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작가님의 희곡인 이 작품은 산업재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17명의 인물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연간 2천 명의 노동자가 근로 중 사망하고 13만 명이 다친다. 내가 사무실에서 편히 앉아 일하고 있을 때 한 시간에 한 명씩 어딘가에서 사람이 죽고 있다.
떨어짐, 끼임, 깔림, 뒤집힘, 무너짐, 부딪힘, 물체에 맞음, 화재, 폭발, 빠짐, 절단, 찔림, 감전, 파열, 이상온도/물체 접촉, 화학물질 누출/접촉, 산소결핍, 익사, 사업장 내/외 교통사고, 폭력행위 등 그 원인은 다양하다.
책 중간에 반도체 공장에서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사망 혹은 치명적인 질병에 걸린 분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나열된다. 숨이 막혀왔다. 책 마지막에 어느 한 달 동안 산업현장에서 사망한 분들의 이름이 위의 이유들을 붙인 채 하나하나 나열된다. 난 그냥 운이 좋아서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 유연성 강화를 통해 위험의 외주화가 가능해지면서 사람 목숨을 비용 관점에서 접근하는 기업들의 행태는 도무지 나아질 여지가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됐지만 요리조리 피해 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로펌들만 돈을 벌어간다. 언제까지 노동자의 피로 남은 노동자들의 안전조치를 하나하나 쌓아 올려야 할까.
대한민국 급속성장의 폐해라기엔 이제 재계도 좀 성숙해질 때가 되지 않았나. 회사 다녀본 사람들은 안다. 어딘가에선 돈이 줄줄 새고 있다는 것을. 사회 전반적으로 성장보다 분배에 신경 써야 한다는 큰 희망도 아니다. 위험한 일을 하청업체에 던지지 말고 모두 직고용해서 직접 책임지라는 강요도 아니다. 그저 누군가 죽거나 다치지 않게 조치할 만한 비용만 마련해서 지원하자는 작은 소망이다. 물론 기업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움직이진 않는다. 그걸 해결해 주고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건 정치의 역할이라는 생각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기업과 샴쌍둥이처럼 붙어있는데 서로 갈라설 의지는 없이 보여서 문제고.
계엄이니 탄핵이니 어수선한 요 며칠 사이에도 몇십 명이 일하다 죽었겠지. 그저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오늘 하루도 운이 좋아 죽지 않고 무사히 웃으며 퇴근해서 귀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