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존슨
<스토너>보다 더한, 이토록 쓸쓸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또 읽는구나. 고독하게 시작해서 고독하게 끝나는 일생이거나, 잠깐 행복을 누렸지만 역시나 고독하게 끝나는 일생을 그린 작품이 무척 많다. 남성 작가들이 다들 고독하게 살아서 한 번쯤은 이런 고독한 작품을 쓰게 되는 걸까?
과묵한 남자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난 지도 모른다. '기억나는 순간부터 살기 시작했소'의 수준이랄까. 벌목 일을 하며 정처 없이 일을 찾아 떠도는 삶이다. 그러다 사촌의 소개로 글래디스를 만난다. 둘은 곧 사랑에 빠진다. 개울 옆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갓 태어난 딸 케이트와 함께 셋이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행복은 잠시 뿐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철도 설치 공사 일로 꽤 큰돈을 벌어온 로버트를 맞이하는 건,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이가 아닌, 숲을 활활 불태우는 화마였다. 다급하게 불타는 숲 속으로 달려가 헤매며 찾아봤지만, 로버트가 일생에서 유일하게 사랑한 여자와 그들 사이의 보석 같은 아이는 전소한 오두막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운수 좋은 날>에서는 죽은 아내의 시신과 홀로 남겨진 아이라도 있었지, 로버트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큰 상실에 좌절한 로버트는 집터에 다시 오두막을 짓고 그곳에서 아내와 딸을 무작정 기다린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기력이 떨어져 더 이상은 벌목 일을 할 수 없게 된 로버트는, 말 두 마리와 수레 하나를 사서 사람들과 짐을 운송해 주는 일로 먹고산다. 숲 속 오두막에서 개를 키우며 조용히 살아가지만, 기차가 나타나는 꿈과 숲이 불에 타는 꿈을 자주 꾼다. 그러다 불이 나는 순간 글래디스가 어떻게 도망치다가 죽음에 이르렀는지 구체적인 장면이 꿈에 나타나는데, 딸 케이트의 모습은 없다.
혹시나 딸이 살아있나 기대를 하던 어느 날, 집 앞에 한 (늑대) 소녀가 쓰러져 있었다. 야생에서 자랐음이 틀림없는 그 아이가 자신의 딸이라고 로버트는 확신한다. 다리가 부러진 소녀를 부목을 대서 치료해 주고 잠에 빠졌는데, 인기척에 깨어나 보니 소녀는 창문으로 도망쳐 나가는 중이었다. 정말 딸이었을까?
지독하게 쓸쓸한 이 짧은 작품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레이니어는 여든 살이 넘어서 1960년대까지 살았다. 살아 있는 동안 태평양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서부까지 여행한 적도 있지만, 바다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동쪽으로 가장 멀리 간 곳은 몬태나주 경계선 안쪽으로 40마일 거리인 리비였다. 그가 사랑한 사람은 한 명, 아내 글래디스였으며, 재산은 땅 1에이커, 말 두 마리, 수레 한 대였다. 그는 술에 취한 적이 없고, 총기를 구매한 적도 없고, 전화기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기타를 자주 탔지만 자동차도 많이 탔고, 비행기도 한 번 타본 적이 있었다. 말년의 10년 동안 그는 읍내에 나올 때마다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으며, 자손을 남기지도 않았다.
이 작품이 영화화되어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어서 책 마지막 장을 덮고 바로 영화를 봤다. 조엘 에저튼이라는 배우가 로버트 역을 맡았는데 대사도 몇 마디 없고, 젊은 시절부터 노년까지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줘야 하는 어려운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연기를 펼쳤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깊은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책 내용이 영화로 만들기 좀 재미없지 않나? 싶었는데, 전원생활 속에서의 행복함과 뒤이은 화재로부터의 불행까지 영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아무리 아름다운 장면이어도 인물의 쓸쓸함을 숨길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