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현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피부색, 혈우병, 근친혼, 범죄와 폭력, 우생학, 동성애, 암 등의 영역에서 다양한 사례로 이를 반박한다. 우생학을 극도로 날카롭게 가다듬어 인류를 찌르게 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현대사의 가장 끔찍한 비극이 유전자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의도 때문에 시작된 것이므로 충분히 경계할 만한 편견이다. 나쁜 유전자나 열등한 유전자는 없다는 논지다.
마지막 장에선 공들여 리처드 도킨스를 직접 비판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의 영역이 어떻게 과학으로 흘러오게 됐는지 그 역사를 간단히 설명하면서 도킨스까지 이르는데, 역시 많이 아는 사람은 글을 쉽게 쓰는구나…
요즘도 학교에서 생물시간에 유전 관련한 내용을 배울 때, 우리처럼 '우성'과 '열성'이라고 배우려나? 곱슬머리는 우성이고 직모는 열성이라고 배웠는데, 단어 뉘앙스를 볼 때 마치 직모가 열등한 머리카락인 것처럼 느끼는 건 비단 내 직모인 머리카락이 점점 얇아지고 휑해지는 탓은 아니라고 믿는다.
동성애
당신의 성은 당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며, 무언가를 성취한 대가로 또는 잘못한 벌로 받은 것도 아니다. 당신에게는 애초부터 성을 고를 자격도 권한도 없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인간의 성은 아네모네피쉬와 달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동성애 성향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라 볼 수 없다. 동성애는 단지 소수에게서 나타나는 하나의 성향일 뿐이다. 동성애와 이성애가 공존할 수 없다고 볼 만한 근거도 없다. 2012년 프랑스에서 진행된 동성혼 법제화와 관련된 논의를 다룬 영화 「사회학자와 곰돌이(Sociologue et l’Ourson)」에서 사회학자 이렌 테리(1952~)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은 자기들의 생각이 변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걸 싫어해. 그건 본인이 과거에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는 걸 받아들이는 꼴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생각의 변화는 ‘틀림에서 옳음으로의 과정’이 아니야.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언제나 ‘틀린’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어. 세상은 계속 변하니까."
이 말은 어떤 입장도 옳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오랫동안 옳은 입장은 없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 문제는 계속해서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불변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의 끝없는 논쟁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들 모두가 이 세상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암
유방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변이체를 가진 사람은 전체의 5~1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90퍼센트 이상의 환자는 다른 이유로 유방암에 걸린다. 남성이 BRCA1 또는 BRCA2 변이체를 가진 경우 전립선암 발병 빈도가 6배나 증가한다. 남성에게는 이 유전자가 ‘전립선암 유전자’로 불려도 이상할 게 없다. (물론 아주 드물게 남성에게도 유방암을 일으킬 수 있다.)
흔히 ‘우울증 유전자’라고 불리는 5-HTTLPR 부위는 우울증과 단지 약한 연관이 있을 뿐이다. 이 유전자는 사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다른 여러 가지 형질에 두루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유전자 때문에 우울해졌다고 핑계를 대는 것은 그리 합리적인 행동이 못 된다. 도파민 수용체를 만드는 DRD4 유전자에는 ‘바람둥이 유전자’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DRD4의 변이체를 가진 사람은 음주나 도박과 같은 자극을 더 자주 찾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바람을 피우거나 성생활이 난잡한 것에 대한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미안해 자기, 내 유전자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라는 변명을 듣는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리고 특히 언론은) 유전자에 ‘유방암 유전자’나 ‘범죄 유전자’ 따위의 자극적인 이름 붙이기를 선호한다. 이런 명명은 유전자가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BRCA1 유전자의 기능은 돌연변이가 일어났을 때 유방암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손상된 DNA를 수선하는 것이다. 심장이 심장마비에 걸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이, 유전자도 자신의 ‘나쁜’ 운명을 성취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