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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by 김알옹

미국 콜로라도 주를 배경으로 1948년부터 1971년까지의 한 여성의 굴곡진 인생을 그려낸 소설. 작가님이 50대가 되어서 발표한 첫 소설이라고 한다.




아이올라라는 콜로라도 산골 마을에서 품질 좋은 복숭아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던 가족. 불의의 사고로 엄마와 이모, 오빠가 동시에 세상을 떴다. 이제 주인공인 17세 소녀 빅토리아, 아빠, 남동생 세스, (전쟁에서 다리를 잃고 휠체어 신세인) 이모부만 남았고, 가족 내 유일한 여성인 주인공이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느 떠돌이 아메리칸 원주민 청년 윌 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짧은 시간 둘은 불같은 사랑을 나눈다.


아메리칸 원주민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시기였나 보다. 주인공의 남동생은 난폭한 10대 소년이었고 친구들과 함께 껄렁거리며 윌을 괴롭혔고 주민들 모두 윌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상태였다. 결국 윌은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빅토리아는 윌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배가 불러오면서 빅토리아는 집을 떠나 산속의 오두막으로 들어가 혼자 출산하고 아이를 키운다. 그러나 스무 살도 안 된 여성이 비축한 식량도 없이 아이를 키우는 건 무리였다. 결국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유기하는 잘못된 선택을 한다. 그 나쁜 선택을 되돌리지 못해 20년가량을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서부 원주민을 축출하고 자리를 잡은 백인들의 역사는, 저수지가 생기면서 그들의 터전이 모두 수몰되어 사라지는 역사로 반복된다. 빅토리아 개인의 역사에서 그녀는 많은 것을 잃지만 어떤 것들을 조금씩 모아가며 자신의 인생을 시간의 흐름에 맡긴다. 끝까지 잃지 않는 것 중 하나인 복숭아 농사가 그녀의 인생에 큰 버팀목이 된다.


그리고 그녀는 우연인 듯 필연처럼 다시 아이를 만나게 될 기회를 얻는다.




콜로라도주 출신인 작가님이라 그런지 아름다운 산, 강, 숲, 나무를 통해 목가적인 배경 묘사를 끝없이 해주신다. 특히 홀로 산속 오두막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자연 속에서 몇 개월을 보내는 장면은 마치 직접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번역도 무척 잘 된 것 같다.


실제 배경인 콜로라도주 아이올라가 잠겨 있는 블루 메사 저수지를 찾아봤다. (구글맵 리뷰 중에 정보도 많고 사진도 많은 것으로 고름) 미국 땅덩이가 워낙 커서 감이 잘 안 오는데, 면적을 따져보니 서울 면적의 약 70%나 되는 거대한 면적의 저수지이다.


내 안에 서울이 거의 다 들어간다




작가님이 오랜 시간 고민한 주제인 ‘형성(becoming)’이 잘 표현된 단락.


얇은 구름이 흩어지고 윤슬이 반짝이는 걸 보며 생각했다. 내가 삶이라고 불러온 이 여정도 잠겨버린 이 강물과 비슷하지 않은가. 저수지로 만들어놓았는데도 온갖 걸림돌과 댐을 거슬러 앞으로 나아가고 흐르는 이 강물,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해 그저 그동안 쌓아온 모든 걸 가지고 계속 흘러가는 이 강물이 내 삶과 같았다.


어떤 존재가 형성되기까지는 시간이라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알게 된다는 작가님의 문장에서 내 짧은 40여 년의 시간을 돌이켜본다. 부모님이 고생을 워낙 많이 하셔서 나는 편히 살아왔지만(감사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그래도 나름 가정을 꾸리고 살아오면서 이제 꽤나 나만의 희로애락이 쌓였다.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기까지 보낸 시간들은 헛되지 않았다. 그 시간들이 쌓여 내가 됐으니. 앞으로 쌓일 시간들이 엄청나게 특별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저 시간을 아무렇게나 흘려보내는 일들은 줄일 수 있게 신경 써서 살아보자.


흘러간 강물은 다시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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