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니카의 아이들

미치 앨봄

by 김알옹

20년 전쯤 전, 아마도 20대의 어느 하루에 읽었던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작가 미치 앨봄이 2023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1943년 그리스의 살로니카(테살로니키, 아테네에 이은 그리스 제2의 도시)에는 약 5만 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곳에 나치가 침공하여 약 48,000명의 유대인을 아우슈비츠로 보내는 절멸 계획이 시행됐고, 살로니카의 유대인 커뮤니티는 붕괴됐다. 이 과정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10대 아이들 니코, 세바스티안, 파니가 살로니카 - 아우슈비츠를 겪고, 전쟁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서로의 인연을 교차시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거짓말을 못 하는 아이인 니코는 마을 사람들에게 '히오니(그리스어로 '눈')'이라고 불릴 만큼 정직한 아이다. 잘생기기도 한 니코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그의 형 세바스티안은 그런 니코를 질투한다. 니코와 동갑내기 이웃인 파니는 그런 니코를 좋아하지만, 세바스티안은 파니에게 마음이 있어서 니코에 대한 질투가 더 심해진다.


그리스를 침공한 나치는 살로니카의 유대인 대부분의 일자리와 재산을 빼앗는다. 살로니카의 나치 지휘관 우도 그라프는 니코/세바스티안 가족의 집을 차지하고, 파니의 아버지는 집을 빼앗으려는 나치 병사에게 반항했다가 파니의 눈앞에서 죽음을 당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나치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내려고 한다.


독자 입장에선 이미 그 악명을 잘 알고 있지만 당시의 유대인들은 아직 그런 목적이 있는 수용소인지 몰랐고, 강제 이송 과정에서 반항하거나 봉기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우도는 니코를 가족으로부터 떼어놓고 '그곳에 가면 새 집을 준다. 재정착일뿐 아니라 새 일자리까지 생길 것이니 안심해도 좋다.'라는 거짓말을 믿게 만든 후, 기차를 타러 모여든 수많은 유대인들 사이에 저 메시지를 퍼뜨리면 가족에게 돌려보내 주겠다고 한다. 니코의 말을 믿은 유대인들은 모두 기차에 탑승하지만, 니코에게 이상하게 소유욕이 생긴 우도는 니코를 보내주지 않는다.


기차에 탑승한 유대인들은 점점 이상함을 느낀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바로 나치 병사의 총알이 날아왔다. 니코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세바스티안은 파니를 기차에서 탈출시킨다.


이제 니코, 세바스티안, 파니, 우도 넷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니코는 사람들을 속였다는 죄책감에 충격을 받고 더 이상 진실을 말하지 않게 된다. 우도의 손아귀에서 탈출한 니코는 언어 습득에 재능이 있어서 8개 국어를 말할 수 있게 되고, 우연히 로마니인(집시) 위조 기술자를 만나 기술을 배운다. 그 뒤로 마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주인공처럼 여러 개의 신분을 만들고 숨 쉬듯이 거짓말을 하며 전쟁을 피해 다니다가 우연히 큰돈을 벌게 된다.

우도는 살로니카의 나치 지휘관에서 아우슈비츠의 경비 책임자로 승진하며, 수많은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가 된다. 니코의 형 세바스티안을 알아보고 자기 손아귀에서 벗어난 니코에 대한 복수심으로 세바스티안에게 시체 옮기는 일 등 가장 끔찍한 작업만 시키며 그의 영혼을 파괴시키려 한다.

세바스티안은 아우슈비츠에서 부모와 쌍둥이 여동생들과 조부모까지 모두 잃고 혼자 생존한다. 이것으로도 충분히 끔찍하지만 우도가 의도적으로 시키는 끔찍한 일들까지 더해져 나치와 니코에 대한 증오만 남은 사람이 된다.

파니는 기차에서 탈출한 곳이 헝가리의 한 시골이었다. 그곳에서 어떤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은둔 생활을 하다가 마을 사람에게 발각되고, 헝가리의 화살십자당(파시스트 정당)에게 잡혀 부다페스트로 끌려가는데, 마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쉰들러처럼 유대인을 몰래 구해주는 선행을 베푼 헝가리의 여배우와 니코의 도움으로 무사히 그곳에서 탈출한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네 명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니코는 여러 신분을 거쳐 유럽 여러 곳을 방랑하다가 결국 미국으로 넘어가서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가 된다.

세바스티안과 파니는 살로니카에서 재회하고, 둘은 결혼해서 예쁜 딸까지 낳는다.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세바스티안은 과거를 쉽게 잊지 못했고, 우도에게 복수하기를 꿈꾸며 '나치 사냥꾼'과 함께 일하게 된다. 고향을 떠나 가족 모두가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이주하게 되고, 파니는 그런 세바스티안을 이해하지 못하고 둘의 갈등은 커져만 간다.

우도는 전쟁이 끝나는 순간 아우슈비츠를 우여곡절 끝에 탈출하고, 유럽 모처에 은둔한다. 그러다 미국으로 이주해서 독일계 정치인의 보좌관이 되고, 그의 더러운 일들을 처리하면서 새 삶을 살게 된다.


결국 넷은 1983년 살로니카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40년 전 살로니카 유대인 커뮤니티 파괴의 시작이었던 '검은 토요일'을 기리기 위한 행사가 열린다. 당시 나치는 유대인 안식일에 9,000명의 유대인을 뙤약볕 아래 세워놓고 얼차려를 주면서 가혹하게 대했다.


이런 식으로 유대인의 안식일에 치욕을 주면서 커뮤니티 붕괴를 가속화시킨 나치들 (출처: 레딧)
8시에 시작되어 14시까지 이어진 체포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체조와 땅바닥에서 구르는 등 유대인의 성스러운 날을 어길러야 했다. 많은 이들이 구타당했다. 학대로 쓰러진 사람들은 경비견에게 공격당하거나 물로 물에 맞고 발로 차서 일어섰다. 햇빛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람은 누구든 맞았다. 여러 명의 유대인이 부상당했고 몇 명이 사망했다. 독일 육군과 해군 부대, 그리고 나치 친위대 모두 체포 과정에서 유대인 학대에 관여했다. 독일 여배우들은 광장 위 발코니에서 박수를 보내며 이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리스 행인들은 무관심하거나 재미있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위키피디아 중

이 행사에서 니코, 세바스티안, 파니, 우도의 운명이 교차한다. 책의 클라이맥스라서 더 이상의 줄거리 서술은 안 하겠다. 그동안 쌓였던 오해와 갈등과 삶과 죽음이 모두 풀리게 된다.




요즘 우연인지 몰라도 읽고 있는 책들이 죄다 20세기에 벌어진 학살이 배경인 소설이다. 알제리 내전의 학살, 스리랑카 내전의 학살, 그리고 인류사에서 가장 끔찍했던 유대인 학살... 물론 이스라엘이 요즘 중동에서 벌이고 있는 짓들은 그들이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라고 해서 면죄부를 얻을 수 없지만, 인류는 여전히 그 학살을 거울삼아 다시는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그런 목적으로 역사를 공부하고 당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는 것이다.


좀 허술한 관계인 것 같지만, 사람들의 관계는 아주 작은 오해에서부터 틀어지는 것이 다반사라 생각하고(그래서 원제도 The little liar이다) 그때의 참혹한 역사를 돌이켜볼 수 있는 목적으로 읽으면 좋은 소설이다. 중고생들에게 교육 목적으로 읽혀도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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