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by 김알옹

표지가 잘 빠졌다. 내가 흑백을 좋아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도 적당히 괜찮게 읽었다. 읽기 전부터 느낌이 좋은 소설이라 기대가 컸다. 초반부엔 방탈출카페에 들어간 바이러스(코로나 아닌 가상의) 시대의 부적응자가 그 방의 테마를 덤덤히 서술하고, 조기준이라는 사람의 사연을 별도의 챕터로 교차해서 서술한다. 납치되어 전쟁이 발발했다는 거짓말로 가스라이팅 당하며 오랫동안 격리된 삶을 살아온 소년의 이야기가 좀 흥미롭다 싶었는데… 소재로 80년대의 국기에 대한 맹세나 국민교육헌장이 등장해서 몹시 고루하다. 80년대생인 내가 느끼기에도 그렇다.


난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만 그랬는지 다른 학교들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한자 교육을 엄청 많이 받았다. 애국가, 국기에 대한 맹세, 국민교육헌장 모두 한자로 외워서 시험을 봤다. 내가 국민교육헌장을 무려 한자로 다 외웠다고 말하면 아내는 '나이 속인 거 아니냐'며 나를 놀린다. (진짜 그랬다구)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지금 생각하면 참 전체주의적 문구 아닌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 문구도 만만치 않다. 개인과 개인이 만나 사랑의 결실로 아이가 생겼는데, 왜 그 아이를 갑자기 국가와 민족이 나타나서 자기가 써먹겠다고 사명을 심어주고 충성을 강요하는 걸까. 아이도 동의하지 않았고, 부모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냥 태어났을 뿐이다.


다운로드.jpg 2026년에 읽는 책에서 이런 느낌을 받으니 너무 고루하다.


그래 뭐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던 시대니까 그런 주제로 풀어나가려나 했는데…


이건 이야기가 전개되면 될수록 조기준이라는 인물의 사연이 조기준 본인, 잠시 탈출한 그를 본 사람, 조기준이 만들었을지 모르는 가상인물 등 다양한 관점에서 왜곡되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너무 꼬아놓으니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반전의 묘미를 느끼고 싶은데 조금 느낌이 온다 싶으면 그놈의 80년대 공격이 훅 들어온다. 게다가 현재 시점의 서술자의 사연이 끼어드니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300페이지도 안 되는 책에 중구난방으로 펼쳐져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다.


방탈출카페에서 다양한 단서를 찾는 것처럼 독자를 정신없게 만들려는 작가님의 의도라면 기꺼이 이용당하겠지만 아무리 봐도 겹겹이 쌓인 이야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으니 유쾌하지 않다. 읽는 내가 뭔가 고상한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 건가? 내 문해력이 부족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잘못은 아니다. 아니 매끈한 표지 디자인과 작가의 이름값에 속아서 아무 소설이나 마구 읽어대는 내 잘못일지도 모른다.


9791172133337_01.jpg 표지만 보면 읽고 싶게 생겼다..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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