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배신

리 골드먼

by 김알옹

세계적으로 저명한 심장병 전문의인 저자가 인류 생존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네 가지 형질이 현대인의 건강을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 유전자들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흥미로운 책. 호모 사피엔스들이 살아남아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를 후손들에게 전해주면서 이 부작용으로 비만과 당뇨병, 고혈압, 우울증, 혈전으로 인한 뇌졸중과 심장마비와 같은 질환이 후손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해석이다.


(머리말 중에서)

식욕과 열량 축적의 본능:
초기 인류는 음식이 생길 때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배불리 먹는 것으로 굶주림에 대비했다. 오늘날 미국인의 35퍼센트가 비만이며 그와 동시에 당뇨병, 심장 질환, 심지어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은, 몸에 필요한 것보다 더 먹는 이 타고난 성향 때문이다.

물과 소금에 대한 욕구:
우리 조상들은 치명적인 탈수의 위험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다. 특히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면 탈수 위험이 커지므로 몸은 물과 소금을 보존하고, 이 두 가지를 항상 더 원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이제 대다수 미국인이 필요한 양보다 많은 소금을 소비하고 있으며, 이처럼 과도하게 섭취한 소금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물과 소금 보존 호르몬과 상충 작용을 일으켜서 심장 질환, 뇌졸중, 신장 질환의 위험을 눈에 띄게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싸울 때, 도망칠 때, 복종할 때를 판단하는 본능:
선사 시대 사회에서는 많게는 사망자의 25퍼센트가 폭력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따라서 늘 살해당할 가능성을 염려하며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세상이 점점 안전해지면서 폭력 사태는 줄어들었다. 현대 미국에서는 살인이나 동물의 공격보다 자살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훨씬 흔하다. 왜일까? 지나치게 조심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우리의 오래된 성향이 불안증,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리고 자살까지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출혈로 죽지 않도록 피를 응고시키는 능력:
외상과 출산으로 인한 출혈의 위험도가 높았던 초기 인류는 피를 재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응고시킬 필요가 있었다. 현대에는 반창고부터 수혈에 이르기까지 각종 기술이 발달하면서 과다 출혈로 목숨을 잃을 확률보다 오히려 혈액 응고로 사망할 확률이 더 커졌다. 대부분의 심장 마비와 뇌졸중—현대 사회의 주요 사망 원인—은 심장과 뇌의 동맥을 따라 흐르는 피를 혈전(응고된 혈액 덩어리)이 막아서 생기는 증상이다. 거기에 더해 옛 조상들은 경험하지 못했던 긴 자동차 여행과 비행기 여행 또한 사망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혈전을 만들어 낸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우리 조상들은 이 네 가지 유전 형질의 도움으로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큰 사망 요인인 굶주림, 탈수, 폭력, 출혈의 위험을 피하고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놀랍게도 바로 이 네 형질이 미국 내 사망자 40퍼센트의 목숨을 앗아가는 요인으로 자리 잡았으며, 주요 사망 원인 여덟 가지 중 네 가지에 이름을 올렸다. 그 결과 이 유전 형질로 인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보다 죽는 사람의 숫자가 무려 여섯 배나 많아졌다. 인류의 생존을 도왔을 뿐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장악하는 근원이 된 바로 그 특징들이 왜 이제는 이토록 비생산적이 되었을까?

이러한 역설이야말로 이 책의 뼈대를 이룬다.


아무리 인류가 의지와 정신력으로 노력한다고 해도, 수십만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생존을 향한 유전자의 진화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다. 이에 인류는 의학과 약학 등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해 이 형질들이 과도하게 작동하는 것을 일부 막을 수 있다. 책은 2015년에 발간됐고, 책에서 언급하는 비만, 당뇨병, 고혈압, 우울증, 혈전의 치료제들은 10년 전보다 조금, 혹은 큰 폭으로 발전했다. 대표적인 예가 위고비와 마운자로로 대표되는 비만약들이다. 혈압약이나 콜레스테롤약은 비슷한 기전으로 유지되고 있고, 우울증 약은 음... 비슷한 것 같다.


아마도 10년, 20년 뒤가 되면 또 다른 기술 발전을 통해 우리 일상을 조금씩 갉아먹는 이런 질환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책 또한 그런 희망을 내보이며 마무리된다.


(결론 중에서)

인류에게는 20만 년간 온갖 난관을 이겨낸 뛰어난 뇌가 있다:

우리는 음식과 소금이 지나치게 풍부하고, 육체 활동은 점점 더 적게 필요해지며, 본능과 욕구를 억누르는 훈련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현대의 생활환경은 우리의 유전 형질이 주는 부작용을 상쇄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의약품이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식생활과 운동량 증가 같은 행동 패턴의 향상뿐만 아니라, 약물과 의학 기술을 이용해 시대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기 위한 유전자의 변화를 장려하거나 유전자가 작동하는 법을 조절해 체질을 바꾸는 방법을 통해 건강한 삶으로 가는 더 나은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인류가 가진 뛰어난 뇌를 십분 활용해 타고난 체질과 시대의 요구를 일치시켜야 하는 것이다. 결국 환경을 이토록 빠르게 변화시켜 이런 문제를 야기하게 된 것도 우리 뇌의 힘이 아닌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20만 년에 걸쳐 살아남은 인류가 성공적으로 헤쳐 온 모든 어려움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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