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by 김알옹

도서관에서 인기가 많길래 '앗 누가 집어가기 전에 얼른 내가 먼저 가져가야지'라는 이유로 빌려와서 읽은 책.


스무 살 나희는 어릴 적 엄마를 병으로 잃었지만 분식집을 운영하는 아빠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바르게 컸다. 아무래도 어려운 살림이라 온갖 아르바이트를 다 해봤고, 스무 살이 되어서는 장례식장 매점에서 일하게 된다. 그런데 나희에게 자꾸 죽은 사람들이 보인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나희에게 뭔가 부탁을 해온다. 착한 나희는 비슷한 능력이 있는 이전 근무자 수영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의 마지막 부탁을 해결해 준다.


교통사고를 당한 미용실 주인이 가게에 혼자 남은 고양이가 있어서 쪽문을 열어달라는, 중소기업 대표가 치매 어머니가 드셔야 하는 곰탕을 사무실에 놓고 왔다는, 차에 치인 아기 고양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병원에 가다 차에 치인 학생이 붕대와 소독약을 구해달라는, 연을 끊은 딸에게 다시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싶어 하는 혼수상태 할머니까지 각양각색의 사연이 등장한다. 모든 사연은 당연히 나희가 알아서 따뜻하게 잘 해결하고 죽은 사람들은 마음 편하게 저승으로 간다. 나희 주변엔 어쩜 악한 사람 하나 없이 착한 사람들뿐이고, 심지어 나희에게 보이는 죽은 사람들도 착하고 안타까운 사람들뿐이다.




문학상 타서 등단한 사람들만 이너써클에 넣어서 평론가를 통해 반짝반짝 빛나게 빨아주는 문학계에서 이런 작품들은 '재미는 있는데 문학성은 없지'라는 평가를 받겠지만 (아니 평가를 받을 기회도 없겠지), 독자들은 잘 이해도 안 되고 감정이 동하지도 않거나 오히려 피폐하기 만들기나 하는 작품들 보다는 오히려 이런 대중 소설들을 더 좋아한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불편한 편의점>과 같은 종류의 따뜻한 힐링 소설.


평소 오글거리는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성격이라, 책을 읽을 때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나열한 저 책들은 하나도 읽지 않았는데, <나의 완벽한 장례식>은 마침 타이밍이 딱 좋았다. 문학계의 총아 함윤이 작가님의 <정전>을 읽고 무척 답답한 주인공 캐릭터 때문에 (냉엄한 사회를 자기 좋고 싫고로 멋대로 망가뜨리려 함)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마침 똑같이 스무 살인 곤궁한 처지의 처자가 '난 엄마가 없지만 아빠가 사랑해 주니까 슬프지 않아', '난 가난해도 열심히 벌어서 공부할 거야', '난 죽은 사람이 보이지만 이 사람들도 다 안타까운 사연이 있으니 도와줄 거야'라고 생긋생긋 웃으면서 소설책 안에서 뛰어노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힐링소설에 힐링을 당하다니...


K-힐링 소설들이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어디에나 K를 붙여도 이젠 놀랍지 않다) 서점, 백화점, 세탁소, 편의점 등등의 장소로 현실 도피를 하며 마음을 달래는 이런 장르를 Cozy fiction이라고 한단다. 장례식장 매점에서도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K-힐링의 효과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usr_1728265393246.jpg 마음에 묻은 얼룩까지 지워준다는 세탁소가 이렇게 인기라니, 팍팍한 삶은 만국공통이구나.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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