Fiction) 수상작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결합해 모성애와 애도를 아름답게 그려냈습니다.
원작과의 비교: 희곡 <햄릿>이 아버지의 유령에 사로잡힌 아들의 이야기라면, 소설 <햄넷>은 아들의 유령을 기리기 위해 글을 쓰는 아버지와 남겨진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그때 Gemini의 소개를 보니 기특하게 할루시네이션도 없고 정확한 정보를 줬더라.)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비극 <햄릿>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대단한 작품이다. 실질적인 주인공은 그의 아내 아그네스와 둘째 아들 햄넷이다. (책에선 '애그니스', '햄닛'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왠지 '아그네스', '햄넷'이라고 쓰는 게 더 편해서 그렇게 쓰겠다)
1부
아그네스가 어떻게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게 됐는지, 갑작스럽게 전염병을 앓게 된 쌍둥이 동생 주디스를 구하기 위해 어른들에게 분주하게 도움을 청하는 햄넷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흘러간다.
아그네스의 이야기:
권위적이며 숨 쉬듯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기를 못 펴고 천덕꾸러기 취급이나 받으며 라틴어 교사 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청년 윌은 어느 날 수업을 하러 간 집의 하녀 아그네스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불이 붙어버린 둘의 사랑의 결과로 아그네스는 임신했고, 아직 변변찮은 직업도 없지만 둘은 살림을 차린다. 아그네스는 사람들에게서 '마녀 아냐?'라고 의심을 받을 정도로 자유분방했던 엄마의 피를 물려받아 똑같이 자유로운 - 숲을 사랑하고 온갖 약초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졌고 동물(매)도 사랑한다 - 성정을 지녔다.
아그네스는 첫 아이 출산이 목전으로 다가오자 진통을 하면서 숲 속 아늑한 공간에 자리를 잡고 홀로 아이를 낳는다. 시집살이를 하면서 아그네스는 사람들에게 약초를 처방해 주며 생활을 이어간다. 그리고 다시 둘째가 생긴다. 이번엔 집에서 출산하게 됐고, 일란성쌍둥이 주디스와 햄넷이 태어난다. 그리고 그즈음 남편은 극작가로서의 소명을 갖고 런던으로 떠난다. 육아와 가사 모두 내팽개치고 런던에만 머무는 남편의 사랑은 예전 같지 않지만 아그네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햄넷의 이야기:
아주 먼 나라의 원숭이 한 마리가 가지고 있던 병균이 이태리의 유리 세공사를 거쳐 아그네스의 딸 주디스에게 도달한다. (기가 막히게 잘 쓴 병균의 여정에서 감탄했다) 흑사병으로 추정되는 무서운 병에 걸린 주디스는 사경을 헤매고, 영혼의 반쪽을 공유한 쌍둥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햄넷은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엄마는 양봉을 하러 꽤 멀리 나가 일하고 있어 찾을 수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손찌검을 하는 할아버지의 기분을 거슬렀다고 한 대 맞기까지 한다. 결국 엄마가 집에 왔지만, 주디스의 병세는 손쓸 수 없이 심각해져 있었다.
흑사병의 사신이 주디스의 생명의 불꽃을 꺼뜨리고 있을 때, 햄넷은 자신이 대신 병석에 누워있으면 죽음이 쌍둥이를 헷갈려서 주디스 대신 자신에게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다운 생각이지만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기적적으로 주디스는 병마를 물리치고 일어나지만, 햄넷이 병에 걸리고 만다. 평소 약간의 샤머니즘을 믿고 실제로 신통력을 발휘했던 아그네스는 햄넷의 기지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기적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고, 햄넷은 급속도로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2부
자식을 잃은 아그네스의 단장의 비애를 절절하게 그려낸다. 주디스를 구하려고 대신 죽음을 불러들인 햄넷의 행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자책에 아그네스는 차마 아들을 보내지 못하고 하염없이 아들의 시신 옆에 머문다. 이제 보내야 할 때가 됐기에 아그네스는 아들을 직접 염한다. (햄넷의 죽음 이후 염하는 장면까지 정말 내장이 끊어지는 듯한 슬픔이 느껴진다) 집에 이토록 큰일이 일어났는데, 남편은 주디스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 인편으로 소식을 받고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아들의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했다.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 됐고, 아그네스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멍하니 햄넷을 그리워한다. 그동안 해왔던 약초 처방이나 양봉뿐 아니라 그 어떤 집안일에도 손을 대지 않고 그저 슬픔에 잠식되어 햄넷 생각만 한다. 이 와중에 남편은 그놈의 연극이 대체 뭐길래 자신이 세운 극단의 공연에 자신이 꼭 있어야 한다며 다시 런던으로 떠난다. 눈을 뜬, 숨을 쉬는 모든 순간에 아그네스는 햄넷을 그리워하고 슬퍼한다.
여전히 남편의 부모 집에 살던 아그네스와 아이들에게 다시 남편이 찾아온다. 그런데 그는 런던에서 성공한 극작가가 됐고 부자가 됐다. 그리고 그들이 살던 고장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집을 산다. 아그네스와 아이들은 이제 자기의 집이 생기게 된 기쁨에 햄넷을 잃은 슬픔에서 아주 조금 빠져나온다. 그리고 남편은 다시 런던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좀 흘러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슬픔은 멈추지 않는다.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을 거라는 확신도 생긴다. 그토록 사랑했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
그런 와중에 남편의 소식이 들려온다. 새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데 그 제목이 <햄릿>이라는 것이다. 소중한 아들의 이름을 감히 연극 제목에 붙였다는 분노에 아그네스는 당장 런던으로 달려간다. 햄넷을 잃은 슬픔도 뒤로 하고 대체 런던에서 무슨 짓을 하고 살길래 어디 한 번 보자고 그가 사는 집에 들어가 본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이 단출한 침대와 책상뿐이었다. 남편은 정말 연극에만 빠져있던 것이었다.
아그네스는 <햄릿> 포스터를 들고 첫 공연을 보러 갔다.
수많은 관객 속에서 인생 첫 연극을 하필 자신의 가장 거대한 슬픔과 함께 지켜보게 된 아그네스 앞에, 세상을 떠난 아들이 나타난다. 아들 햄넷과 말하는 법, 움직이는 법이 똑같고 외모마저 햄넷이 자랐으면 그렇게 됐을 법한, 소년 왕자 햄릿이었다. 남편은 그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들을 되살린 것이다.
......전단에 적힌 이름이 애그니스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위한 수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떤 신호, 손짓, 앞으로 내민 손, 부름. 애그니스는 런던으로 말을 달려오면서 어쩌면 아들이 죽은 뒤 남편이 거리를 두고 침묵을 지켰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남편의 마음에 이해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싶다. 남편의 마음속에는 오직 나무 무대, 열변을 토하는 배우, 암기한 대사, 경탄하는 관객, 분장한 광대밖에 없으니까. 애그니스는 내내 환영을, 도깨비불을 쫓고 있었다.
애그니스가 치맛자락을 모으고 숄을 두르고 남편과 극단을 뒤로하고 떠나려는데, 무대 위로 한 소년이 올라와 주의를 사로잡는다. 남자아이야, 애그니스는 숄을 풀었다가 다시 묶으며 생각한다. 아니, 어른이야. 그러다가 다시 아냐, 청년—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청년이야.
살갗을 채찍으로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다. 이마에 노란 머리카락이 솟구친 젊은이는 가볍고 튀는 듯한 걸음으로 걷고 고개를 초조하게 까닥거린다. 애그니스는 손을 떨어뜨리고 만다. 숄이 어깨에서 흘러내리지만 주울 생각도 않는다. 애그니스는 눈을 떼지 못한다. 도저히 눈을 돌릴 수가 없어 보고 또 본다. 가슴에서 숨이 다 빠져나가고 혈관에서 피가 얼어붙는 것 같다. 머리 위 둥근 하늘이 난데없이 가마솥 뚜껑처럼 머리를 짓누르는 것 같다. 애그니스는 섬뜩한 추위를 느낀다. 숨 막히는 열기를 느낀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 영원히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왕이 그를 "햄릿, 내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도 애그니스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 당연히 그렇겠지. 당연하다. 아니면 누구겠나? 아들을 지난 4년 동안 쉼 없이 사방으로 찾아 헤맸는데,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 아이가 그애다. 아니, 그애가 아니다. 그애다. 아니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망치처럼 왔다 갔다 한다. 애그니스의 아들, 햄닛 혹은 햄릿은 죽어 교회 묘지에 묻혔다. 아직 어린 나이에 죽었다. 지금 그 아이는 무덤 안에서 헐벗은 백골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그애가 있다. 거의 어른으로 자라나, 그애가 살았다면 되었을 모습으로, 무대 위에서, 아들의 걸음걸이로 걷고 아들의 목소리로 말하고 제 아비가 쓴 대사를 읊는다.
애그니스는 두 손으로 옆머리를 꽉 누른다. 이건 지나치다. 이걸 어떻게 견딜지, 어떻게 이해할지 알 수가 없다. 너무 과하다. 순간 자기가 쓰러져 머리와 몸들의 바다 아래로 가라앉아 다져진 땅에 누워 수백의 발에 밟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때 유령이 돌아오고 햄릿이라는 젊은이와 얘기를 한다. 젊은이는 겁에 질리고 화가 나고 동요하고 있다. 오래되고 익숙한 충동이 마른 강바닥에 물이 들 듯 애그니스의 마음속에 밀려온다. 애그니스는 그 아이에게 손을 얹고 싶다. 품에 안고 위로하고 달래고 싶다. 그걸로 세상이 끝나더라도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충동이 솟는다.
무대 위의 젊은 햄릿은, 늙은 햄릿인 유령이 자기가 어떻게 죽었는지 얘기하는 걸 듣는다. 유령은 독이 "마치 수은처럼" 몸을 타고 흘렀다고 말하고, 젊은이는 꼭 애그니스의 햄닛처럼 귀를 기울인다. 똑같이 머리를 갸웃하고, 얼른 이해가 안 되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러듯이 주먹을 입에 대고 듣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해가 안 간다. 말이 안 된다. 이 배우가, 이 젊은이가, 애그니스의 햄닛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그 아이가 되는 법을 알지?
애그니스가 밀집한 군중을 뚫고 무대 쪽을 향해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고운 비가 내리듯이 깨달음이 내려앉는다. 남편이 연금술을 부린 것이다. 이 아이를 찾아서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서고 어떻게 턱을 드는지 가르치고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연습을 시키고 준비를 시키고 가다듬은 것이다. 아이가 말하고 들을 대사를 쓴 것이다. 애그니스는 그 리허설을 상상해 본다. 남편이 어떻게 세밀하고 정확하게 이 아이를 가르쳤을지, 아이가 그걸 해냈을 때, 처음으로 그 걸음걸이로 걷고 그 가슴 아픈 고갯짓을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지. 남편이 이렇게 말했을까? "더블릿 단추를 풀고 타이를 늘어뜨려. 발을 끌면서 걷고, 머리카락에 물을 묻혀 이렇게 세워."
햄릿은, 여기 무대에서, 두 사람이다. 살아 있는 젊은이, 죽은 아버지. 죽었으면서 살아 있다. 남편은 아이를 자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되살렸다. 애그니스는 유령의 대사를 들으며 남편이 이 극을 쓰고 유령 역을 맡으면서 자기 아들과 자리를 바꾸었음을 깨닫는다. 아들의 죽음을 자기 것으로 삼았다. 자신을 죽음의 수중에 넣고 대신 아이를 되살렸다.
"오 끔찍하다! 오 끔찍해! 너무나 끔찍해!" 남편이 죽음의 고통을 상기하며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말한다. 남편은 세상 모든 아버지가 하고 싶어 할 일을 했다. 아이의 고통을 자기가 지고, 아이와 자리를 바꾸고, 아이 대신 자신을 내주어 아이를 살리려 한 것이다.
애그니스는 이 모든 이야기를, 나중에, 남편에게 할 것이다. 연극이 끝난 다음에, 마지막 정적이 내려앉은 다음에, 죽은 자가 살아나 무대 가장자리에 다른 배우들과 같이 선 다음에. 남편과 아이가 손을 맞잡고 우레 같은 박수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또 숙인 다음에. 무대가 텅 비고 더는 흉벽도 무덤도 성도 아니게 된 다음에. 그가 애그니스를 찾으려 회칠 흔적이 아직 남은 얼굴로 관객을 가까스로 뚫고 온 다음에. 그가 애그니스의 손을 잡고 버클과 가죽으로 연결된 갑옷 가슴팍에 끌어안은 다음에.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극장의 둥근 공간이 그 위 하늘처럼 텅 빈 다음에.
지금, 애그니스는 관객 맨 앞, 무대 가장자리에 있다. 애그니스는 두 손으로 나무 테두리를 붙든다. 팔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햄릿이, 애그니스의 햄릿이, 만약 그애가 살았다면 되었을 모습으로, 그리고 남편의 손, 남편의 수염, 남편의 목소리를 지닌 유령이 있다.
애그니스는 그들에게 인사하듯, 세 사람 사이에 감도는 공기를 느끼듯, 관객과 배우 사이의 경계를, 현실과 극 사이의 경계를 뚫고 나가고 싶다는 듯 손을 뻗는다.
유령이 무대에서 나가려다가 애그니스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는 애그니스를 똑바로 보고, 시선을 맞추고, 마지막 대사를 한다.
나를 잊지 마.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는데 눈앞이 흐려져서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다니... 여간해서는 눈물이 안 나는 강철심장 ISTP 중년아저씨 감성을 마구 흔들어댄다. (난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도 울지 않았다) 아이가 있는 아버지의 감정에 100% 이입된 탓이다. 대문호고 나발이고 그 어느 부모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버틸 수 있으랴...
새삼 영유아 사망률이 아주 낮은 나라와 시대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실감한다. 그리고 뚱하게 책을 읽는 아저씨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문학의 힘에 다시금 경외를 표한다.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오기 전에 손수건 들고 혼자 봐야겠다. 울 준비는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