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미
서사가 알차게 그려진 소설 읽기를 좋아한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거나 혹은 적어도 힘들고, 감정이나 묘사에 치중한 이야기의 흐름도 잘 견디지 못한다. 어떤 소설은 무척 긴 장편이지만 이야기의 구조에 빠져들어 단숨에 읽게 되지만, 어떤 소설은 아주 짧은 단편이어도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의 묘사를 도통 이해하지 못해 한참을 헤맨다. 10가지 코스요리를 하나하나 음미하는 방식의 긴 이야기도 좋고, 맛있는 한 그릇과 같은 짧은 이야기도 좋다. 이야기를 잘 만들기. 소설가에게 가장 부러운 점이다.
최은미 작가님은 늘 짧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길을 걷다 단상이 떠오르면 혼자 즐거워했다고 작가의 말에 수줍게 밝혀놓으셨다. 작은 판본의 책에 자간도 넓은데 한 편이 20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구멍이 숭숭 뚫린 못생긴 치즈를 입 안에 한 조각 넣으면 오묘한 맛이 나서 저절로 눈이 감기듯, 짧은 11편의 소설들이 갑자기 시작해서 갑작스러운 사건을 겪고 갑자기 끝난다. 혹은 은근하게 시작해서 은근하게 끝나기도 한다. 각 작품의 인물들은 어딘가 좀 모자라고 황당한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비극도 희극도 아닌 애매모호한 결말이 참 맘에 드는 이야기들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상한 이야기>를 보자. 은행 현금인출기 위에 누군가 놓고 간 만두 봉지를 보고, 헤어진 남자친구와 자주 가던 만두가게임을 알게 된 주인공은 무작정 그 봉지를 들고 간다. 마침 최근에 전남친이 연락해서 그에게 예전에 빌린 돈을 구글 플레이카드로 보내달라고 하길래 만두를 들고 편의점에 가서 몇십만 원어치의 카드를 산다. 그러나 만두 주인이 그녀를 추적해서 붙잡히게 되고, 그 봉지 안의 만두가 '어떤 만두인지' 추궁당한다. 주인공은 그걸 또 맞추지만, 그녀를 추적하며 편의점도 따라갔던 만두 주인은 그녀가 받은 연락이 피싱일 거라고 하며 그녀를 보내준다. 아직 전남친을 못 잊은 주인공은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읊조리며(하지만 피싱일 가능성이 크다) 집에 가서 만두 봉지를 열고 허겁지겁 만두를 먹는다.
책을 전혀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이 소설과 친해지고 싶다면 기꺼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고 나니 쇼츠 11개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군가는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면 대단하다고 경외의 눈빛을 보내지만, 막상 쇼츠를 보는 지하철의 수많은 사람들과 나의 차이는 대체 무엇일지 항상 의문이다.
책장을 빠르게 넘겨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소비하고, 마음속에 문장 하나도 새겨놓지 않은 상태로 다음 책을 찾아 떠난다. 조금이나마 의미 있는 독서를 위해 브런치도 시작했지만, 여전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 대부분의 독서를 소설로 때우는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있을 법한 이야기가 좋지, 실제 있는 이야기는 별 재미가 없어 잘 읽지 않는다. 이야기를 소비하고 끝없이 다른 이야기를 찾아 도서관 서가를 뒤져댄다. 내가 정말 찾고 있는 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